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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영과 본질 Aug 11. 2023

당신의 꽃이 꺾인다 해도

‘툭’ 결국 떨어졌다, 그 꽃이. 씨앗부터 남 달랐던 그 꽃은 튼튼하고 빛이 났다.

그리고 금세 정원 속 수많은 꽃들 사이에서 가장 아름답고 크게 만개했다. 엄청나게 비가 내렸던 날도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날도 유일하게 버텨내던 꽃이었다. 그랬던 그 꽃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정원 속 자랑이었던 그 꽃을 떨어뜨린 건 비도 바람도 아니었다.


나의 정원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다. 비도 바람도 동물도 심지어 사람까지도. 내 정원 속 꽃들을 보여주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정원의 출입자들은 내 꽃들의 성장을 돕는 좋은 영양분이 되었다. 그랬던 나의 정원에 그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내 꽃들을 누구보다 예뻐했고 크게 성장시켰다. 그랬던 만큼 그 사람은 작고 초라한 꽃들을 손쉽게 떨어뜨릴 수 있었다.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 꽃들은 마음대로 정리했다. 이미 아름답게 만개한 다른 꽃들에 현혹되어 그 사실을 몰랐다. 아름다운 꽃들이 점점 커지고 튼튼해졌다. 작은 꽃들은 어느새 모두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침내 나의 정원에는 크고 아름다운 몇몇의 꽃만이 남았다.


그 사람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였다. 그는 하루의 많은 기간을 나와 함께 보냈기에 나를 잘 알았고 그런 나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강의가 있어 그것을 구매하려고 했었다. 그것을 본 친구가 말했다. ‘야 하지도 않을 거 굳이 왜 사냐? 너 어차피 안 할 거 다 알아.‘ 마치 자신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 내가 하려는 것을 그만두라고 했다. 나의 작은 꽃들은 그런 식으로 친구에 의해 부정당하고 꺾여버렸다.


크고 아름다운 꽃들은 비바람에도 끄떡없고 다른 사람들은 그 꽃들을 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 정원을 그렇게 만든 그 친구는 꽃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결국 정원에는 정말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꽃만이 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그 꽃은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그 친구와 내가 관계를 이어나갈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떨어뜨리고 꺾어버린 수많은 꽃들에도 굴하지 않았고 친구라는 것을 이유로 모든 것을 참았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상처를 건드리는 친구 앞에서 나의 그 꽃이 ‘툭’하고 떨어졌다. 내 정원을 마음대로 가꿨던 친구는 그 마지막 꽃을 떨어드리고는 사라졌다. 내 정원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정원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있던 날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나의 꽃들이 사라져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의 자존감이었던 꽃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일상을 무료하게 보내던 중 다른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문자가 왔다. 자신의 졸업전시가 있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반가운 친구의 소식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벌써 졸업이라는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그런 친구의 전시를 생각하다 보니 내가 친구의 정원 속 꽃들을 성장시킬 수도 꺾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의 정원에는 전시 외에도 많은 꽃들이 있었다. 친구는 전시의 꽃이 꺾이더라도 잠시의 슬픔을 겪고는 다른 꽃들을 보며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나의 정원에 피어있던 수많은 꽃들을 떠올려봤다. 다양한 꽃들이 조화를 이루며 나의 정원을 빛내고 있었다. 많은 꽃들이 피어있던 때에는 꽃 하나가 꺾여도 극도록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꽃들이 피어나기 위해 새싹부터 자라온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좋아하기에 정원 속에 뿌려두었던 씨앗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성장시켰던 꽃들이다. 이제는 그때처럼 새로운 씨앗을 심을 차례다. 씨앗을 심고 새싹이 피어나고 꽃이 만개하기까지 그 시작은 씨앗을 뿌리는 것에 있었으니.


우리는 종종 최고라는 의미로 꽃을 쓰곤 한다. ‘자신감은 나의 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당신의 꽃은 무엇인가? 당신의 정원 속 최고인 그 꽃은 무엇인가? 우리는 정원의 성장을 위해서 정원의 문을 열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당신의 꽃을 밟을 수도 있고 성장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 당신 최고의 꽃이 밟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당신 정원 속의 작고 초라한 꽃들도 모두 최고가 될 수 있는 꽃들이다. 꽃이 피기까지 씨앗부터 새싹의 과정을 지나듯 당신의 모든 꽃들은 결국 만개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나처럼 정원 속 모든 꽃들이 꺾인다 해도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내 정원 속 작게 피어난 수많은 새싹들이 내게 말해 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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