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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골절 재택일지

점프만 했을 뿐인데 골절이라니

by 조용한성장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다치는 경우가 있다.

점프만 했을 뿐인데 골절이라니. 다리 골절, 벌써 20일차다.

복직 후 새 부서로 이동해 3개월 차에 접어드는 중이다. 아직 적응 중인 시기인데, 갑작스러운 부상이라니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재택근무가 가능해 집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 또한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멀리서 바라보니 그동안 잘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조금씩 맥락을 드러낸다. 불편한 관계도 서면으로 소통하니, 오히려 정중하고 단정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직을 고민 중인 요즘, 준비할 여유가 생겼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일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나는 교육 기획을 맡고 있는데, 업무의 많은 부분이 담당자들을 설득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다. 그런데 얼굴을 마주할 수 없으니 그런 과정이 느려진다.
두 번째는, 점점 대면 소통이 불편해지고 있다는 것. 화면 밖에서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로 이어지는 듯하다. 익숙해진 비대면 소통에 비해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일은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은, 긴장이 풀려버린 일상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 덕분인지, 업무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컨디션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혈액순환도 좋지 않다.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GPT와 이야기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서 다리가 저릿저릿해 GPT에게 좋은 자세를 물어봤더니, 적절한 사진까지 보여준다. 참 좋은 세상이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1일 오전 09_49_00.png 이런 자세로 일하라고 제안해준다. 이대로 일하는 중
KakaoTalk_20250401_101119883_02.jpg

오늘도 병원에 다녀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래도 재택근무 덕분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으로 업무를 시작해본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다리를 다친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우연한 사고였지만, 어쩌면 하늘의 뜻이었을까.
복직 후 첫 3개월은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데 참 중요한 시기인데, 이런 시간을 다리 골절이라는 뜻밖의 방식으로 지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이 회사의 장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하는 방식이 너무 나쁘지 않다는 점.
배울 것도 있고, 사람들도 꽤 괜찮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

나는 지금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걸까?
내 의사소통 방식이나 문서 처리 방식은 괜찮은 걸까?
팀과 협업할 때, 불필요한 오해를 주진 않았을까?

그렇게 나의 장점과 단점을 조용히 떠올려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곧 시작될 40대,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앞으로 3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솔직히 요즘은 의욕이 없다. 3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냥, 시키는 일이나 잘하고 싶다는 마음뿐)

하지만 그런 마음조차도 솔직히 마주하는 지금,

어쩌면 이 조용한 시간들이 내 안의 새로운 무언가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은 모른다. 다만, 잠시 멈춘 지금 이 시간도 분명 의미는 있을 거라는 믿음만은 놓지 않고 싶다.

단순히 다리를 다친 ‘비상 상황’이 아니라, 내 삶과 일, 앞으로의 방향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되는 ‘전환기’가 될 수 있게 휴식과 충전, 그리고 일을 더 유연하게 잘 해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될 수 있게

조금 느리게, 그러나 나를 잃지 않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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