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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보다 정답을 찾는 능력이 필요하다

[책리뷰] 눈 떠보니 선진국 by 박태웅

by 챕터쓰리

1.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를 좋아해서 유튜브를 통해 자주 듣는데, 한 권의 책을 무척이나 재밌게 봤다며 여러 차례 추천하셨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의 저서 ‘눈떠보니 선진국’이 그 책이다. 궁금해서 읽어보니 과연 추천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간결한 문장의 나열 속에는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 또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이유와 그에 따른 해결책까지 통찰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 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외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2.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는데 특히 1부 ‘선진국의 조건’에서는 빼놓을 것이 없는 글귀들이 많이 보인다. 고속 성장해 단기간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한국 사회에 실제로 ‘선진국’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제시한다. 다만 조금 압축적으로 서술돼 있기에 평소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따라가기 어려울 수도 있으려나. 그래서 2부 ‘고장 난 한국 사회’에서는 1부에서 강조하는 제언들이 어떻게 도출됐는지를 주로 다룬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살기 어려워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한 번 ‘전적으로 공감하는’ 내용투성이라 단숨에 읽어냈다. 평소 맴돌던 여러 생각들을 이렇게 정리해주시다니 아주 고마울 따름.


3부는 1부에서 요약 제시했던 제언들에 대한 부연 정도로 보인다. 앞으로 도래할 미래 기술사회에서 우리가 선진국으로서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에 대한 내용이 많다. 특히 인공지능이라든가 소프트웨어 생태계라든가 컴퓨팅적 사고능력이라든가, 지금 화두가 된 미래 기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주로 서술한다. 예컨대 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부터 왜 우리가 이 기술의 영역에서 뒤처져서는 안 되는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 세상에서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과 그렇기에 미리 만들어가야 할 규율 등에 대해서 간명하게 서술한다.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얄팍한 지식만 가진 나로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 대다수다.


3.

조금 구체적으로 책의 내용들을 기록해보자. 책의 핵심은 아마도 이 구절에 있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앞보다 뒤에 훨씬 많은 나라가 있는 상태.
베낄 선례가 점점 줄어들 때 선진국이 된다.
해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KakaoTalk_20221125_134551547.jpg 알라딘에서 샀는데 저자의 친필이.. 이거 프린팅이려나 진짜 써주신거려나.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후발추격국이기에, 언제나 선진국으로부터 베낄 것이 많았다. 그렇기에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물을 필요가 없었고 그저 '어떻게' 따라잡을 것이냐만 풀면 됐다. 하지만 이제 우리 앞의 선진국은 몇 남지 않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풀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논의는 매번 겉돌고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무엇을'과 '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왜 그럴까. 한국사회의 인센티브 시스템이 고장나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한국사회의 성공 방정식은 '무엇을'과 '왜'를 고민할 때보다 '어떻게'를 해결할 때 더 잘 풀렸다는 말이다. 예컨대 선정적인 기사가 포털 조회 수와 트래픽을 올리는데 유리하니깐 포털은 조회 수를 많이 올린 언론사에 이익을 더 많이주고, 조회 수 높은 기사를 쓴 기자도 더 큰 보상을 받는다. 공익성을 따져묻는 언론과 기자는 포털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한국의 산재사망률이 OECD 최상위권을 줄곧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또 어떤가. 고용노동부가 2013~2017년 산재 사건의 형량을 분석해보니 징역 및 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사업주)은 전체의 3%가 채 안되고 절대다수가 집행유예(33.4%) 아니면 벌금형(56.3%)이었다고 한다. 벌금의 평균액은 자연인 420만 원, 그리고 법인은 448만 원.

안전장치를 갖추는 것, 신호수를 두는 것,
하청으로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것, 모두 돈이 드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그렇게 투자하게 하는 대신,
사고가 났을 때 448만원으로 때울 수 있게 해 준다.
누가 더 많은 돈을 쓰려고 하겠는가.
이 시스템은 명백히, 그냥 싸게 사람을 죽이라는 지령을 내린다.


4.

교육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은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능력을 배양하는데 능숙하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선진국의 조건이 '정의'를 내리는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지점과 맞물리는 바가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컴퓨팅적 사고능력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컴퓨팅적 사고능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그중에서도 단답형이 아니라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크고 작은 문제를 작은 단위로 나누어 다룰 만한 크기로 만든 다음, 그 안에 있는 패턴이나 규칙을 찾아내고, 이것을 일반화해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는 다시 고민하지 않도고 풀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 이것을 방법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알고리듬이 된다.(193~194p)


세상의 문제의 대부분은 정의되지 않은 채로 던져진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는 지금, 주어진 문제에서 답을 찾으라는 사지선다형의 교육은 말 그대로 시대착오다. 문제를 판별하고 정의해내는 능력, 혼자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참된 교육이다. (195p)


5.

책이 시작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것은 질문하는 능력과 해답을 찾아가는 힘의 중요성이다. 특히나 지금 세계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기술혁명을 맞이한 시점에서 이런 능력은 점차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이 영혼까지 지배할 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무엇을' '왜'를 묻지 않고 '어떻게'에만 집중하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할 것인가. 책을 다 읽고 단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그럼에도 당분간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어떻게'에만 집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아주 궁금하고, 또 간절히 바라는 것은,
'끊임없는 발전'을 인간을 위해 제어할 방법, 또 다른 철학이다.
인간이 발전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갈수록 분명해져 가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변명,
세계화에 대한 가장 단호한 명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은,
우리가 발전을 제어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의 입, 사람의 귀, 사람의 손, 사람의 마음은 더 발전하지 않는다.
역사의 어디쯤에선가 우리가 원할 때
"이제 그만 충분하다"라고 속도를 늦추고, 멈춰 쉴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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