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성격이란 무엇인가 by 브라이언 리틀
1부에 이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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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목표.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그냥 '하고 싶어서'이다. 나의 경우 확실한 내향인이지만 때때로는 극외향인처럼 행동하곤 하는데 그건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의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외향적으로 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행동했다는 의미.
일례로 내향인이지만 대기업에 취직이 하고 싶었던 과거의 나는 친구들과 열심히 면접 준비를 하며 외향적인 모습을 그럴싸하게 선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취업에 성공한 이후로도 습득한 외향성을 계속 잘 써먹었다. 신입들에게 툭하면 '건배사'를 시켰던 그 조직은 외향적인 인간을 아주 많이 선호했기에 내가 사실은 내향적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조차 없었고 계속 외향인처럼 굴었다. 어쨌든 이왕 입사했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으니깐 계속 외향적이면서도 호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나를 둘러싼 상황(외적 현실)과 나의 개인목표(내적 현실)이 맞물리는 시점에서 나의 성격은 외향적이으로 재구성됐다. 얼핏 들으면 밥 벌어먹으려고 성격까지 바꾼 셈이니, 왠지 좀 불쌍하게도 여겨지는 대목이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리틀 교수님도 엄청 내향적인데 학생들 앞에서 활기차게 강의도 하고 나중에는 TED에서 강의도 했다. 그러니깐, 내가 원하는 성취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상황이 요구하는 성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이런 것이 바로 프로의식이라는 거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좋아하는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상대가 좋아하는 성격으로 바뀌려고 노력하는 뭐 그런거다.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이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끌어내서 고백하는 것 역시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에는 반대되는 것이지만, 이런 성격 변화는 약간 감동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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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격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자아와 세계를 확장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았는데, 역시 이런 변화는 우리의 본성을 반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알 텐데, 모르는 사람이랑 만나 웃고 떠들고 신나게 노는 일... 내향인도 결코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길어지면 힘들고 매일 하면 진짜 미쳐버린다. 원래 외향적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되는 행동이지만 타고나길 내향적인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채워 파이팅을 해야 할 수 있는 행동들이다. 즉 과도한 각성과 인지 고갈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에 이런 반대 행동을 계속할 경우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치게 된다. 그래서 리틀 교수는 틈틈히 회복의 시간(회복 틈새)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해준다. 본인의 방법도 알려주는데 강의 등을 하다가 지치면 화장실에 가서 숨는다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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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깐.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예민하고 내향적인 나는 개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렇게 성격까지 고쳐야 하는가. 이렇게 성격을 변화시켜서 개인 목표를 추구하는 일이 과연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리틀 교수님은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느냐를 생각하기 위해 세 가지를 따져물으라고 한다.
첫째, 의미이다. 예컨대 내향적인 나에게 주어진 개인 목표가 내가 선택한 일인지,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누가 시킨 일에 불과한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내 개인 목표였고, 외향적인 것이 면접에는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 맞지만 내 성격을 완전히 개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계속 내게 '건배사'를 요구했고 뛰어난 프리젠테이션을 선보이길 원했으며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매력을 발산하느냐마느냐로 나의 실력을 평가했다. 그래서 개인 목표를 위해 내 타고난 성격을 재구성하고 재조정할 동기가 점점 떨어져갔다.
둘째, 관리 가능성(성공 가능성)이다. 목표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성취 가능성이 삶의 질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 내가 한때 몸담았던 그 대기업에는 본투 외향인들의 천국이었다. 한 동기는 '노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이었고, 업무 능력은 중간 정도였지만 술자리에서는 히어로가 됐다. 서글서글한 성격은 당연했고 무엇보다 건배사가 끝내줬다... 이뿐일까. 대단히 박식하고 탁월한 실력을 갖췄는데 성격마저 외향적이고 대범한 사람도 너무 많았다. 이 회사에서 내가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물론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만, 그렇게 성격까지 재조정하면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2년 근무를 마친 후 회사를 그만뒀다.
책 얘기하다 내 얘기하다 헷갈리시겠지만, 마지막 셋째가 남았다. 바로 타인과의 연결이다.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개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성격을 재구성하는 일도 힘이 난다는 의미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잘 맞지 않는 회사라도 즐겁다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는 점을 이해하면 이 항목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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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가지를 따져물었더니 중대한 질문이 남았다. 만약 목표를 추구하는 일이 즐겁지 않고, 내 삶의 질을 높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의 목표를 위해 필요한 자아와 내 내면의 자아를 어우러지게 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냔 말이다. 해답은 아까 따져물었던 세 가지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상황을 한 번 더 살펴보고 재해석해보자(목표를 다시 짜보자)
다른 사례가 없으니 다시 나의 대기업 분투기로 돌아와 보겠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그 회사를 섣부른 선입견에 휩쓸려 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로 외향적인 성격만이 그 회사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었나를 따져봤어야 했다는 의미다. 물론 신입사원이야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분위기라도 띄워야했고(그 시대의 이야기다), 그래서 외향인이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업무에 투입된 이후에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확신하건대, 비록 건배사는 젬병이더라도 실력으로 제 자리를 확보해나갔던 내향인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깐 과거의 나는 '외향인'이 될 수 없다며 좌절해서 회사를 관두기보다는 '내향인'으로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보는 편이 훨씬 현명했을 것이다. 늦은 이야기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처럼 개인 목표를 바꾸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신경질적이고 예민/꼼꼼하며 내향적인 나의 기질이 장점이 되는 장소를 찾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딱 들어맞는지는 지금도 고민이지만, 뭐 예전 직장보다는 맞는 것 같다.
둘째. 까짓것 내가 바뀌어보자.
타고난 기질을 바꾸기 어렵다고 주구장창 말했지만, 아예 못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타고난 성격 특성과 개인 목표가 딱 들어맞을 때 좀 더 즐겁게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정말로 이루고자하는 목표가 있다면 성격이나 기질조차 바꿀 수는 있다. 조금 힘들겠지만.
셋째. 상황이 일어나는 맥락을 살펴보자. 나의 지지자는 있는가, 내향인인 나를 강제로 외향인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등 상황이 지나치게 가혹하지는 않은가를 살펴 내가 변할 것인지, 나의 목표를 바꿀 것인지, 아니면 머물 것인지를 결정하자.
리틀 교수님은 어떤 선택을 하든 맞고 틀리고는 없다고 한다. 목표를 위해 자아와 성격을 바꾸는 것이 때로는 유익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힘들어질 수는 있다. 그렇기에 나와 나 자신은 어떤 식으로든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대 나 자신이여, 그대가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추는 것은 필연이자 나의 소망, 서투르면 어떤가.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걸. 서로 끌어안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를... 그렇다면 낭만적이면서 이성적이겠지.
하지만 사랑의 열병에 그치면 곤란해.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어야 해.
그건, 그러니까 이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자기지시적 존중일지언정 존중은 필수.
마음은 평온하고 편안하고 성실과 노력이 느껴지면 좋겠지.
조금 즐겁기도 하다면 좋을 거야.
잊지 마. 누군가 너를 안다면, 너를 진짜로 기억한다면,
특히 네가 어떻게 춤추는지 안다면,
그건 바로 나라는 것을.
나, 오직 나, 나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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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이밖에도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요소로 ▲타인을 의식하는 정도라든가 ▲원칙적이나 실용적이냐 여부 ▲삶을 조절(통제)할 수 있느냐에 대한 믿음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각각 설명해주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니 생략해야겠다.
그리고 특히 흥미로웠던 파트는 1. 아주 창조적인 사람들의 성격적 공통점에 대한 설명과 2. 기인과 정신질환자, 창조적 사람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건 나도 기억하고 싶으니깐, 짧게 정리해봐야겠다.
▶고도로 창조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로부터 스스로 탐구할 수 있도록 깊은 존중을 받았으며 개인의 자율성을 깊이 인식하도록 해줌. 과도한 감정적 친밀감은 비교적 적음. 대단히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한 적도 없음. 이사를 많이 다녀서 상황에 적응하는 융통성이 발달함. 개인 구성개념으로 보자면 체계가 굉장히 복잡해졌으면서도, 외톨이가 된 느낌 속에서 내적(자기자신)인 가치관을 발달시키는데 초점을 맞춤.
: 사실 자체보다는 그 사실이 가진 의미와 중요성, 결과에 더 큰 흥미를 지님, 나무 하나하나보다 숲을 보는 경향이 강함 또 그런 생각을 깊이있게 주고받기를 좋아함, 관습적 행동과 규제는 싫어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폭발하기도 함. 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보다 거침없는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음.
▶기인과 정신질환자, 창조적 사람의 차이?
: 기인은 공동체의 목표보다 개인 목표에 집착. 세상을 무시하고 본인의 행복에만 몰두. 정신질환은 선택이 아니라 질병이므로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
: 셋 모두 자신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이 떨어지지만 높은 지능과 우수한 단기 기억력이 있다면 감당할 수 있음 -> '자아 강도'의 차이
▶창조적 사람이 가장 위대한다
: 그들의 창조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성격 (착실하고 성실하며 이해심 있는) '대조군'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찰스 다윈과 그의 아내 엠마.
: 창조적 모험을 추구하는 것은 엄청난 만족감을 주는 일이고 때로는 세상도 바꿀 수 있지만 건강과 대인관계가 희생될 수 있다. 무엇이 더 큰 의미를 주느냐와 선택의 문제인 셈.
이제 진짜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