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영과 본질 Sep 06. 2023

중고

저번에 샀던 펜이 벌써 지겨워졌다. 더 이상 흥미가 없어졌나 보다. 흥미가 떨어지고 손이 가지 않는 것들은 나에게 잠시동안의 반짝임을 주고 금세 잊힌다.


많은 사람들도 나도 소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합리적인 소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질 정도로 많다. 쓰는 방법은 모두 다르겠지만 핵심은 같다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소비만큼의 가치를 주길 원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엄청난 소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중고시장이 활발하게 된 것은 당근마켓이라는 어플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인 것 같다. 물론 그전부터 중고나라 같은 커다란 중고시장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중고물품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꾸고 그것을 활성화시킨 것이 당근마켓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이런 중고시장의 활성화는 어느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상에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호기심에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사고 파는지 중고시장을 탐방해 보았다.


가치를 위한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중고시장의 규모도 엄청났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소비를 한 것에 대해 흥미와 가치를 잃었거나 더 이상 자신에게 쓸모가 없어지거나 금전적인 문제로 그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는 사람들은 새로 구매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이러한 중고시장의 메커니즘은 모두에게 이로워 보였다.


활발해진 중고시장 탓인지 나도 지겨워진 지난날의 펜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을 팔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고 그것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덧붙여 물건을 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문자를 받고는 기분이 이상하고 신기했다. 나는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는 원하고 사고 싶어 했다. 우리의 거래는 이변 없이 깔끔했다. 처음 펜을 샀을 때의 애정으로 관리가 잘 된 물건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고 상대도 그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나의 펜을 떠나보내고 난 후 나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팔아버린 펜을 잊고 얼마가 지났을까, 한 친구가 내 중고물품의 거래에 대해 물어봤다. 대충 자신의 중고물품 거래를 도와 달라는 눈치였다.

나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다.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친구의 집에 도착하고 팔려고 하는 물건을 보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팔려고 하던 것은 그가 굉장히 아끼던 피아노였기 때문이다. 그는 거의 유일한 취미이면서 절친한 친구로 삼았던 피아노를 팔려고 했다. 나는 그의 판매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더 좋은 피아노를 구매했어”였다. 단순 그것이 이유라고 말했다. 그가 어려서부터 쳤었던 그 피아노는 새로운 피아노에 대체되었다. 친구는 그 피아노를 정성스럽게 닦고 아꼈던 그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피아노를 판매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와 피아노에 대해 함께 회상하며 그것을 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피아노를 판매하고 이미 새로운 피아노를 들였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그것을 보기 위해 친구네 집을 다시 방문했다. 친구는 새로운 피아노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었다. 마치 전에 있던 피아노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물론 하나의 추억으로는 자리 잡았겠지만 그것은 더 이상 현재 그의 흥미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중고품이 된다는 것은 정말 슬픈 것이구나, 처음의 마음이 모두 식어 없어지고 나면 그것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가 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것까지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우리가 물건만을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물건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그렇기에 소비한 감정들도 중고가 될 수 있다. 허튼 소비를 하면 중고품으로 팔려 나가듯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빛이 나던 감정도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중고가 될 수 있다. 정성스럽게 피아노를 닦았지만 결국은 팔려버린 친구의 피아노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거나 흥미를 잃어버린 중고가 되지 않겠다고.


세상은 성장하고 발전하며 계속 이전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은 이전의 것을 중고로 만든다. 나의 펜이 누군가에게 넘어가고 그것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넘어갔을지 모르는 일이다. 나는 중고가 되지 않기 위해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중고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것이니까.

이전 02화 우리는 두려움 앞에 바보가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