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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좀 고치라는 말이 끔찍한 당신에게

[책리뷰] 성격이란 무엇인가 by 브라이언 리틀

by 챕터쓰리
우리가 게를 별다른 말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갑각류로 분류해버리는 것을 게가 안다면
게는 개인적 분노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딴 부류가 아니야. 나는 나 자신, 오직 나 자신이라고.”
- 윌리엄 제임스


1.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불평불만이 많고 냉소적이라는 말도 덤으로 따라왔다. 지금에야 귓등으로 흘려버릴 만한 헛소리들이지만, 어릴 때는 그런 게 잘 안 됐다. 누군가로부터 ‘예민하다’, ‘까칠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펐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너무 싫었서, 자라는 내내 일부러 더 털털하고 너그러우며 낙천적인 사람인 척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흉내들은 나를 조금씩 망가뜨렸다.


2.

타고난 기질은 바꿀 수가 없는 법이다. 나는 점점 더 예민해졌던 것 같다. 내 진짜 모습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주변의 모든 평가에 날카롭게 반응했고, 그런 내 모습을 자각하며 우울해졌다. 성격테스트나 심리테스트 등에 몰두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지금이야 MBTI가 대중어가 됐다지만 내가 대학을 다녔던 어언 1X년 전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MBTI도 받고 애니어그램도 받고 온갖 책을 섭렵하고 그랬다. 급기야 나이 들어서는 사주명리학까지 공부했다. "내 성격은 정말로 바꾸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가. 좋은 성격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다.


3.

돌이켜보면 약한 광기라고 해도 좋을 법한 '좋은 성격에 대한 집착'이 조금 누그러지기 시작한 건 이 책 <성격이란 무엇인가>를 만나면서다. 특히 이런 문구들은 정말로 위로가 됐다.

내가 린제이 교수의 왼쪽 신발이 '내향적'이라고 말하면
다들 신발에 문제가 있다는 듯 일제히 신발을 쳐다본다.
신발을 보지 말고 나를 보라.
그 말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다.
- 조지 켈리 -


4.

브라이언 리틀 교수는 우리가 누군가의 성격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품평하는 모든 발언들이 사실은 결국 '나'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 '예민하다'는 지적을 자주하는 사람은 어쩌면 본인 스스로가'예민하다'는 개념에 상당히 구애받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어떤 사람은 남자들을 평가할 때 '남자답다'와 '남자답지 않다'는 평가를 주로하는데, 이건 평가를 하는 바로 그 사람이 '남자답다'는 가치에 집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걸 '개인 구성개념'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개인 구성개념'이 모두 다르고 그렇기에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한다. 다시 예를 들어 내가 특정 행동을 했는데 이를 보고 A는 '예민하다'고 지적한 반면 B는 '신중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보자. 자, 행동이 문제일까, 아니면 판단이 문제일까. 여기서 가장 예민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이렇게 개인 구성개념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인식의 틀이자 '나'를 구성하는 성격적 본질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타인을 해석하는 방식은 상대의 성격과 삶의 질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리틀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나는 나의 개인 구성개념이다


5.

그렇다면 다른 이들의 '성격 평가'에 우리가 예민해지는 이유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누군가의 평가가 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구성개념'을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남자답다'라는 구성개념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때 나의 성격이 '여성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화가 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내가 아주 '남자답다'고 생각하며 존경하는 인물이 나에 대해 '여성스럽다'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면 나는 절망하게 될 지도 모른다. 또 예를 들어 '지적이다'라는 구성개념이 핵심인 사람에게 "왜 이렇게 무식하게 굴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리틀 교수는 이런 반응을 '적대감'이라고 일컫는데, 스스로 이미 부당하다고 판단한 구성개념을 억지로 정당화하려고 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혹은 자신의 핵심적인 개인 구성개념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낄 때 나오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깐 개인 구성개념은 다른 사람들을 빠르게 평가하는데 있어 유용한 '잣대'이기도 하지만 그 개인에게 있어 '족쇄'도 되기도 한다.

이런 구성개념은 사람에 따라 보유하는 개수나 범위도 다른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남자답다'는 게 충족되지 않는다면 어떤 성격적 장점이라도 아무런 강점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사람의 구성개념은 하나밖에 안 되는 셈이고, 심지어 이 구성개념은 다른 이를 평가하는데 그다지 유효한 개념이 되지 못한다.(남자답다는 것이 대체 오늘날 무슨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심지어 유효하지 않은 구성개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구성개념에 갇힐 수 있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삶은 삐걱거릴 수 있다.


6.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독립되고도 유효한 개인 구성개념을 계속 늘려가야 한다는 거다. 예컨대 핵심 구성개념을 '대졸자인/대졸자가 아닌' 하나뿐인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리틀 교수는 "핵심 구성개념이 지나치게 영향력이 커서 다른 구성개념 상당 부분을 지나치게 지배한다면 내 세계를 항해할 자유가 제한된다"고도 설명한다.

그러므로 '현명한/현명하지 않은', '내향적인/외향적인', '적극적인/신중한', '개방적인/안전 지향적인'과 같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 독립되면서도 유효하면서도 건전한 구성개념을 차곡차곡 쌓아가야만 다른 사람들의 성격에 대해 판단을 잘못하는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상황에 따라 다른 구성개념으로 바꿔가면서 다른 이들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7.

지금까지 "성격 좀 고치라는 말이 끔찍한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그러니깐 앞으로는 "너는 성격이 별로"라고 말을 들을 경우 '너야말로 성격이 별로니깐 그런 말을 하는구나'라는 감정을 담아 그 사람을 빤히 쳐다봐주자. "제 성격이 뭐가 어때서 뭘 어떻게 고쳐요?" 라고 반문해주면 더욱 좋겠다. 끗


... 이라고 해도 괜찮겠지만, 이렇게 끝내긴 좀 아쉽다. 단순히 다른 이의 평가에 기분 나쁜 것을 넘어, 정말로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좀 안 들고 그래서 고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내가 수동적(소극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느껴지니 이 단어를 쓰겠다)인 성격인 게 좀 마음에 안 든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누군가 알아봐주리라는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나는 숱한 기회를 놓쳤기에 앞으로는 적극적이고 싶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내일부터 적극적으로 살 거야"라고 백일을 외쳐봐도 변하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격은 정말로 타고난 기질에 상당히 좌우받기 때문이다.


8.

찐으로 <성격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엇을 성격으로 부르는가. 교수님은 MBTI말고 다른 성격검사를 가져와서 설명하는데 'BIG5'라는 검사다. 현대 심리학에서 과학적으로 그 신뢰성과 타당도를 유일하게 인정받는 성격검사라고 한다. 이 검사는 '성격의 5대 요소'를 스펙트럼으로 관찰하는데 그 5대 요소와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성실성 : 학업 성취도 및 성공 가능성과 관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짐

친화성 : 첫 인상에 중요한 역할, 성실성처럼 성공과 밀접한 관련은 없는 것으로 연구돼. 다만 영업직이라면 유리. 또한 친화성이 떨어지는 성격(반친화적, 적대적)일 경우 건강에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많음.

신경성(또는 안정성) : 주변 환경에 나타나는 부정적 신호에 대한 민감성을 의미. 신경성이 높으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특히 주변의 위협과 위험, 모욕을 민감하게 감지해 스트레스가 높음. 신경성은 다른 기질의 '증폭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주목. 예컨대 성실하면서 신경과민한 사람은 강박적인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음.

경험 개방성 : 새로움을 수용하는 성향. 창조성과 밀접. 부정적 감정은 물론 긍정적 감정도 잘 캐치.

외향성(내향성) : 뇌에서 신피질의 특정 영역이 흥분하는 정도와 관련. 외향적인 사람은 흥분 정도가 낮고 내향적인 사람은 높다. 자극(고통도)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


9.

그러니깐 이 다섯 가지 요소는, 타고나는 것이다. 이 구역의 예민보스인 나는 이 내용을 알고도 굉장한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깐 내가 예민보스인 것은 내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며, 심지어 내가 예민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은 오롯이 내가 받고 있는 거다. 또 이중 외향성/내향성은 MBTI 때문에 다들 잘 알 것 같은데, 나는 내향적인 인간이고 외부 자극에 아주 날카롭게 반응하곤 한다. 그러니깐 그렇다고. 타고난 걸 어쩌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10.

하지만 내가 타고나기를 이랬으니 "생긴대로 살 거니깐, 다 나가주세요"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성격의 특질들은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50% 정도밖에 영향을 안 미친다. 내가 예민 보스, 예민 보스 그러지만, 나도 직장생활 15년째 하고 있는 사람이고, 수틀리면 온사방을 할퀴고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처럼 굴지는 않는다. 오히려 처음 본 사람들은 나보고 서글서글하고 호탕하다고도 평하며, 심지어 타고난 내향인인 나를 '극외향형 인간'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내향인인 나를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 리틀 교수님은 바로 '개인 목표'라고 알려준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으니 한 번 잘라서 2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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