퇴근길에 온 세상 바람이란 바람은 다 맞은 듯
회색과 검정 구름들 사이에 약간의 비가 섞인 강한 바람이 불고 또 불었다.
오후 3시 30분 남짓이었지만 칙칙하고 희미한 풍경 속 옅은 가로등 불빛이 켜져 있었다.
날이 그만큼 어두웠던 탓일까 아님 그저 소등을 깜박한 날이었을까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을 향해 걸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풍경은 나를 따라다녔다.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날이 이렇게나 칙칙한데 파릇파릇한 나무와 작은 숲이, 아직도 빛을 내고 있는 꽃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우중충한 회색 날씨와 바람은 내 마음도 밀어뜨려 휘청휘청이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했다. 핑계 더미의 내 모습을 콕콕 찌르는 것 같잖아.
마지막 한 모금을 남겨둔 리즐링을 유리잔에 따랐다. 얼음을 넣어서.
워낙 술을 잘 마시지 않아 한 잔에도 살짝 알딸딸함이 올라온다.
요즘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넌 이렇게 모진 바람 속에서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
역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 벽돌 사이에 자리한 파란빛 보라색의 꽃의 잔상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