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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유튜버해야지'는 이제 안 통한다

[책리뷰] 유튜버가 사라지는 미래 by 오카다 토시오

by 챕터쓰리

1.

저자 오카다 토시오는 우리말로 ‘덕질’ 정도로 번역되는 일본 오타쿠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고 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애니메이션 회사 가이낙스의 창립자이며 피규어 코믹마켓 등 지금 잘 자리잡은 오타쿠 문화를 앞장서 만들어간 인물이라고. 정작 에반게리온이 나올 당시는 이미 가이낙스의 대표가 아니긴 했지만 본인이 대표였을 당시에도 ‘나디아’라든가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같은 걸출한 히트작을 줄줄 뽑아냈으니 결코 저평가될 순 없는 인물. 미디어학 등으로 동경대 교양학부에서 강의도 하고 오사카 예술대학 객원교수도 하고. 지금은 다종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오타쿠) 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담론을 펼치는 듯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출간 저서가 꽤 된다. <오타쿠학 입문>, <우리들의 세뇌사회>, <세계 정복은 가능한가(이거 번역서도 있네)>, <언제까지나 뚱보라 생각 마라>… 대단하네… ‘오타킹’으로 불린다는데 오타쿠의 왕인걸까...


2.

<유튜버가 사라지는 미래>는 이런 저자의 끝 모를 오타쿠적 세계관에서 비롯한 근미래 예측서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국내에서는 올해 8월 출간됐는데 일본에는 2018년에 나왔다. 4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 셈인데 얼추 맞는 부분이 상당히 좀 보여서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제목이 조금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애초에 내 이해력이 좀 떨어졌던 걸로. (참고로 제목은 저자가 직접 붙인 걸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다. 원저의 제목은 ユ-チュ-バ-が消滅する未來)


우선 제목부터 보자. 저자가 말하는 ‘유튜버가 사라지는 미래’는 유튜브 세계 속 크리에이터 경쟁이 점점 치열해져서 앞으로는 지금처럼 일반인 창작자가 고수익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을 예측한 말이다. 부연하자면 요즘 10대, 20대가 크리에이터를 미래 직업으로 꿈꾼다는 거 같은데 앞으로 20~30년을 두면 유튜버로 먹고 살기도 쉽지 않아질 것이라고 돌려 까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유튜브를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미 이 플랫폼의 경쟁은 어마어마해졌다.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개그맨과 가수, 배우 등 프로 방송인들이 앞다퉈 개인 채널을 열고 있는 건 물론 미디어 산업의 선구자인 방송국과 언론 등도 유튜브에서 미래를 본다. 빌 게이츠 등 걸출한 인물들이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 것도 이제는 뉴스거리가 못 된다. (개인적으로는 개그맨들 채널이 너무 좋다. 선넘는 개그들 대환영)

그래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개인 유튜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가 있으니 콘텐츠만 좋으면 성공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들 간의 경쟁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번역 기술이 점점 발달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내 크리에이터들은 미국·일본·유럽 등 세계 각국의 콘텐츠와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변곡점이 있으니 바로 버추어 유튜버의 등장일 것이다. 책에도 이 얘기를 어느 정도 예측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금 갸웃한 부분이었다. 오타쿠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오타쿠스러울 경우 대중성에서는 밀리지 않을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이미 버튜버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을. 그러니깐 4년 전의 예측은 착착 맞아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무기는 재미이기도 하고 귀여움이기도 하고,
매일 100회씩 업로드하는 부지런함이기도 하다.
인류에게는 불가능한 안정된 매력과 진격 속도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흥미와 관심을 빼앗아 갈 것이다”
유튜브에서 버튜버라고 검색하면 이미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데뷔한 것도 몰랐는데 벌써 은퇴도 했네...


3.

저자는 유튜버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일자리 대다수를 결국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에 빼앗길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지치지도 않고, 수백 수천 수만 번의 반복 학습을 할 수 있는데 그러다가 한 번 정답을 발견한 후로는 절대로 두 번 다시 틀리지 않는다. 이건 인간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무능해집니다.
이것은 머리 나쁜 인공지능과 영리한 인간의 대결입니다.
가장 후미부터 인공지능 선수가 착실하게 기록을 단축하면서 따라오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부터 차례대로 기계에 일을 빼앗길 겁니다.
최고 수준의 우수한 인간은 미래에도 인공지능보다 유능하게 남을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매년 2~3배씩 영리해지는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 인간이 미래에 남을 가능성이 있는 단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려는 식의 접근은 하지 않기를 권한다. 장래성 없는 분야에서 수십 년 경력을 쌓아봤자 말짱 헛수고다. ‘미래에도 유튜버만은 살아남을 거야!’라는 식으로 접근했다가 유튜버가 사라지면 낭패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 어느 샘물에 물이 끝까지 남아있습니까, 라는 덧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여러 곳의 샘물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희박한 승리에 전부를 거는 것보다 몇 개의 가능성 있는 일에 관심을 갖고 수입원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이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4.

그렇다면 가능성 있는 선택의 가짓수를 늘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를 잘 예측해봐야 할 것이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써본 방법 중 가장 유효한 방법론을 하나 소개하는데 바로 사회 가치관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변하고 그런 사람들의 달라진 수요에 영향을 받아 기술이 개발되고 결국 세상이 변한다는 의미이려나.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이 목격한 최근의 사회 가치관 변화를 소개하는데 총 3가지다.

1) 첫인상 지상주의
2) 생각하는 대신 찾는다
3) 중간은 필요 없다.

이중 핵심은 세 번째 ‘중간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간은 적당한 페이를 받고 일하는 우리들 ‘프로 직업인’을 의미한다. 다시 유튜브를 보자. 유튜브의 세계는 재능은 있지만 경력은 없는 야심 찬 아마추어 혹은 신규 진입자와 초특급 재능을 가진 골드·다이아몬드 버튼 크리에이터의 세계로 양분돼 있다. 신규 진입자는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은 콘텐츠를 무료로 계속 풀다가 대중의 인정을 받아 실버>골드>다이아몬드 크리에이터로 성장해 유료 구독 혹은 광고비라는 탄탄한 수익 모델을 구축하거나, 아니면 유튜브에 올-인하는 것을 멈추고 현실의 월급쟁이로 돌아오곤 한다. 최근에는 경쟁이 더더욱 치열해지고 있는데 현실 세계의 프로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는 가수나 배우, 개그맨, 아이돌들이 유튜브로 진출해 구독자와 조회 수, 광고 시장을 쓸어가고 있다. 평범한 재능의 일반인 크리에이터가 유튜브에서 적정한 수익을 얻으며 살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이미 비슷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저자는 연애 시장을 예로 들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탁월한 외모나 매력을 갖춘 사람들 간의 연애는 성업(?)을 이루고 심지어 수익까지 가져다주겠지만 어중간한 사람들은 비슷하게 어중간한 사람들을 만나 돈과 시간을 쓰느니 그냥 뛰어난 외모를 갖춘 아이돌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가상인물과 연애하는 일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측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들도 일부 나타나겠지만 대세가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KBS시사직격 : 연애산업 전성시대 VS 연애하지 않는 사회>를 보고는 '생각보다 빨리 대세가 될 지도...'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 다큐는 1인 가구와 연애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연애 예능'과 '결혼정보회사' 등으로 대표되는 연애 산업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고 관찰하며 그 이유 중 하나로 '가성비'를 꼽았다.

환승연애가 그렇게 인기였다면서요. 마지막회 상영회를 극장 대관해서 했다던데 아 격세지감. /유튜브 캡처


5.

3)이 중간자는 도태를 걱정해야 한다는 내밀한 메시지를 전달한 가운데 1)과 2)도 상당히 디스토피아적이다. 1) 첫인상 지상주의는 최근 논의가 한창인 ‘포스트 트루스(탈진실)’의 이야기와 맥이 닿는 내용이다. 즉 이제 옳고 그름 혹은 팩트는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거다. 사람들은 패키지에 따라 메시지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래서 패키지를 ‘과장하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저자는 이런 ‘포스트 트루스’의 사회를 극단까지 상상해보는데 “거짓말보다 진실을 믿으라고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가까운 미래 사회에서 ‘매너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풀어낸다. 종교(창조론)가 아닌 과학(진화론)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게 오늘날 매너 위반이 됐듯이 말이다.

2) 생각하는 대신 찾는다는 것은 여론에 휩쓸리는 대중을 의미하기도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의견을 내기보다는 세상에 뿌려진 수 많은 의견 가운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의견을 찾아 그것을 내 해답으로 삼을 것이다.


이 세 가지 가치관 변화는 서로 영향을 주며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갈 것이다. 진실보다는 의견이 중요시되며, 그렇게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극단적인 주장을 증폭하는 세상. 어중간한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과장된 가짜를 살아가며 그런 가짜를 알면서도 흠뻑 빠져 즐기는 세상.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한 것은 현실이 그만큼 각박하고 심지어 때로는 비참하기 때문일 거다.

저는 문화가 항상 진실의 상위에 위치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화를 믿을 것인가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받아들이고싶은 문화를 선택하고, 선택한 문화의 세계를 살고 있을 뿐입니다

선거를 통해서도 사회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노력해서 공부나 일을 해도 학교나 직장에서의 나의 위치는 바뀌지 않습니다.
사회도 자신도 변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과장하는 것'뿐입니다.
강렬한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보정 해야 합니다.”


6.

내가 발췌한 내용들을 읽으면 진짜 암울한 느낌이긴 한데, 사실 저자는 이런 전망들을 그리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두근두근 기대된다는 분위기로 글을 전개했는데,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이런 변화에 발맞춰 정치/경제/사회/미디어 등 모든 영역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책 후반부의 골자다. 인공지능은 개발될 수밖에 없고 버추어 인간은 탄생할 수밖에 없으며 메타버스의 세계도 조만간 구현될 수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정치인은 차라리 업무 전반을 인공지능에 맡기는 대신 자신의 인간적 카리스마와 매력을 갈고 닦아 유의미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조언 같은 것들.

현실의 비참함을 느끼는 것보다 각자가 원하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모두가 같은 현실을 살아간다’가 아닌 각자가 모두 다른 현실을 살아간다.
이것이 인류 모두의 희망이고 이런 소비자의 요구는 멈출 수 없을 겁니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광범위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에 대해 제대로 정보를 모으고 차분히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치인들도 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유권자의 눈치도 봐야하기 때문에 결국 비슷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정당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명쾌한 의견을 내던지는 정치인이 나오면 재미가 있습니다.
캐릭터가 분명하기 때문에요. 인기인이 됩니다.
그러면 가질 수 없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더욱 영향력이 커집니다.


7.

미래 사회에 가장 취약할 우리 중간자들도 전략 수정이 요구되는 때다. 세계가 하나가 되고 세계가 전국시대의 치열한 전쟁터로 변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지역 한정'이 살아남는다. 그러니깐 상품의 시장을 세계 범위 > 전국(국가) 범위 > 지역 한정으로 나눌 경우 지금은 대부분 중간을 목표로 먼저 움직이지만 앞으로는 양극단만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 1등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신만의 유니크함을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일 거다.


덧붙여 재능도 어중간하고 유니크함도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거나' 또는 '잘하고 있는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것'을 권했다. 그 옛날 골드러시 시절에도 찐거부가 됐던 사람들은 금광을 찾아 떠난 사람이 아니라 금광 근처에서 밥팔고 청바지를 팔았던 사람들이라는 거다. 예컨대 유튜버로 성공하고 싶은데 재능이 부족하다면 글로벌 1등 유튜버가 어떤 주제를 주로 다루는지를 보고, 그 주제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유니크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면 분명히 그 샘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같은 거다. 결국은 유니크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다소 암울한 결론. 저자가 이런 디스토피아적 전망에도 시종일관 발랄한 것은 아무래도 스스로는 중간자가 아니라는 각성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줄평 : 결론은 마음에 안들어도 미래 전망은 흥미로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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