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덕이 모자라 쌓이는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다. 이미 가지고, 먹고, 누린 후가 아니라 그전에 내어놓는 마음. 절제해서 베푼다는 자의식마저 지워내는 마음에 덕이 머문다.
덕을 베푸는 곳에 부와 장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 핵심에 절제가 있다. 끊어내고 남겨야 베풀 것이 있을 테니 말이다. 양손에 아무것도 없던 때를 잊지 않는 마음이고, 음식이나 욕심으로 가득 채워 교만하고 게을러지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난 돈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힘이다. 돈이 더 벌리는데도 안 벌 수 있는 힘. 내 능력치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난 그게 싫다. 내가 가질 만큼만 가지면 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책을 읽겠다. 돈을 마다하고 책을 읽을 때의 기분이 얼마나 행복한지 여러분도 느껴보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돈에 저항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정확한 철학이 필요하다.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돈에 저항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가 남을 도와줄 때다. 돈에 저항할 수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고 남을 돕는 순간 내게 더 큰 행복이 찾아온다. 21
자기가 먹을 것을 다 먹은 후 남은 음식으로 베푼다는 것은 속임수인 동시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 신의 몫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음덕입니다. 이때 베푼다는 그 교만한 마음마저 버려야 합니다. 125
대식이 음식의 빚?
사람은 각자 갖고 태어나는 식록(食祿)이 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과식과 폭식을 하면 이 식록이 바닥나게 된다.
배 속에 음식을 가득 쑤셔 넣은 새는 멀리 날 수도 없고 높이 날 수도 없습니다. 93
본능적으로 음식을 찾는 것과 입이 심심하고 심기가 부족하여 음식에 기대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기본적인 식사가 끝나면 활력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그 이상의 음식은 다른 사람의 몫을 뺏는 욕심이고 빚.
내가 아는 한 어른은 평소 소식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매사 크게 흥분하거나 들뜨는 일이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하는 일이 드물었다. 반면, 또 다른 지인은 술을 자제하지 못하고 식탐이 많았다. 적게 먹는 사람을 한심하게 보고 말투는 항시 사람을 무시하는 투였지만 실상은 열등감 덩어리였다.
달뜬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장수(長壽)란 단순히 오래 산다기보다는 영혼의 기쁨(壽)을 누리며 제 명대로 사는 것. 자살(自殺)도 타살(他殺)도 병사(病死)도 아닌 주어진 때에 사라지는 삶. 되도록이면 덜 아프고 영혼의 기쁨을 최대한 누리며 살다가는 것.
욕심의 화장법
의식적으로 덜 먹으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 하면 저항감이 생겨 필요이상으로 먹게 되고 자책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몸에게 물어야 한다. 배가 고픈 건지, 마음이 고픈 건지. 입이 심심한 건 아닌지. 두려움, 분노, 증오, 불안 등 우리가 다양하게 부르는 감정들의 뿌리에 '욕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욕심은 자꾸 화장을 해서 '이번엔 나 아니야.' 하지만 '이번에 또' 속는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편안해져야 했다. 안락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이따금씩 소식을 그저 적게 먹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내 몸과 대화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다 보니 알게 되었다. 적당히 먹는다는 것은 건강하게 먹는 것임을. 음식으로 마냥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마음은 음식을 더 먹기보다 오히려 줄여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그냥 줄이기만 할 게 아니라 줄여서 적극적으로 나눠야 한다. 덕 보려는 마음보다 이미 진 빚을 알아채고 갚는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다.
욕심이 생기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해서 결국엔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몰입할 수 없으면 하고 싶은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이 생긴다. '먹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사지 말아야지' 되뇌다 보면 뇌 속에서 부정문은 쏙 빠지고 '먹자, 하자, 사자'만 더 강렬히 각인된다. 행복은 집중력에 달렸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욕심이 많아진 날은 잘 지키던 식단, 운동, 독서 루틴도 왕장창 깨진다.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무언가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마음은 겉보기엔 활기처럼 보이지만 몹시 치우친 달뜸이다. 사람이나 상황을 톺아보면 보기 싫은 부분만 있는 것도 아니고, 훌륭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 좋고, 나쁘고, 이상한 법. 같은 상황과 조건에서 살아온 건 더더욱 아니다.
지나치게 좋아하는 마음엔 미움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만큼 지나치게 싫어하는 마음도 생긴다. 고운 말이 나오기 어렵다. 남들이 내가 하는 만큼 나를 돕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내 덕을 치켜세우고 남에게 덕을 보려는 교만한 마음일 가능성이 높다.
남의 도움으로 이룬 것들은 빨리 무너지기 마련이고 도와준 사람에게 종속되는 법입니다. 104
수다스러운 불만과 험담, 그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모임을 피했던 적이 있다. 말이 모이는 곳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니까. 아예 사회생활을 안 할 수는 없으니 그 만남을 최소화하고 꼭 참석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는 횟수가 잦아졌다. 결과적으론 나 자신과의 관계가 정화되어서 사람들에게 관대해지고 말실수도 줄었다.
루틴은 깨진 듯 다시 돌아오고, 틀어진 관계도 대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건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거나 자유롭다는 느낌이었다. <마녀의 건강법> 연재를 시작한 이유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계속 찾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구절 앞에 서서 출발선 정도는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한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구별해야 하고, 착한 것과 약한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강한 법입니다. 진정으로 심기가 강한 사람은 근기도 강한 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온화한 인상과 함께 강한 인상도 풍깁니다. 세상은 어지럽기 때문에 다툴 때도 많은 법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툴 때도 심기가 튼튼하여할 말을 충분히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착하기만 한 사람은 항상 세상을 두려워하여 단명하고, 심기와 근기가 튼튼하여 두려움 없이 선한 사람이 장수하게 됩니다. 215
한동안 이 구절을 떠날 수 없었다. 매일 새벽마다 붙잡을 문장이기 때문에 그랬다. 친절하지만 무르진 않은, 온화하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이기를. 진짜 선한 사람이기를. 심기와 근기가 튼튼해서 흔들림이 없기를.
이 글을 따라 걸어 나가면 그 끝엔 정말 무해한 것들만 남아 나를 반겨줄 것 같다.
*이 글의 인용은 책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에게 빚진 문장들입니다.
*이 글의 인용은 책 <소식주의자>에게 빚진 문장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