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먹이 주기 Feeding the emotion
아침 식사로 계란 2개, 통밀베이글 반 쪽, 에스프레소 한 잔을 먹던 시기가 있었다. 구태여 '시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끈기 있게 해 보려던 '하얀 밀가루 끊기'가 호시절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나 편한 뱃속을 위해서 줄이려 했지만, 감정적 식사엔 늘 탄수화물이 빠지지 않았다. 탄수화물은 3대 영양소 중에 필수 영양소이니 나를 해치는 악당도 아니고, 뭘 먹느냐보다 얼마나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곤 하지만, 밀가루 음식은 느끼하거나 배부르다고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나를 사랑할 줄 모르던 시기에 굳어버린 습관. 잦은 횟수는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겁을 집어먹고 불안에 덜덜 떨거나 배출구가 없는 감정들 앞에서 가장 쉬운 감정적 식사를 선택하곤 했다.
끊어야 하는 건 밀가루인가, 감정인가. 둘 다겠지만, 어쨌든 사람은 마음속에 여러 개의 방이 필요하다. 부캐도 두어 개 만들면 좋다. 필요하면 한쪽 방만 쓰고, 다른 방은 환기시키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출처: google
'합리적인' 기대
사람들은, 애들은, 그 여자는 어째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한숨이 절로 나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날들.
'네가 너무 애들한테 기대가 많아서 그래.'
'애들을 너무 사랑하네. 나처럼 신경을 꺼야지.'
아이들을 답답해한 건 올챙이 적 때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애초에 이해보다 포용의 문제였다. 다만 어른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몸이 큰다고 마음과 태도까지 모두 자라는 건 아니었다. 어른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또 다른 생존 방식을 터득하는 듯했다. 이를테면, 사라지거나 듣지 않거나 무작정 직진하는 식이었다.
잘 잊을 수 있으면, 이왕이면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수록 꽤 괜찮은 사회생활로 보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좀 이상하다. 그를 주어에 놓고 생각해 본다면 새로운 작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눈으로 본 세상은 다르다. 이해란 아예 다른 안경을 끼는 일이다. 이해란 상태가 아니라 '과업'인지도 모른다. 목표를 갖고 '그의 신발을 신기'라는 구체적인 활동과업을 끝내면 다음부턴 애써 다른 안경이나 신발을 구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그런 교육과정.
소설을 읽고 나면 좀 더 수월했다. 삶의 해상도가 높아진 경험을 하게 된달까. 여러 삶의 사람을 살아보고 '그럴 수 있겠다'라고 말하고 나면 눈앞의 많은 일이 한결 가벼웠다. X-ray처럼 그 사람이 지나온 길을 낱낱이 그려볼 상상력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면,
'아, 그럴 수 있겠다.'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범죄자는 공공기관에 맡기면 되고,
나쁜 놈(찌질, 진상 포함)은 신도 피곤해서 안 잡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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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과 다독
'언니, 나 요즘 글 쓰는 거 재밌고 행복해.'
'그래, 좋은 일이야. 그리고 그렇게 많이 읽으면 뭐라도 쓰긴 해야겠더라.'
첫 문장을 쓰고 아득해지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단어가, 문장이 증식하며 나에게 서너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책을 읽기만 하는 일도 의미는 있었다. 하나의 책은 하나의 편견이어서 어떤 책은 동의하는 쪽으로 어느 책은 그렇지 않은 쪽으로 뻗어나가 서로 만났다. 단돈 2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직접 경험에 가까운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귀하니까.
그런데 쓰고 실천하는 삶을 통과하면서 그동안 쌓인 체증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펜을 타고 종이로 전극이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글쓰기 챌린지를 하면서 글을 쓰는 걸 보고,
'글을 쓰면서 돈을 버는 거야?'
'작가가 되고 싶은 거야?'
다들 내 글쓰기를 애쓰기로 보고 걱정하며 묻는 것이다.
그런 건가. 뭔가 꼭 되어야 하는 건가?
음, 그렇다면 나 자신이 되는 거지.
원래 좋아하던 독서가 더 좋아진 것도 이득이고.
이젠 보기 싫던 동료도 관찰할 캐릭터로 보이고,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있어도 뭐라도 쓰면서 풀어버린다.
감정 식사든, 신발 바꿔 신기든, 글쓰기든 목적지가 생기는 순간 또다시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행복을 찾는 순간 행복이 사라지는 것처럼, 오늘은 오늘의 성취로 충분한 것이다. 방향과 방법이 맞다면.
끈기 있게 끊어본다. 영원히 끊을 것처럼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보다, 방향과 방법만 점검하고 나면, 매일 성취하는 나로 살 것이다.
ILLUSTRATION: JANE M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