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주의보
가는 눈발로 굵은 눈덩이를 만드는 마음
자기 계발서에 밑줄 긋는 마음과 소설을 집어드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쪽이든 사람을 이해하는 눈이 필수. 자유롭게 살고 싶을 땐 자기 계발서를, 자연스럽게 살고 싶을 땐 다시, 소설이었다.
얄밉게 보였던 선배의 모습이 미래의 선택지 중 하나일 때
찌질한 동료가 누군가의 안쓰러운 맏아들로 보일 때
학벌 좋고 똘똘하던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엮였을 때
'우린 크게 다르지 않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른도 울지."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때로 체념이 필요해."
현실은 소설만큼 개연성 있게 흘러가진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에, 복선도 없었고, 많은 일이 '갑자기' 벌어졌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놀이터에 초대된 기분이었지만, 어떤 문장은 끌어안으면 그런대로 살아졌다.
거짓말의 효용을 발견하기도 했다.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내 삶도 더 나은 쪽으로 뻗어갈 수 있었다. 실제로 거짓말로 지어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단, 아주 디테일해서 나조차도 사실로 착각할 정도여야 했고, 일상생활에서 탈이 나지 않으려면 내 거짓말을 똑똑이 기억해야 했다. 기록은 기억을 위한 하나의 방책.
무언가를 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덜 먹거나 더 먹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커피나 얼그레이, 카모마일 같은 음료를 주로 마셨고, 다크 초콜릿이 당길 때도 있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달리기보다 산책이 유용했다. 하얀색 기본 셔츠와 무난한 패턴의 포근한 니트를 즐겨 입었다. 언제부턴가 꽉 끼는 게스 블랙진보다 그레이 니트 치마에 교복처럼 손이 갔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을 했다. 칠전팔기의 정신. 그 말이 잘 어울렸다. 존버의 승리라고. 여덟 번쯤 도전했을 때 되는 사람에게 행복은 말로 뱉어도 형태가 잘 잡히지 않는 액체 괴물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손에 쥐어줘도 내 것 같지 않은.
고등학교 시절 영어를 좋아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왼쪽엔 영어 원문, 오른쪽엔 한국어 번역본이 쓰여있던 청소년용 영어 원서(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Art of Love'이었던 것 같다.)라든지, 붉은 컬러 표지의 세련된 맥밀란 MacMillan 영어 사전, 그 당시 핫했던 영어시사잡지 아니 어쩌면 영어로 된 모든 글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모국어로부터 멀어지면, 내게 상처를 준 모든 생각과 말로부터 멀어져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꽤 좋았다.
내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서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고집을, 약하고 악한 마음을, 무한한 무례를 그저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디까지가 나일까. 괴로워지는 이유에 대해 골몰했다. 내 안에 없는 것들로 괴로울 수는 없는 것이라고. '나'라고 부르는 것은 끝도 없이 확장되었다. 살아지는 방법은 사라지는 것이다. 말랑하고 옅은 테두리여도 나는 그대로 나이므로.
"우주 한가운데에서 연료가 떨어졌다는 걸 알았다면?" 이란 질문에 아이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꼭 변화라는 게 필요할까요? 얼른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래요"
"연료가 떨어진다고 바로 망하진 않아요.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떠다니기 때문에 일부러 우주 쓰레기와 부딪치거나 공기탱크를 터뜨려 궤도를 우주정거장 쪽으로 바꾸어 주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구에 연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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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의 대답은 나의 의견과 비슷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블랙홀 구경할 겸 더 떠내려가 볼래요."
애초 그 질문에 답은 없었지만.
내 이전에 여자이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면서 일도 열심히 하는 여자 선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미혼의 여자교사는 남자 교사도, 아이가 있는 여자 교사도 아니어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끼지 못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모든 곳에 속하는 것이라고 정신 승리를 해왔지만 난 롤모델을 끊임없이 찾고도 결국 내가 첫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떤 주장에도 흔들리지 말고, 내 목소리를 가질 것.
내가 걷는 길이 누군가에겐 괜찮은 궤적이고, 든든한 에피소드였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피해의식이 아니라 나한테 꼭 맞는 이야기를 찾지 못했으니 내가 그 이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 이왕 어른이 된 김에 어른의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10배 바쳐 짓는 빛의 집을 짓는다. 이미 받은 덕을 갚지 못하면 마음의 통장에도 빚이 쌓인다. 베풀면 좋다니까 베푸는 게 아니라, 이 베풂이 내 빚 청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고 똑똑하고 이기적으로 베푸는 사람이 더 좋다. 그게 깔끔하다. 어쩌면 건강한 삶은 집중력에 달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