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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Feb 06. 2024

하루치 두려움 공생기


'목표를 성취할 경우 제공할 보상을 설정하세요.
목표를 달성하면 그 보상을 꼭 해주세요.'



30분이 넘도록 어떤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보상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


한창 다이어트에 꽂혀있을 땐 보상이란 쇼핑 아니면 치팅 데이였다. 그런 자극들은 예쁜 쓰레기와 울퉁불퉁 셀룰라이트를 만들었다. 자존감은 그런 것들로 채워지지 않았다. 요즘은 새 옷을 덜 사는 일이 좋아졌다. SPA 브랜드 매장에 들렀던 날, '전시장에 걸린 듯한 저 옷과 가방과 부츠 선택받지 못하면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언젠가부터 내게 패션이란 '기본템을 무심하게 입었지만 활력과 여유가 넘치는 태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옷 좀 입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지만 주변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라는 '환상'을 지운 후부턴 긴 니트치마와 맨투맨 셔츠를 교복처럼 입고 다녀도 자신감이 넘쳤다.



어떤 일을 하든 그 누구에게도 마음속으로 그 일에 대해 설명하거나, 해명하거나, 변명하지 않아야 한다. 인정중독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에 대해 습관적으로 변명하고 해명하고 설명하는 내면소통을 끊임없이 한다. 타인의 평가나 인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그 무엇에 대해서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속으로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내면 소통>, 620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세상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요? 두려운 게 뭐예요?"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내향성이 짙고 내적 긴장감이 심한 사람들은 그게 뭐든 누군가의 지시나 권고 없이도 대단히 잘 해낼 계획이며 그 와중에도 해내지 못할까 봐 잠 못 이룬다. 현대의 사회생활에 아주 곤란한 성향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기가 빨리고 약속이 취소되면 은밀하게 기뻐한다.  


내향형 인간이 모두 내적 긴장감이 심한지는 확실치 않다. 둘 다 해당되는 이들의 특성이 동일한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좀 다르게 느낀다'라고 생각하면 댓글을 달아주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이런 사람 생각보다 주변에 많다' 정도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편의상 '내긴이'라고 부르겠다.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거나 챌린지처럼 데드라인이 있는 일들은 내긴이들에게 아주 취약한데, 아무도 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를 데드라인 직전까지 몰아 댄다. 행동이 수반되면 열정적이며 착실한 인간,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자기 파괴적 인간이 된다.


내긴이들은 자극에 일일이 반응한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며, 어쩌다 거절한 경우에도 죄인 모드. 한동안 지옥을 경험한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반성문 편을 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마주치는 동료나 아이들의 표정 하나하나에도 민감하다. 물론 다음 날이 되면 동료는 그저 추궁하는 말투, 반복해서 말하는 습관, 말 끝을 항상 올리는 버릇을 가진 평범한 중년의 여성일 뿐이며 아이도 여느 십 대와 다름없이 그날의 소회를 툴툴대며 말했을 뿐이다. 아이들의 질문에 모두 대답해야 하며, 대답을 하나라도 빠트린 날은 왠지 찝찝하다. 역으로 질문에 답을 받지 못한 경우도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성격이 소심한 탓일 수도 있고,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한 성격일 수도 있다.


내긴이는 자극이 자극인지도 모르고 과잉 반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삶은 계속 인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연습을 지속하면 자기 이해에 가까워지 자기 자신과 연결된 사람은 대체로 평온하다. 


다만 내긴이는 환상에 압도되는 순간이 많기 때문에 내면 감각에 더 자주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과 단절되어 외부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두려움 앞에서 툭 끊어지는 나진짜 보상을 못 찾고 헤매는 나는 닮아 보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욕망 회로와 통제 회로를 모두 갖고 있는데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술, 폭식, 약과 같은 자극적인 방법을 쓰다 보면 편도체는 이런 자극에 더욱 활성화되어서 해마에 계속 저장한다고 한다.


'앞으로도 이 방법이 좋겠어.'라고 되뇌면서.


이런 악순환 속에서 통제 회로를 굳건하게 만들면서 욕망 회로를 퇴화시키는 방법은 전두엽을 계속 쓰는 것이다. 비움이나 흐름을 불안으로 인식하는 환상적 오류를 계속 수정해 나가는 과정인 것. 내 경우에는 걷기와 쓰기가 하나의 방법이다. 결국 비워가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남들이 모닝페이지 정도에서 풀리는 긴장이 퇴근 후에도 잔뜩 커져있는 내긴이의 삶일지라도 희망은 있다.


내긴이에겐 섬세하게 표정과 단어와 온도와 톤을 감지하는 탁월함이 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자기와의 약속에 진심인 것.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함께할 때 누구보다 다정하고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아침에 기분 좋게 출근해서 해가 질 때쯤 다시 조급해진다면 되물을 것이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세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이 질문에 영원히 난감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여전히 괜찮은 보상을 찾고 있다. 이 목록은 분명 무스탕 코트나 첼시 부츠는 아닐 것이며 위스키나 하이볼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칭찬이나 뿌듯함 같은 뻔한 것도 좀 곤란하다.


다만, 아주 오래 생각하는 것이다. 걷거나 쓰면서 아주 오래 찬찬히. 나에게 일어난 나쁘거나 고된 일이 아니라, 고집불통 상사나 사차원 동료가 아니라 나의 몸에서 내가 감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보상의 목록은 매일 조금씩 증식할 것이다. 찰을 기록하거나 감각을 기억하는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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