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포선라이즈'
우리가 열정으로 관통한 시간들은 한참 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이런 느낌을 준다. ‘그건 마치 꿈과 같았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어.’ 서툴렀던 우리의 첫사랑을 떠올려보자.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열정에 사로잡혀 보냈던 시간들. 우당탕탕 부딪치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 떠올리면 희미한 미소를 띄우게 만드는 순간들. 마치 달콤한 꿈같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기억이라는 놈은 미화하기를 좋아해서 상당부분 왜곡과 과장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 하나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도 행복한 것 아닐까. ‘비포선라이즈’라는 영화는 ‘여행’과 ‘사랑’을 결합시켜 인간이 꿈꿀 수 있는 낭만의 끝판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정말 꿈을 꾸고 난 것처럼 한동안 그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만 같다. 그만큼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이 갖고 있는 모든 환상과 로망들을 툭툭 건드린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생각만큼 그렇게 아늑하지만은 않다. ‘사랑’과 ‘영원성’, 결코 함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씁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이다.
“정신 나간 생각이라는 건 아는데, 너한테 물어보지 않고 이대로 내리면 이 생각이 평생 날 쫓아다닐 거야.
나랑 같이 비엔나에 내려서 마을을 둘러보면서 하루 동안 함께 있을래?”
전반적인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제리와 셀린은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비엔나를 여행하게 된다. ‘우연’, ‘낯선 여행지’, ‘처음 만난 남녀’, ‘사랑’, 단어만 들어도 벌써 설레는 이 설정은 우리의 환상과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둘은 하루 동안 비엔나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주치는 사건들을 함께한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다가 공연에 초대받기도 하고, 공동묘지에서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또 손금 봐주는 노파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강가의 부랑자가 지어준 시를 돈 주고 사기도 한다. 영화의 대부분이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지는데, 대화 내용을 보면 굉장히 진지한 것들이 많다. 결혼, 사랑, 죽음, 페미니즘, 꿈 등등. 특히 남녀의 차이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하는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서로 셀린은 남자를, 제리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거기서 어떤 혐오의 느낌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런 주제로 싸우면 안 좋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농담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뭔가 혐오의 차원을 넘어간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해를 위해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서로의 생각을 진지하게 나누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주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에서 두 사람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만한 매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LP 가게, 놀이동산, 교회, 클럽 등 발길 가는 대로 여행을 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낸다. 그렇게 밤이 되고, 두 사람은 이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로의 마음이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래를 약속하기보다 그냥 오늘밤을 멋지게 만들기로 결심한다. 둘은 포도주와 와인잔을 가게에서 훔쳐 나와 잔디밭에서 환상적인 밤을 함께 보낸 후 다음 날 기차에서 6개월 뒤에 만나자는 말과 함께 이별한다.
사랑에 있어서 우리의 언어가 얼마만큼의 역할을 할까. 거의 안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이제 파리에 전화를 할거야. 8시간 후에 같이 점심 먹기로 돼있는 내 단짝 친구한테 말이야.
휴게실에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 때 자기 얘기를 하더라고. 어릴 때 자기 증조할머니 유령을 봤다는 거야.
그때 홀딱 반했지. 아름다운 꿈을 가슴에 품은 꼬마 애를 상상해봐”
(사랑스런 상황극. 너무 예뻤다. 이런 식의 고백. 연인들끼리 할 수 있는 가장 재밌고 행복한 놀이.)
(‘삼포가는 길’이 떠오른다. 너무나 이 영화와 닮아있는 소설)
슬프지만 이 영화의 결론을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는 ‘사랑’과 ‘영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시작부터 끝이 있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이 영화는 ‘영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영원’의 의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영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먼저 ‘영원한 관계’는 없다고 말하는 제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왜 관계가 영원해야 하지? 모든 건 끝이 있잖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간과 어떤 특정한 순간이 중요하단 생각 안 들어?”
“맞아, 우리한테 오늘 밤이 그렇듯이 말야
제리는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순간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셀린도 거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깊어짐에 따라 둘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행복도 좋지만, 이 행복을 계속 가져가고 싶으니까. 누군가가 그랬다. 행복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불행이라고. 상대방으로 인해 내가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사람이 사라지면 그 행복이 고스란히 무한한 불행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과연 오늘의 행복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겁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그렇지만 두 사람은 그러한 두려움을 뒤로한 채 멋진 밤을 보내고자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현재의 사랑을 깨치는 일임을 알기에 두 사람은 너무나 힘들지만 그러한 생각들을 꾹 눌러놓고자 했고, 성공한 둘은 앞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밤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번에는 셀린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자.
“할머니는 남편밖에 모르는 분 같았어. 그런데 고백하길 평생 맘속으로 딴 남자를 그리며 사셨다는 거야.
운명에 순응한 거지. 정말 슬픈 일이야. 한편으론 기뻤어. 그녀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게”
“차라리 잘 된 거야. 그 남자와 만났으면 결국 실망했겠지.”
“네가 뭘 알아?”
“난 알아. 사람들은 낭만적 환상을 갖길 좋아해. 아주 비현실적이지.”
셀린의 할머니는 남편 말고 다른 남자를 평생 마음속에 그리며 사셨다. 그렇다면 평생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산 할머니는 불행했을까. 할머니는 나중에라도 그 남자를 만났어야 했을까. 사랑은 꽃피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꽃이 지듯 사랑도 끝난다. 그래서 중요한건 꽃이 폈느냐 안 폈느냐지 꽃이 언젠가는 진다는 사실이 아니다. 정말 슬픈 건 한 번도 꽃피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폈기 때문에 지는 것이다. 피지도 못한 꽃은 질 일도 없다. 셀린의 할머니는 활짝 폈던 꽃 하나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다는 듯이 제리는 셀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잘 된 거라고 얘기한다. 만났으면 실망 했을 거라고. 제리 말처럼 어쩌면 그런 낭만적 환상하나 갖고 있는 게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할머니 마음속에 있는 그 남자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테니까. 셀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시인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집안의 반대로 자야와의 결혼이 무산되자 백석은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자야는 백석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6.25전쟁이 일어나고 백석은 북쪽에 자야는 남쪽에 남겨지게 된다. 자야는 왜 백석을 찾지 않았을까. 사실 자야가 마음만 먹었다면 백석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라도. 하지만 자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자야가 셀린 할머니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 재밌는 건 그녀의 저작 ‘내 사랑 백석’에서 묘사되고 있는 백석은 모두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젊은 시절 백석의 모습이다. 그렇다. 셀린의 할머니도 그렇고 자야도 그렇고 모두 그냥 자신의 사랑을 가슴속에, 아니 ‘영원’ 속에 그냥 묻어두고 싶었던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제 이 영화에서 말하는 ‘영원한 사랑’의 의미가 조금씩 그 윤곽이 잡히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영원’은 결코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 아니다. 사람이 변하듯 사랑도 변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이 영화는 다른 차원의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수평’으로서의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 ‘수직’으로서의 ‘영원한 사랑’ 즉, ‘영원’히 가슴속에 남을 그런 강렬한 사랑. 이 영화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사랑’과 ‘영원’이 결합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영원 속에 남겨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셀린의 할머니, 자야 두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찾으러 가고 싶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그 마음을 꾹 눌러 참은 것이다. 그것만이 사랑을 영원 속에 간직할 유일한 방법이니까.
잔인하게도 사랑은 이렇게 우리에게 성숙함을 요구한다. 마치 배고픈 나에게 지금 막 나온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먹지 말라고 하는 거니까. 과거에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실제로 만나서 확인하게 되면 우린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그런 걸까. 그렇게 먹고 싶던 스테이크를 게걸스럽게 다 먹어버리면 기분이 썩 좋진 않다. 부어 오른 배를 보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괜히 먹었다고. 그것을 먹지 않고 참았더라면 아마 그 스테이크는 영원 속에 남아있을 텐데. (군대 가기 전 결국 못 먹었던 그 김치찌개는 내 마음에 아직까지도 남아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이성복 시인은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것은 생리이며, 결코 인간적이라 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사랑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식에 숙달되는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사랑은 자연스러운게 아닐지도 모른다. 때때로 사랑을 위해서는 시인의 말처럼 자연과 본능과 맞서 싸워야하는것 아닐까. 사랑을 지키는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둘은 결국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해져있던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둘은 전화번호와 주소도 교환하지 않기로 한다. 꿈만 같았던 하룻밤의 사랑을 현실로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방법을 알았다. 게걸스럽게 먹어버리지 않는 것. 힘들지만 우리가 사랑을 영원 속에 남겨두기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사람들은 주소랑 전화번호를 주고받지만, 그럼 그저 편지 한 통, 전화 몇 번으로 끝나버리는 걸“
“맞아 그렇게 사그라들지.”
그렇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누가 행복한 꿈에서 깨고 싶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들어오는 기차처럼 어김없이 다가온다. 두 사람은 결국 참지 못하고 6개월 뒤에 이 곳에서 만나자고 하며 헤어진다. 하지만 과연 6개월 뒤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기 위해 여기에 다시 올까. 장담하건대, 사랑을 간직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