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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an 29. 2024

두 여자 이야기

엄마는 미역국이 너무 맛있어서 계속 아이를 낳고 싶었다고 했다. 그만큼 미역국을 좋아한다는 말이었지만, 아이인 나를 좋아한다는 말로도 들렸다. 


요리에 통 관심이 없던 나와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엄마 사이에는 트러블이 끊이지 않았다. 독립하고 결혼해서 사는 지금도 요리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친정에 들를 때면 엄마가 반길만한 메뉴를 들기보다는 사는 쪽을 택했다.


"엄마, 화덕 피자 어때요?"


미역국 좋아하는 엄마와 '화덕피자'라는 단어에 화색이 돋는 소녀는 같은 사람일까. 그 간극에 멍해질 때가 있다. 엄마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는데, '누군가를 세상에 내보내고 키워내며 함께 자란 사람'이라고 스스로 칭하기도 했으므로 어디서 어디까지가 엄마일까 생각하는 낮과 밤이 있었다.


엄마는 음대를 나오거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예술적 감각 하나는 타고난 사람이었다. 성가대에서 솔로 파트를 부를 때면 공기 중에 높게 퍼지는 새하얀 고음과 진동에 교우들은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묵묵히 제대 앞 꽃꽂이를 꾸민 것도 어느덧 십여 년. 내가 어릴 적엔 지점토를 빚고 색을 입혀서 삐에로가 익살맞게 웃고 있는 연필꽂이통을  만들어주거나 새빨간 앵두가 그려진 천으로 근사한 치마도 뚝딱 만들어 입혔다.


취미로 시를 짓거나 세밀화를 그리기도 했던 걸 보면 아름다움을 짓는 일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사람.


엄마는 저녁 9시 알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세계 평화를 비는 기도를 드렸고 필요 이상의 음식은 먹지 않았으며 정말 친한 사람들이 아니수다에 끼지 않았다.


십 대 시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 쓰레기통을 뒤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것만큼 난감한 일일지라도 엄마는 언제나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미처 기억해내지 못하는 시간에도 엄마는 나를 위해 기도했다.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조용한 주문은 나를 지키며 엄마도 지켰다.


살면서 고마운 사람은 기다려준 사람이었다. 내가 변하기를, 괜찮기를, 잘 지나가기를 어떤 위로나 기색 없이 그저 기다려준 사람.


뚝배기나, 아들 같은 딸에 빗대며 애써 나에 대한 서운함을 숨기던 엄마에게 나는 방문할 때마다 내 진심을 서툴게 전하곤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류의 빵을 한가득 사가거나 한우와 국거리를 사들고 가는 식으로. 생일엔 미역국을 끓이고 틈틈이 별다방 캡슐을 채워 놓기도 했다.


견딜 수 없는 삶을 자신처럼 종교적 신념으로 극복하길 바라는 엄마와 매번 다른 방식으로 견뎌내려는 나번번이 부딪혔다. 어려운 나를 숱하게 받아들였으면서도 종교 생활에서 만큼은 단호했다. 나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일 땐 성당 맨 뒷 좌석에 앉아 신을 찾는 나이롱 신자였지만 엄마에게 종교적 자유를 운운할 때는 열사가 따로 없었다.


얼마 전 갓김치나물을 챙겨 들러준 엄마와 안부를 나누다 문득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던 20대,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자부했던 30대 초반의 내가 스쳐갔다. 설익었지만 사랑이라 믿었던 부끄러운 오만부디 정다운 수다 속에서 잊히기를.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그간의 에피소드를 두서없이 털어놓느라 수다스러운 여자 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미역국의 미끌거리는 식감도, 엄마가 되는 미지의 세계도 내않지만 미처 알아내지 못한 엄마에 대해서는 계속 탐구할 것이라고, 엄마가 좋아하는 네스프레소 캡슐을 챙기며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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