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빵 언니

by 뭉클

빛과 소금빵 언니

"어떤 것도 100% 다 준비해서 시작할 순 없는 거야."


고등학생들과 지내다 보니 종종 내 현 위치를 고등학교 졸업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 대학 입시 다음으로 작은 산 두어 개쯤 넘었다고 느다. 취업과 결혼을 거쳐 출산을 건너뛰고 학교생활은 만렙 가까워졌으므로. 이는 역사적(전 시대의 것을 답습하는 나이에 관한 의무들), 문화적(이에 유독 민감한 한국사회) 특징이 있지 않나 생각하며 자라왔다.


"80%만 채워졌다면 시작하는 거지."


입시라는 첫 산을 넘고 있는 여고생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빛과 소금까진 못 돼도 빛과 소금빵 언니쯤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 <더 버는 내가 되는 법>

소확확 리스트

작지만 확실한 확신. 염려를 키우기보다 나를 키우는 기대들. 작게라도 옮겼던 행동들이 기록과 기억으로 남아 날 다독였다.


마흔을 코앞에 두니 지피지기에서 지기에 윤곽이 생긴다. 이 나이에 와서야 나 자신을 이제 조금 알다니, 마지막까지 영영 모르는 당황스러운 것.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모임을 운영하거나 어떤 일을 벌일 때도 각자의 얼굴조차 모르는 규모보다는 소수정예로 진행했을 때 훨씬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해한다는 걸 깨달았다. 강점 테스트를 통해 파악한 내 강점은 분석(연구)그리고 동기부여였다.


북스타그램(@m_for_museum)과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블로그도 다시 하고 싶어져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2022년, 2023년 피드의 공통 테마는 '번아웃'이었다. 2023년의 나는 지난해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다. 사람을 비추는 건 시간과 기록이 아니고 무얼까.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던 페이지를 찢고 남의 일에 판단과 잔소리하며 선을 넘던 페이지는 접어둔다. 덜 지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적고 밑줄을 긋는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라면 '이미 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의욕보다 행동이 앞서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인들이 내게 뭘 가장 많이 묻는지 떠올려보면 책과 영어, 혹은 외국어 공부와 학습법 전반에 관한 코칭. 후배들에겐 교직생활 꿀팁을 알려줄 수 있겠다. 너무 경력이 많은 사람들에겐 웬만한 일이 다 별일 아닌 것이 되므로 10년 차를 막 넘긴 나만이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 나뒹구는 이미지들을 하나씩 구현해 보기로 한다. 30대 초반에 역서 2권을 전자책으로 기획•출판한 적이 있는데 품이 많이 들고 학교 일이 많아지고부터는 다시 해볼 엄두가 나질 않는데 지치지 않는 선에서 시작해보고 싶다.


기획자의 눈, 큐레이터의 눈, 교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제각기 다른 해상도와 컬러를 띄고 있지만 이 셋은 겹쳐지는 부분이 많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기획자의 눈, 개별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큐레이터의 눈, 한번 살아본 시간을 누군가를 위해 한 번 더 사는 교사의 눈.


마녀의 루틴

잘 먹고 잘 논다. 정해놓은 시간에 일어나 읽고 쓸 수 있으면, 담백한 식사로 허기만 달랠 수 있다면 살면서 필요한 것이 별로 없다고 느낀다. 기대와 염려를 덜어내고 쥘 것과 놓을 것을 구별하게 되면 마음의 군살뿐 아니라 몸의 군살도 저절로 빠진다는 걸 알고나서부터는 거절도 한결 쉬워졌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이 얼마나 피곤하고 무의미할지 생각하는 사람의 뱃속과 가방은 무겁다. 상대가 나에게 베풀 친절과 도움을 기대하고 세상에서 소진될 나를 염려하는 마음엔 무거운 연민이 서린다.


인생이 한 편의 쇼라면

'많이 많이 기대..... 는 하지 마시고요.

그래도 원 없이 즐기다 가주세요.

지금까지 쇼쇼쇼~~000이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길.


되도록이면 사랑도 증오도 열정도 불안도 질투도 조심도 없이 덤덤하게 마녀 수프를 끓이는 마음으로.


주변을 밝게 비추고 짭조름한 팁도 건네며 든든한 빛과 소금빵 언니가 되는 길은, 잘 사는 것이다. 묻지도 않은 꿀팁은 집어치우고 잘 살아내는 것이 먼저다. 좋은 눈과 작은 입과 부지런한 팔과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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