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가지고 있다

by 뭉클

소설 쓰는 몸

비극을 묘사하는 능력은 행복을 상상하는 능력만큼 치유는 힘을 지닌다.


박완서의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는 동서가 아들 잃은 슬픔을 형님에게 전화 통화로 수다스럽게 채워놓는다. 꽉 찬 모노드라마.



창환이 잃고 나서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뭔 줄 아세요. 그때까지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이 하나도 안 중요해지고 하나도 안 중요하게 여겨온 것이 중요해진 거예요. 증조모님 제사도 안 중요해진 것 중의 하나일 뿐이지, 다는 아녜요. [...] 전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중요했는데 이젠 내가 보고 느끼는 내가 더 중요해요. 남을 위해서 나를 속이기가 싫어요. 무엇보다도 피곤하니까요. 가장 쓰잘데기 없는 걸로 진 빼기 싫어요. [...] 그전엔 장만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젠 버리는 게 더 중요해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387-388



남겨진 딸들의 원망, 아들 혼사에 초대하지 않은 절친, 언제나 잘 들어주지만 가끔 상처 주는 형님. 잘 나가는 남의 아들 하나도 안 부럽더니 사지마비에 치매까지 온 동창의 아들이 어미에게만 제 몸을 '만져보게' 하는 것에 설명할 수 없는 질투를 느끼는 주인공.


'통곡의 벽'이었던 형님까지 울리고 마는 이야기는 애써 괜찮은 척하던 초반부터 몸의 온도를 서서히 올린다. 촘촘하게 쌓아 올린 비극을 묘사하는 힘은 '은하계의 주문'보다 강력하다.


괜찮은 척 가볍게 풀어내던 슬픔은 속상함에서 사무침으로 나아간다. 폭발하듯 터진 울음은 기를 쓰고 꾸며댄 화자에게 해방감을 준다.


펑펑 울고 싶으면 울고

흘러가고 싶으면 흘러가라고.



연습하는 몸

새벽 5시에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1-2쪽 쓰고 어제 쓰다만 초고를 다듬다 보면 해가 뜬다. 올해의 1월은 나에게 이 아침 기운으로 기억될 것이다.


개학을 하고 어떤 글을 쓰게 되든 나는 계속 쓸 것이다. 희망이나 좌절도 없이. 낙도 과제도 아닌 것으로. 어쨌든 내가 되는 일에 유일하게 믿는 것은 연습하는 몸.


믿어야 할 건 오직 몸이므로. 마음도 인생도 오늘이나 내일도, 몸이 가지고 있으므로 오늘 아침에도 팔다리 당기게 근력운동하고 10km/h로 인터벌 30분 뛰고 왔다. 러닝 머신에 뜬 건강 프로그램에서 40년 당뇨 인생 그 옆에 40년 당뇨 내조 인생 두 분 나란히 앉아서 얘기하는 거 보고 10분 더 뛰었다는.



묘기증: 응하는 몸

열심으로 타버리지 않기를

울분으로 차오르지 않기를


그냥 두라

그냥 두면 저절로 될 일을

그르치지 말라


그냥 두라

아무것도

아무 말도

아무 판단도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라



행동하는 몸은 그 자체로 보상 아닐까?

"가만 보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몸이 마음을 이긴 사람들이야"

"이쯤 되면 부요한 삶도, 건강한 삶도..."

"... 응?"


"선한 삶이야."


몸은 말없이도 말을 한다. 몸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는 내 식대로 자꾸 대화를 하려고 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사랑이라는데 불통인 상대를 답답해하면서 나도 말이 너무 많긴 피차일반. '진짜 원하는 걸 해주지 않는' 대화는 겉돈다.


몸이 제 무게와 온도를 되찾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지. 체력보다 청력이다. '듣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알고도' 행동하지 않면서 '알겠는데 잘 안 돼요.'와 같은 무지이다.


이렇게 또 내 뼈를 내가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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