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는 물방울들이 추워진 날씨를 버티지 못하고 하얀 결정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외출을 한 나는 달라진 사람들의 옷차림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추워진 날씨에 적응도 하지 못한 채 나는 추위에 떠는 꼴이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무언가를 강하게 원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을 바라보며 걷는다. 매년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겨울이 좋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 때문도 아니고 새콤달콤한 귤 때문도 아니다. 그저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다.
온기의 힘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매 겨울마다 깨닫는다. 그러나 비스듬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봄이 그리고 여름이 온다. 나는 다시 온기의 힘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상관없다. 다시금 온기의 힘을 깨닫는 순간들이 내가 겨울을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이기에.
겨울의 추위는 온기를 더욱 원하게 만든다. 나는 제일 먼저, 얼어붙은 마음에 온기를 원한다. 날씨도 추운데 마음까지 얼어붙어 있다니 과연 얼마나 추운 겨울일까 걱정이다. 매년 겨울 얼어붙어 있는 마음이 있다면 기꺼이 나는 그것을 녹인다. 마음이 얼어버린 당시에는 분명 단단했던 마음이 녹이고 나면 젤리처럼 말랑말랑하다. 마음을 얼려버린 것은 나인데 시간이 지나 녹이고 나니 유치하게 느껴진다. 역시 온기의 힘은 대단하다며 감탄하고는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매일 연락을 하진 않더라도 우리는 친구다. 우정이 보이지 않는 끈의 형태를 한 채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끈을 빌미로 나는 연락을 한다. 거기에 녹아 말랑해지 마음의 힘까지 조금 보태서. 물론 나는 친구에게 얼어붙었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얼어붙은 마음을 굳이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매년 겨울이 주는 온기에 그 마음을 맡긴다.
마음도 녹였겠다, 다음은 따스함이 온몸을 감싸는 그 느낌. 겨울의 진정한 매력에 빠질 차례다. 나는 겨울에 하는 샤워를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사실 샤워란 참으로도 귀찮게만 느껴진다. 몸이 찝찝해져 억지로 하기 전까지는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샤워도 겨울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우리 집에서 유난히 추운 나의 방에서 나와 샤워를 위해 몸을 덮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벗는다. 오묘한 냉기가 몸을 간지럽히는 것 같다. 몸에 조금씩 닭살이 돋는다. 옷을 벗는 와중에도 따스한 물속을 생각한다. 그렇게 마주한 따스한 물은 내 몸을 당연하듯 안아준다.
2023년은 내가 맞이하는 23번째 겨울이다. 그리고 내가 맞이하는 23번째 온기다. 올해 겨울이 주는 온기에는 용기가 섞인 듯하다. 추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녹이다 보니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미루고 미루었던 글쓰기를 위해 나는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표정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창작의 고통에 찡그리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고는 웃기도 한다. 이번에도 겨울에게 신세를 지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매번 신세만 지는 게 미안해서라도 올해의 겨울엔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용기 내어해보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던. 우선 소중한 친구들에게 내가 받은 온기를 나누려고 한다.
매번 고마워 겨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