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춥다
아침 7시 10분쯤에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했다. 컨디션은 평소와 비슷했고 씻고 나서 머리를 말린 뒤 아침밥을 먹었다. 역시 할머니 집밥은 담백하게 맛있다. 오늘은 기장으로 가기 때문에 지하철을 탄다. 아마 밖에선 추워서 폰에 제때제때 글로 기록을 못할 터이니 사진으로 많이 남겨놓고 최대한 흘러가는기억을 붙잡아 두자고 생각했다.
인생 첫 지하철. 자동으로 카드를 찍으면 돌아가는 건 줄 알았는데 내가 들어가서 밀어줘야 되는 거였다. 지하철에는 생각보다 서서 가는 사람들도 많고 따뜻했다. 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게 대한민국의 출근길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환승해야 돼서 중간에 하차했는데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여기 맞춰서 빨리 가야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지하철을 타니까 '시티즌'이 된 느낌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복잡하진 않았고 먼 거리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승한 뒤 40여분 정도를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그동안에 할머니들끼리 자리를 양보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초행길이라 이어폰을 안 끼고 다니는데 이렇게 주변일을 관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느낌 있는 거제역 무드.. 나중에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왼쪽은 급한 사람 전용길이라고 한다... 암묵적 룰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근데 왜 지하철 좌석은 이렇게 마주 보게 일렬로 돼있을까. 내리기 편하라고 이렇게 만들어놨나? 열차처럼 해놔도 공간 상의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타고 내리기의 용이성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살이 돼도 껍질만 성인일 수 있다. 진짜 성인이 되려면 진짜 성인처럼 행동하자. 부모님께 용돈 바라지 말고, 열심히 살아서 혼자 써보고, 혼자 책임지고 스스로 부딪쳐보는 거다.
마침내 목적지 부근인 월내역에 도착해서 웨이브온 커피로 걸어내려갔다. 근데 가는 길에 바다가 너무 예쁘길래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돌렸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마 이때는 부산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바다라서 더 사진 속에 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여유롭고 아주 좋았다. 정말 핫팩이 없었다면 큰일 났을 수도 있었을 거다. 사진을 다 찍고 커피숍까지 5분 정도 걸어왔다. 10시 오픈인데 11시쯤 도착해서 사람이 많이 없었다. 아주 좋은 산택. 가자마자 메뉴판은 보지도 않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확실히 경치는 좋은 카페였다. 6000원은 자리값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커피를 시키고 3층으로 올라가서 먹다 남은 다크초콜릿과 함께 여유를 즐겼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지평선이었다. 여긴 확실히 누군가와 같이 와서 한 가을쯤에 바깥에서 누워서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두고, 갈 길이 바빴기 때문에 다음 행선지로 발을 옮겼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어차피 나 혼자 다니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의 눈치도, 계획대로 완벽히 수행할 필요도 없어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바다를 따라 걸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정말 좋았다. 잠시 윤슬을 보며 사색해보기도 했다. 갈매기들도 참 많았다.
여기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임랑마을이다. 집에서 새벽에 들리는 길고양이 소리는 정말 짜증 났지만 이상하게 여기선 정겨웠다. 마침내 도착한 정류장. 그런데 확인해 보니 배차간격이 45분..........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혹시나 다른 버스를 타면 대참사라서 정말 주의 깊게 살펴보고 180번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근 1시간 정도를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새삼 자가용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다음 행선지는 죽성 드림 세트장이었다. 굉장한 경치였지만 사실 사진도 엄청나게 찍어서 그 뒤에는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탈출해야 되는데 근방에 마을버스밖에 안 다녀서 또 40분을 기다렸다.. 너무 추웠기 때문에 공중화장실에서 좀 기다렸다가 해녀마을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언제 이런 날 것 그대로의 여행을 나 혼자 해보겠는가...
이제 부산 롯데월드를 갔다가 이케아에 저녁을 먹으러 간다.
최악의 롯데월드!!!! 한파로 인해 운휴 하는 어트랙션이 태반이었다... 내가 탈 만한 놀이기구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돈을 날린 셈이다. 기분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그러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으로 진정을 한 뒤 이케아로 왔다.
나의 저녁밥. 점심을 걸렀기 때문에 진짜 먹고 싶은 걸 다 담았다. 그래서 이 한 끼에 3만 원 정도 썼다. 이케아. 예상외의 맛집이었다. 돈가스는 바삭하진 않았지만 (애초에 미리 만들어놓는 거라 바삭함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패티의 고기는 아주 맛있었다. 고기가 매우 촉촉하고 일반적인 돈가스 소스가 아니라서 더 신선한 경험이었다. 크림스파게티는 그냥 평범했고 진짜 메인은 크림치즈 조각케이크였다. 진짜 메뉴판에서부터 엄청 추천하는 음식이었는데 진짜 돈값을 하는 음식이었다.... 만약 이케아에 가서 밥을 드실 분들에겐 디저트로 꼭 이 메뉴 강추한다. 양이 많긴 했지만, 난 대식가이고 점심까지 거른 상태여서 무리 없이 깔끔하게 다 먹었다. 그리고 이케아 구경이라고 해야 되나... 그냥 나가려고 사람들을 따라 내려갔다. 화살표를 따라가면 나 가는 길이 나온다길래 그대로 따라갔는데 생각보다 더 구불거리는 길이었다. 친절하게도 바닥에 화살표를 만들어주신 관계자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렇게 이케아에서 나왔다. 신기하게도 배가 불러서 그런지 별로 춥지가 않았다. 오시리아 역으로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동부산쪽은 아직 많이 발달이 된 느낌은 아니었다. 밤거리는 좀 쓸쓸한 느낌? 밤하늘로 비상하는 비행기가 그런 느낌을 더해주었다.
어쨌든 오시리아 역의 대합실에 와서 10여분 정도를 기다렸다. 더 짧은 경로로 가는 지하철이 있었는데 환승하기 귀찮아서 그냥 2호선 타고 바로 가는 걸 선택했다. 오늘 처음으로 타는 지하철이었지만 벌써 익숙해져 버렸다. 지하철을 탄 뒤 남은 시간을 대강 계산해 보니 1시간 정도 가야 했다. 그래서 가는 시간 동안 살인자의 기억법을 완독 했다. 책 해석은 안 보려고 그냥 쓱 훑어보기만 했는데 이 소설이 잘 읽혔다면 제대로 읽은 게 아니라는 말에 뜨끔했다. 진짜 오랜만에 술술 읽힌 재밌게 읽은 책이었는데... 앞으로 여행동안 시간도 많으니까 한 번 정도는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다 도착할 무렵, 할머니집에 걸어갈 때까지 들을 노래를 엄선해서 세팅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여행은 첫 시도치고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정말 춥기도 했고 아쉬움도 남았지만,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오늘도 천천히 성장해 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