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오리알

휴식과 여유, 고독과 고요, 안정과 평화

by 작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오늘은 비교적 여유로운 일정이라서 8시가 좀 넘은 시각에 일어났다. 126번 버스를 타고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30여분 정도 걸렸다. 이번 여행 계획을 훑어보면 유난히 무언갈 보고, 어딘가 걸으러 가는 일정이 많다. 큰 생각 없이 계획한 것임에도 공통적인 것들이 나타나는 걸 보면, 내가 진실되게 좋아하는 걸 대강 알 수 있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무드의 오늘 계획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동요 없이 이젠 익숙해진 버스 안에서 생태공원을 기다렸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jpg 삼락생태공원 입구 방면

내가 생태공원을 간 이유는 습지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추운 날씨 때문에 습지는 다 얼어있었다.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내 예상보다 공원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탁 트인 공간, 빽빽해 보이진 않지만 비어보이진 않게 심어져 있는 나무들, 많지는 않지만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낙동강 하류에 있던 새들. 모든 것들이 만족스러웠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1.jpg 삼락생태공원 낙동강 방면

그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천천히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짧지 않은 거리였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낙동강이 보이고 그 주변을 갈대들이 둘러싸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갈대들과 적절한 분위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아직 한강도 제대로 즐겨보지 않은 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강들 중에서는 가장 자연 그 자체의 강에 가까웠다. 바다는 좀 흔한 것 같은데 산은 싫어하시는 분들께 강을 추천한다. 강은 주변을 걷기도 좋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특유의 바다 냄새라던가 극단적인 환경변화가 없기 때문에 현대인들과 적절히 섞여 나갈 수 있는 자연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공원에서 보낼 만큼의 시간을 다 보낸 뒤, 을숙도로 향했다. 을숙도는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나 또한 네이버 지도로 부산 지리를 살펴보다가 근처에 섬이 있길래 흥미로워서 계획에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2.jpg 부산현대미술관

을숙도로 넘어가는 버스를 탄 뒤, 바로 한 정거장을 가면 부산현대미술관에 도착한다. 이런 외진 섬에 현대미술관이 있다니. 멋있었다. 처음 가보는 미술관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이라는 걸 향유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난 뒤 처음 가보는 미술관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3.jpg 고등학교 때 썼던 소논문 생각이 났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이름답게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테마는 '노래하는 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글을 쭉 읽어보았지만 왠지 모르게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4.jpg 늑대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5.jpg 북극?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6.jpg 문어.. 우주.. 음악.. 미스터리...?

미술관은 혼자 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 사람의 생각의 흐름과 깊이에 맞춰나간다는 게 쉽지 않다.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동행한다면 시간의 제약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도 한 바퀴 돌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근처에 식당이 한 개밖에 없었지만 너무나 합리적인 가격에 스무 살인 나의 어린 입맛에 딱 맞는 식당이라서 주저 없이 선택했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7.jpg 만원 초반대 식단

가격이 내가 살던 동네와 크게 차이가 나서 너무 신나 버렸다. 난 먹는 것을 참 좋아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게 있다면 크게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난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먹기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운동도 꾸준히 열심히 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한 때는 비만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10킬로가량을 빼고 열심히 먹고 운동하고 만족도 높은 삶을 살고 있다.(아직 스무 살이지만.. 어쨌든 그렇다.) 기회가 된다면 이 이야기도 브런치에서 다뤄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신나서 라면과 왕돈가스를 주문했다. 나 혼자 그렇게 주문하는 걸 보고 사장님이 왕돈가스가 매우 크다고 주의를 주셨다. 하지만 난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당당하게 남기지 않고 음식을 무리 없이 다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가서 밀린(?) 일기를 썼다. 여행하는 동안 핸드폰에 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담았기 때문에 일기에 더 쓸만한 내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일정을 다 마치고 할머니 집에 돌아가면 일기를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연말이었고 나의 2023 다이어리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기 때문에 회상록 느낌으로 날짜에 맞게 글을 써 내려갔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8.jpg 낙동강 생태 공원 초입

그렇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신 뒤, 낙동강으로 걸어갔다. 20여분 정도를 걸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낙동강이 이번 여행에서 그렇게 인상 깊은 경험이 될지.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09.jpg 철새들

일반적인 공원과 별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낙동강에 다가가면 갈수록 특유의 안정감과 편안함이 들었다. 그리고 한가함. 쉬고 있는 철새들이 한적한 그 분위기를 더해줬다. 사실 이때부터 자세한 기록을 멈췄다. 진심으로 행복했고 이게 진정한 휴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은 번거롭고 귀찮았던 기록을 그만뒀다. 여행을 다닐 때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 봐야 될 부분일 것 같다. 그때 그 느낌을 남기기 위해 기록에 충실해야 할지, 그 순간을 누리고 느끼는 것에만 집중할지. 적어도 이 낙동강에서만큼은 나는 기록을 멈춘 것에 후회를 하지 않는다. 정말 행복한 기억이었고, 이때 느낀 여유는 나에게 큰 원동력이 되어줄 것 같다.

문득 이래서 여행을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기 전까지는 모른다. 계획을 할 때도 모른다. 가봐야만 안다. 무엇을 느낄지. 어떤 걸 또 발견할지. 앞으로도 내 인생에 있어서 여행은 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만 같았다.

KakaoTalk_20240111_121731676_10.jpg 비행기

몇 년 전에 친구의 카톡 배경사진을 보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나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침 낙동강 공원 근처가 김해 국제공항이었고 김해 국제공항에 착륙하는 모든 비행기들은 이 위를 날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찍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지금 나의 브런치 프로필 사진도 낙동강 공원에서 찍은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들이었다.


오늘의 여행기는 분량이 조금 적다. 아무래도 내가 낙동강 이후로 기록을 멈춰서 그렇다. 낙동강에서 꽤 오래 있었고 저녁은 외가 쪽 가족들이랑 고기를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난 낙동강, 그러니 오늘이 최고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오늘은 나에게 두 번째로 의미 있고 좋았던 날이었다. 나에게 최고였던 날이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3일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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