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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an 24. 2024

가족의 개념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시오.(10점)

다양한 돌봄의 관계

연말정산 시즌이다. 신랑은 토해낼 것들이 좀 있었는지, 칼바람이 불던 날이어서인지 얼굴이 벌게져서 집에 왔다.


"아우~춥고 배고프다, 저녁 뭐 먹을까?"


"아주 매콤한 먹고 싶다. 이를테면, 불맛 나는 제육볶음 같은 것."


나는 메뉴를 떠올리기 담당이고, 신랑은 메뉴를 내 상상보다 더 끝내주 만들기 담당이다. 나의 역할이 꽤 쳐지는 거 같지만 여태껏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해준 적은 손에 꼽는다. 얼마 후 고추장 없이도 매콤한 불맛 제육볶음, 옥돔 한 마리, 엄마가 챙겨주신 갓김치와 나물들이 식탁에 올랐다.


얼추 13월의 보너스는 물 건너간 듯해서 내년에는 기필코 받고 말겠노라 다짐하며 이런저런 꿀팁도 챙기고 '무엇이 13월의 보너스를 만드는가?'에 대해 얘기하던 차였다.


"세액 공제에서 제일 큰 건 사람이지." 남편이 말했다.


"사람?"


"배우자, 부모, 자녀 같은 거 말이야."


"아~부양해야 하니까?"


"응. 그혼인 신고를 해서 부부가 되면 세액 공제 되는 거야?"


"그렇지. 근데 둘 다는 아니고 한쪽만."


"왜? 둘이 결혼했는데 왜 한 명한테만 세금 혜택을 줘?"


"부부는 하나니까?" (심쿵 포인트는 아닌데 심쿵.)


"음, 한 명이 부양자면 다른 한쪽은 저절로 피부양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거야?" 옥돔 정중앙의 뼈를 드러내며 되물었다.


우리의 대화는 제육볶음과 하이볼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하면서 다른 길로 샜지만, 그 질문 여전히 대답을 듣지 못했다. 물론 남편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물음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부양하고 견뎌주고 감당하는 개인으로 인정할 순 없는 걸까? 피곤하고 거추장스러운 이야기 일까? 나는 궁금해졌다.


얼마 전 90년대생 여자들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의외로 꽤 많은 90년대생 여성들이 가족 내에서 성차별을 당하고 있으며 사회에 나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이전 세대는 대놓고 차별을 하고 그래서 비난할 부분이 있지만 요즘은 은근한 차별이 있어서 드러내 반박하기도 어렵다고.


가족이니까 다 괜찮은 삶은 혼란스럽다. 4인, 5인 가구부분 '가족'이라 불렀던 시절에도 가족이니까 선을 넘고 가족이니까 거들어야 하는 개인을 넘어선 의무들이 많았다. 그런데 90년대생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큰 상관은 없어 보였던 두 주제들이 내 머릿속에서 섞여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냈다.


이제 가족을 정의해 보라고 하면 어떤 그림을 떠올릴 수 있을까? 단번에 딱 떨어지는 문장이 없다. 하나가 떠올랐다가 또 다른 것들로 대체되었다. 식구였다가, 동거인이었다가, 돌봄 공동체였다가, 전부 다 이기도 했다.


개인이 자의 부양자인 삶은 결혼생활에선 불가능한 걸까? 결혼보단 결혼하는 사람들보단 결혼 '제도'가 문제를 만드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했다. 결혼은 하나의 제도로 묶고 규정할 수 없고, 가족의 의미도 그렇다. 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편하고 괜찮은 것'이 무례가 되기도 하고, '만들어볼 만한 것'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태어나려는 마음, 다시 태어나려는 마음보다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자꾸 기우는 세상은 좀 서글프다.


새 학기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면 가족형태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어떤 가족의 형태로 살고 있는지. 그 이야기에 더 힘껏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정산이 가르쳐준 가족의 의미라니. 엄마 갓김치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몇 주전 가져다 주신 고등어 무조림의 달고 짭조름함 떠올라 아득해졌다.


'가족... 뭘까?'


"가족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doing family)'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 와중에 제육볶음이 참 맛있네. 역시 당신 요리 솜씨는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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