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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an 08. 2024

모르진 않는다고 말하기

끌리는 인생으로 건너가요, 우리

"다연아"


"네?"


"이리 와봐."


학교 식당이 공사 중이라 점심을 나가서 먹어야 하는 상황. 할 일도 쌓여있고 나가 먹기도 귀찮아서 컵라면을 뜯었다. 매운맛 좋아하는 맵찔이가 먹기에 진라면 매운맛이 제격. 물을 끓이다 눈에 포착된 전도유망한 학생. 부른다.


"너 진로가 어떻게 된댔지?"


"의대요."


"그렇군."


"근데요... 안 될 수도 있어서... 연구원도 생각 중이라 공대 갈 수도 있어요."


"아, 의사가 꿈은 아니고 그냥 성적이 좀 돼서 가는 거?"


"아니요, 의사는 되고 싶은데 성적이 안 될 거 같아서요."


물이 끓는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대기한다.


"뭘 벌써 꿈을 내려? 너 지금 '퓨쳐 셀프' 읽고 있지?"


"네"


"그럼 1번 꿈으로 미션 레터 읽으면서 미션 해봐."


다 익은 컵라면을 젓가락으로 휙휙 휘젓는다.


"2학년 가면 희망 고문 이런 거 없고, 2학기 되면 거의 네 점수라고 봐도 되지만..1학년 겨울방학에 벌써 그러는 건 좀 아쉽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진라면이 아니라, 너구리를 끓인 건가. 팅팅 불었다. 미션 레터에 온통 생각이 꽂혀 국물목에 턱 하니 걸린다.


쿨럭 쿨럭.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해도 쓸데없는 겸손과 자기 검열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겸손은 힘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쉽기도 하다. 지나친 허영과 평가절하 그 사이 어디쯤. 우린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 시원하게 좌표를 찍어줬으면 좋겠다.


*너는 지금 1 사분면 (3, 2)에 있어. 약간 정체되어 있지만, 조금만 버티면 금세 올라간다.


*네 좌표는 아직 찍히지않았다.


*몇 달째 같은 좌표인 것만도 노력이 갸륵하구나.



한 때 목적이 이끄는 삶이 유행처럼 몰려왔고, 요즘은 과정 중심이 핫하다. 뭐가 유행든, 과정 중심이란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출근길에 시속 90을 유지하면서 직장이라는 목적지로 떠난다. 90을 밟든 100을 밟든 나는 시간 안에 늦지 않게 도착할 것이다. 그래서 굳이 액셀을 밟지도, 둔탁하게 막아선 앞 차가 답답하다고 차선을 변경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건 (그리 즐겁지 않은) 출근길이라서 그렇고. 만약 내가 정한 목표도 출근길 같은 거라면, 그 과정에서 분명 그리 속도가 나진 않을 것이다.


과정 중심 명확한 목적의식이 앞선다.


끌어당기면 산다는 건, 눈 뜨자마자 무작위로 나열되는 일, 사람, 만남, 리스트를 당장 먼저해야 할 일들로 재배열하는 일이다. 그런 관점으로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뒤로 미루거나, 정중히 거절해야 할 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 우린 무얼 끌어당기면서 살고 있을까?


다연이구체적인 목표도 있고, 실행도 잘 해내는 아이다. 하지만 목적을 구상하는 이성의 저 편에 더 큰 비이성 즉, 느낌의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대화를 통해 다시 떠오른 이야기:

우리의 미래를 좀 더 '꼬옥' 붙잡아 보면 어떨까? 미래는 오지 않았지만, 모르지는 않는다고 말하기.







오늘의 미션:


열심히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목표를 다시 돌아봅시다. 구체적이고 분명한가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웠지만,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안 돼도 크게 상관은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나요? 생생한 목표에 무의식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진 않은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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