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기차는 13시 16분 출발이었다. 설렘반 걱정반.
생각한것보다 지루할까봐 걱정되는것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혼자 타지로 가는거라서 심장이 너무 콩닥댔다. 열심히 나 혼자 짐을 쌌다. 집에 있는 멋진 겨울옷들부터 많은 사진들을 찍을 디카까지. 캐리어가 터질 것만 같았다. 2시간 전에는 여유롭게 출발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장갑을 가져갈까 고민이었다. 집에 핫팩이 있나? 출발할 땐 눈이 왔다.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참 좋았는데 이젠 눈이 와도 우산을 쓰고 다닌다. 소중한 내 두피.
대전역까지 가는데 1시간인데 혹시 늦을까봐 약간 불안했다. 버스가 11시 30분 출발 예정이라 해놓고 45뷴으로 바뀌어서 진짜 불안감이 증폭됐다. 듣던 음악마저 잠시 멈추고 택시를 타고 가야되나 빠른 걸음으로 가야되나 고민가지 했지만 다행히 3분뒤 도착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짐도 꽤나 있었고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부로 핸드폰에 투명케이스를 꼈지만 카드 지갑 케이스로 바꿔서 올 걸..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대전역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나만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타서 그런지 약간 부끄러웠다. 버스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데도 계속 지도로 내 위치를 확인하면서 이게 맞는건지 재차 확인했다. 진짜 잘못타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나선 바깥 풍경도 보면서 잠시 여유를 좀 가졌다. 아무래도 한 지역에 11년 넘게 살면서 너무 틀어박혀 있었던 것 같다. 바깥 풍경은 내가 와본적도 없는 곳이었다.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을 계속 계산해봤다. 아슬아슬 할 것 같기도 했다.
버스에 있는데 바깥 이랑 온도차는 심해서 유리창은 습기로 가득하고 엔진소리밖에 안들리는 버스는 조용해서 사진을 남겨보았다. 뭔가 '사평역에서'가 영상물로 제작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대전역 정류장 도착. 버스가 도착했는데 도대체가 역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쭉 따라갔더니 대전역이 보였다.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비둘기도. 외국인, 군인, 담배피는 아저씨들, 예수를 믿으면 행복해진다는 목소리, 구세군 아저씨 등등..역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올라갔다.오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난 성심당 빵을 사서 이번 여행동안 묵을 집을 제공해주시는 할머니께 갖다드리기로 했어서 성심당을 먼저 찾아야했다.
우선 13시 16분 무궁화호가 어디서 타는지 확인, 10번트랙이었다. 그리고 성심당 위치를 찾으려고 했다. 근데 정말 아무리 둘러봐도 성심당 위치가 보이지 않아서 인터넷에 3번을 검색해가며 겨우 찾아냈다. 마침내 도착한 성심당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으으....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그래도 시도해보기로 하고 들어갔다. 빵을 무사히 구매하고 10번 트랙을 찾아갔더니 한 20분 전부터 기차가 대기중이었다. 어쩐지 전광판에 빨강 불빛이 점멸하고 있던데 그게 대기중이라는 표시였나 보다. 근데 이런, 내가 내린 곳은 6호차쪽이었고 내가 탈 차는 1호차여서 좀 걸어갔다. 출발 시간은 13시 16분이지만 진짜 혹시 먼저 기차가 문을 닫아버릴까봐 잰걸음으로 날 재촉했다.
기차 입성. 문을 열려고 했는데 아무리 힘을 써봐도 문이 열리지 않는 거다. 미닫이 문인줄 알았는데 여닫이 문이었다. 반대인가. 여튼 ktx애서는 항상 옆으로 열려서 얘도 그런줄 알았는데 그냥 밀면 되는거였다..... 기차 내부는 꽤나 넓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 내 옆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근데 이게 무슨일인지. 내가 다 알아보고 예매한 3번 창가자리에 콘센트가 없었다. 책상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콘센트까지 없을줄은..... 몰랐지 난. 그래도 당장 충전이 필요한 제품은 없어서 그냥 그런대로 짐정리를 하고 착석을 했다. 그리고 화장실이 어딨는지 가보았다. 웬걸, 거울이 참 구식느낌이 났다. 그런대로 즐거웠다 하하. 디카를 꺼내서 창밖을 찍어보고도 싶었는데 너무 찰칵 소리를 연발할거같아서 참았다. 더군다나 내 옆옆자리에는 커플 한 쌍이 타셔서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살짝씩 눈이 내리는 창밖. 기분이 좋았다.
이젠 어느정도 가닥이 잡혔고 부산까지 내리지만 말고 타고 가면 되니 이어폰을 꼈다. 원래 책상이 있었다면 할게 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안정을 좀 취하기로 했다.
친구가 준 초콜릿도 까서 먹어봤다.. 음.. 카카오 72프로의 진한 초콜릿맛.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들은 기차안에서 처음 들은 노래. '#2021' 원래 이노래는 연말에 듣는데 어제 졸업여행으로 서울에 갔을 때 친구가 이 노래를 언급해서 기억 속의 이 노래를 꺼내주었다. 유난히 이번에 들을 때는 더 좋았다. 앞으로 뭘 하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리고 어느역에 도착했는데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시끄럽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냥 저기서 여기로 담장 넘어서 오면 바로 탈 수 있는건가 생각도 하면서 역세권이군... 생각도 했다.
눈이 빠르게 흩날리는 건지, 기차가 빨리 달리는간지, 당연히 후자겠지만 그래도 전자로 생각하며 봤을 때 느껴지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의자 등받이를 최대로 내리고 편안히 갔다. 당연히 뒷좌석에 아무도 없았다. 좀 자고 일어났더니 구미역에서 사람이 엄청 많이 타기 시작했다. 거의 만석. 내리고 있었던 등받이를 올렸다. 그리고 확인해보니 내가 갈 구포역은 부산역 바로 전 역이었다. 난 마지막역에서 내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냥 편히 잤다간 부산역까지 갈 수 있으니까 앞으로는 좀 신경쓰기로 했다. 칠곡역에서도 사람이 많이 탔다. 어우. 다행히 내 옆자리는 아무도 안탔다. 무궁화호는 문이 참 신기하다. 엄청 힘을 줘도 꿈쩍도 안하던 문이 역장님의 손목 한 번에 경추를 힘없이 굽힌다..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란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 살인자의 기억법 중-
폰 배터리도 거의 없어서 듣던 음악을 멈추고 보조배터리에 연결 한 뒤 책을 폈다. 책을 여행 동안 펴볼일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짐이 될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매우 재밌어서 빠르게 읽혔다. 좋은 책 같았다.
거의 다왔다 약 25분 정도. 새삼 동생이 사준 내 신발에 감사함을 느꼈다. 정말 올해 계속 신었다. 이번 여행도 무사히 함께할 수 있길. 다음 동생 생일 때는 나도 신발을 사줘야겠다. 옆자리 내 또래로 보이는 친구...? 미대생인가? 화통을 들고 다니는게 멋있어 보였다. 롱패딩에 화통 달랑 하나. 예술가스러웠다. 무궁화호는 확실히 사용 연령층이 좀 높았다. 부산에 다 와갈때쯤이 되니 열차 안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토크 소리로 점차 채워지고 있었다. 뭐 나쁘지만은 않았다. 배경음악 정도의 느낌이라.
마침내 도착했다!!
할머니집에 도착하니 뭔가 어색해도 편안한 느낌이 느껴졌다. 난 침묵이 어색한걸 싫어한다. 침묵마저 편인한 관계가 진짜 좋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집에 도착해서 밥부터 먹었다. 먹고싶었던 회도 많이 먹고 산낙지도 먹었다. 정말 진수성찬이고 감탄을 연발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맛있었던 밥. 따뜻한 전기장판. 편안했다. 재밌는 얘기가 오고가지 않았어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밥을 먹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타지라서 운동보단 걷기에 초점을 맞췄다.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평소엔 못봤던 모양의 가로등도 보고 초등학교도 지나왔다. 부산에는 빨간불에도 카운트다운이 있었다. 화명생태공원에 도착했다.
대동화명대교를 보고, 생태공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걸어갔다. 괜히 돌아오면서 내가 이 정도로 행복하게 여유를 가져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대학가면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동시에 앞으로 더욱더 발전을 위해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하든 견디고 열심히 하는걸로.
다 씻고 누웠다.. 아주 편안한 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니까 피곤할거다. 내일을 위해 난 빠르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