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가 아닌 것

by 뭉클

"사실, 제목 군상이라고 붙일 게 아니에요."


이응노 미술관에 들어서면 특징을 꼽기 힘든 작품들이 제각기 개성을 드러내며 진열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색감을 시도해 본 사람이구나.' 잡히지 않는 느낌이 불편하면서 나쁘지 않다.


한지에 가느다란 붓질만으로 탄생한 화폭 속 인물들은 질주를, 가무를, 때론 놀이를 즐겼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보고 그 자리에서 슥슥 그림을 그려냈다는 작가 이응노의 작품 세계를 그의 아내 박인경 여사와 아들 이융세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었다.



군상(1986)(출처: 이응노 미술관 홈페이지)



백발의 고령에도 고운 자태를 한 박인경 여사는 이응노를 '예술가 자체'라고 칭하며 아련한 눈빛으로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고암 선생은 초창기에는 동양화가로 활동했지만, 1938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의 초청을 받아 도일한 후 서양화를 공부하면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화풍을 조화시킨 작품으로 외신의 주목을 받는다. 외신 기자들을 통해 프랑스 미술협회의 초청을 받아 1958년 파리로 건너갔고, 프랑스에서도 콜라주 위에 수묵화를 그린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응노의 콜라주 '문자추상' (출처: 한국일보 ‘대나무 화가’ 이응노, 뒤늦게 콜라주에 눈 뜬 사연)



그의 그림은 '한지 위의 수묵화'라는 틀 안에서도 다소 이국적인 색채를 가미하면서 어우러짐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종이를 잘라 붙인 후 그 위에 노끈을 꼬아 올려 독특한 문자 테두리를 만들거나, 솜을 펼쳐 붙여 하나의 기호를 형상화하기도 했다. 서양화풍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자, 한글을 빼닮은 문자가 드러나 동양화스럽기도 한 그림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움직인 건 그의 생애와 지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


고암 선생은 6.25 전쟁 때 납북된 아들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북한 공작원의 말에 속아 동베를린에 간 것이 화근이 되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됐다. 이때 작품활동을 할 수 없자, 휴지 위에 간장으로 그림을 그리고 밥풀을 모아 조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1969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되어 다시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그들은 조국을 그리워하는 신세이지만 아카데미를 열고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파리의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출처: 이응노 미술관 홈페이지



"아카데미를 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박인경 여사가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계속 그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렸어요. 사람들을 초대할 팸플릿도 만들었고, 강의도 열었죠." 익숙한 한자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적어둔 낯선 이국의 말. 작품의 이름을 군상이라고 지으면 안 되었다는 작가 이융세의 말을 생각한다. 하나의 해석을 거부하는 수 많은 이야기로 읽힐 서사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까지 그림 얘기를 하셨어요." 어떤 것으로든 '평화'라는 자신만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지어왔던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마지막까지 앉아 영상을 본 나에게 이응노가 선물이라도 주듯 건넨 말.




재료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예술 아닌 것이 없어요.

걱정할 것이 없어요.

자기 마음에서 찾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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