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행운에 속지마라(Fooled by Randomness)
1.
<블랙 스완>으로 유명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첫 번째 출세작. 2001년 출간. 이후 출간되는 '인세르토(Incerto·불확실성) 시리즈'의 근간을 이루는 저작이다. 저자의 사고 밑바탕에 깔린 신념은 다음과 같다는 걸 알고 읽는다면 한결 이해하기 쉬워진다.
현대 금융시스템은 정교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위험한 시한폭탄이다
2.
1960년생인 나심 탈레브는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금융공학을 전공했고 월가의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계량 트레이더로 오래 근무했다. 그러다보니 현실 세계가 우리가 수학책에서 만나던 정규분포의 세상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와 그에 다른 손익손실을 모두 모아보면 평균치의 결과를 내는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나고 극단으로 갈수록 아주 드물게 사건이 터지는 매끈한 종 모양의 분포를 띄는게 아니라, 양극단의 사건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이 일어나는 뚱뚱한 꼬리구조(팻테일)를 띄더라는 것이다.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말로 풀어보면 그 다음과 같다.
운이 차지하는 비중을 실제보다 훨씬 과소평가하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엄청난 규모의 예외 현상이 일어나는 불확실성을 일컫는
'팻테일(fat tail)'이라는 두 가지 분야에 대해서 고민했다.
하나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이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실제 세상이라고 착각하는 결정론적 세상이다.
희귀사건은 갈수록 자주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런 현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3.
그는 이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말도 남긴다. 여기서 블랙스완이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른다.
블랙 스완은 인간의 예상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
4.
이런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론을 통해 조명되는 나심 탈레브는 항상 하락과 위험을 말하기에 '비관무새', '세기의 비관론자'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사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하락하니깐 투자하지 마!'가 아니라 '위험에 베팅하라'에 가깝다. 실제로 그는 언제나 '바벨 전략'을 강조하는데, 전체 자산의 90%는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는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짜야 위험이 오더라도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취지다. 궁극적으로는 '조금씩이라도 자산을 쌓아가면 복리 효과를 누려 언젠가는 큰 부를 이룰 수 있다'라거나, '잠시 돈을 잃더라도 완전히 잃어서는 안 된다'는 투자 대가들의 조언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해 연 5%의 수익을 내며 복리의 마법을 통해 수 년간 자산을 굴려도 한방에 다 잃어버리는 폭락장에서 실수한다면 끝장이다. 그러므로 끔찍한 실수는 피해야 하고 위험에 대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시장에서 평생 벌여온 사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편향에 대한 베팅'이다.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희귀 사건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업이다.
5.
나심 탈레브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확률적 사고'이다. '행운에 속지마라'는 책의 제목 역시 바로 확률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다. 책에서 말하는 확률적 사고의 핵심은 이런거다.
과거가 달리 진행됐다면 세상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예를 드는데 바로 '러시안 룰렛'이다. 러시안룰렛은 6연발 권총에 하나의 총알만 넣은 후 무작위로 번갈아 총을 자기의 머리에 두고 쏘는 대결 방식이다. 총알이 발사돼 사망한 사람이 패자, 살아남은 자가 승자다. 만약 러시안룰렛에 참여해 딱 한 발만 권총을 제 머리에 대고 쏴서 살아남으면 1억 을 준다는 제안이 있다고 할 때 당신은 참여할 것인가.
글쎄, 나는 안 할 것 같지만 누군가는 참여할 수도 있을 거고, 심지어 승리해서 1억 원을 벌어갈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이 게임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10년 내내 열린다고 하자. 당신은 10년간 120번 열리는 게임에 모두 참여할 것인가. 혹은 가족에게 모든 게임에 참여하길 독려할 것인가. 아마 선뜻 그러겠노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게임을 계속할 경우 결국은 6분의 1에 해당하는 실패, 즉 본인이 사망하는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마치 러시안룰렛과도 같은 살벌한 투자 게임에 숱한 사람들이 동참하곤 한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총알이 발사되는 경우가 더 드물고, 현실세계에서는 총구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손에 잡히지 않는 위험이 심지어 희귀하게 발생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줄곧, 누누히 말했듯, 우리가 희귀사건이라고 믿는 '사상 최악의 사건'들은 우리 생각보다도 더 자주 일어난다.
6.
그렇다면 현실세계에서 총알이 발사돼 내 머리를 날려버리는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을 고려하며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특정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6연발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될 확률은 언제나 6분의 1이지만, 만약 이런 게임이 이미 100번 이상 진행되고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번도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더라면 '대수의 법칙(어떤 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경우 일정한 사건이 일어날 비율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일정한 값에 가까워진다는 경험 법칙)'에 의해 이제는 총알이 발사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일어난 결과는 물론,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에 대해서도 모두 고려해서 판단해야만 '예상치 못한 위험을 간과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
7.
그런데 이 '확률적 사고'라는 거 해보면 알겠지만 정말 어렵다. 인간은 확률적 사고를 하도록 태어난 생물이 아니다. 행동심리학같은 학문이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하는데 여하튼 어렵다. 그래도 저자는 이런 확률적 사고를 하기 위한 방법론도 몇개 알려주는데 그중 하나가 '몬테카를로 기법'을 쓰라는 거다.
자, 그럼 몬테카를로 기법이란 무엇인가. 역시 어려운 개념인데 이 그림을 보면 그래도 이해가 잘 된다.
몬테카를로 기법(시뮬레이션)이란 반복된 무작위 추출(난수)을 이용해 함수의 값을 수리적으로 근사하는 알고리즘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시나리오가 발생하는 '표본경로'를 가정하고, 또 랜덤하게 실행한 임의표본경로를 수천, 수백만 개 만들어서 사건의 속성을 파악하는 과정이라고도 설명한다. 그래서 이 기법은 똑 떨어지는 정답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근사값을 구할 때, 또 사업의 위험성 계산이나 퇴직연금 장기수익률처럼 입력 값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는 모델링 등을 계산할 때 주로 사용된다. 참고로 몬테카를로라는 이름은 모나코의 유명한 도박의 도시에서 따왔다. 무작위성(랜덤 워크)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맥락이기에 가져왔다고 한다.
이렇게 글로 보면 어렵지만 위의 그림을 보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아마 어떤 자산의 가격이 2년 뒤 어떻게 될지를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본 결과로 보인다. 결과를 요약해보자면 1만 1천유로정도인 자산 가격이 2년 뒤는 반토막이 나서 5000유로 이하로 내려갈 수도 있고 또는 3배가 뛰어서 30000유로까지 치솟을수도 있다는 거다. 이런 확률적 예측....이 우리의 판단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이 기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확률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사건들의 역학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시간이고 이때 확률을 쉬운 단어로 바꾸자면 '운'이다. 그러니 운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운이 나의 실력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그밖에도 확률적 사고를 잘 하려면, 불필요한 정보에는 최대한 덜 노출될 필요가 있으므로 소음에서 벗어나라는 것. 예컨대 투자를 하고 있고 손실이 있다면 그 손실을 최대한 덜 자주 확인하는 편이 낫다는 조언을 한다. 또 희귀사건을 자주 겪게 되면 확실히 희귀사건이 희귀사건이 아닐 수 있음을 아는 통찰이 생긴다. 즉, 나이가 들수록 좀 더 낫다고 한다.
8.
자, 아직 할말은 많지만 더 쓰기가 힘드니 끝으로 제목에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사상 최악의 사고는 왜 자주 발생하는가'
나심 탈레브에 따르면 첫째, 사상 최악의 사고는 원래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희귀사건은 항상 예상밖에서 일어나고, 예상할 수 있다면 일어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만약 펀드매니저나 트레이더들이 '역대급 폭락'과 '사상 최악의 패닉셀'을 예측할 수 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증시에서 자금을 뺏을 테고 하루에 지수가 끔찍하게 떨어지는 '패닉셀', '대폭락'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첫번째 이유와 연결이 된다. 과거가 달라진다면 현재와 미래 역시 달라진다 항아리 속에 검은 공과 빨간 공이 어떤 비율이 있는지를 내가 확인하기 위해 공을 꺼내가면서 확률을 계산해보는데 어떤 못된 꼬마가 내가 빨간 공이 절반 들었다고 추론하는 순간 빨간 공을 다 꺼내서 검은 공으로 바꿔버린다면 공의 구성 비율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게 바로 오늘날의 금융시장이 가진 문제다. 노벨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도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정보는 미래 예측에 전혀 쓸모가 없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예측 가능한 패턴을 파악해
그것을 변형해 적용할 것이므로"
셋째, 실증주의(귀납법)의 한계다. '내가 백조를 4000마리나 봤는데 검은 백조는 단 한마리도 없었어'라는 말은 올바른 명제인가. 우리가 검은 백조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검은 백조가 없는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언제나 검은 백조의 존재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 그렇기에 '사상 최악의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꾸만 일어나는 것이다.
9.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에 대해 확신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통계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건 결국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우리는 수많은 대체 역사 가운데 실현된 하나의 사건만을 보고 이를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거듭 말해 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엄청난 성공은 대부분 운에서 비롯한다. 예컨대 쿼티자판의 경우 과거 컴퓨터는 성능이 워낙 낮아 빠른 타자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타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속도를 늦추려고 고안된 구성이다. 그런데 컴퓨터의 성능이 어느 정도 올라와 타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자판 형태도 발명됐는데, 이때는 이미 사람들이 너무나도 쿼티 자판에 익숙해진 나머지 시장 판도를 뒤집을 수가 없었다. 이때 쿼티자판의 승리는 쿼티자판의 미래를 예견한 기업가의 몫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는 삶의 태도도 중요하다. "만사가 운이 아니라 생각보다 운은 중요하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열심히 일하고 시간을 잘 지키고 깨끗한 셔츠를 입고 향수를 사용하는 등
일상적인 통념을 따르면 성공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통념에 따른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끈기와 인내 같은 전통적 가치들도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성공은 몇 안 되는 ‘기회의 창’을 통해 이뤄진다.
행운을 꼭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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