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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Feb 07. 2024

슬기로운 외국어 생활


"선생님은 학교 다닐 때 수학 잘했어요?"

"음... 수학이 날 별로 안 사랑했어. 난 영어를 사랑했지. 근데, 영어도 날 사랑했지."

"사랑이 이루어졌네요?"

"그치."


알파벳을 처음 배운 건 초등학교 5학년 말쯤이었다. 지금도 영어 노트 위에 하나씩 그리던 낯선 언어들이 새록새록하다. 하지만 외국어 덕후 생활이 시작된 건 17살부터였다. 얼마 전 북클럽 마지막 시간에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10대에 선생님을 행동하게 한 건 뭐였어요?"


"음... 나는 학창 시절이 답답하고 막막할 때마다 뭔가를 읽었던 것 같아. 텍스트 중독이 그때부터 시작된 건가?"


"..."


대체로 이런 대답은 별로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익숙하다. 곧장 말을 이어갔다.  


"학창 시절에 배운 외국어가 이집트어였으면 이집트어에 능통했을 것이고, 스와힐리어였으면 스와힐리어에 능통했을 거야."


수능 영어는 술술 풀리는 것과는 별개로 재미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건 영어가 아니라 타국의 말이었다. 일본어 시간에는 히라가나 가타카나에 동사 활용형의 용법도 쏙쏙 머리에 스며들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건 다른 세상으로 합법적으로 도망치는 일이었다. 다른 세계의 언어와 사고방식으로 도망치면서 모국어로 만들어진 상처들에서 벗어나 숨 쉴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복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했다. 오기로 달려들었다. 술 취한 코끼리를 길들이는 법은 받아들이는 것뿐이니까. 애초에 정복하거나 통제할 수 없기는 사춘기나 외국어나 매 한 가지였으나 후자는 나를 끝내 저버리지는 않았으므로.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서 시작한 경우가 많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중국어 교양 수업을 듣다가 30대 초반에는 독학으로 성이 안 차 원어민 선생님을 구해 과외도 받았다. 아큐정전의 명문장을 원문으로 읽고 싶기도 했고 대만 드라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열 번쯤 보면서 주인공 주걸륜에 빠져 중국어를 제대로 해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외국어를 배운다는 건 나를 성장하게 하는 힘이었던 것 같다. 중국어 과외 선생님은 매번 내게 회화중에 영어를 대신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매번 중작을 시켰다. 서툰 한국어로 문장 10개를 쓴 뒤 그 밑에 중국어로 문장을 짓게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채점할 때마다 틀린 표현을 빨간 글자로 바꿔 써주었는데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빨간 글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다른 학생들은 중작 하다가 모르면 그 부분을 비워 놓는데, 선생님은(과외 선생님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했다) 어떻게든 채워 넣는 게 몹시 인상적이에요."


영어는 중학교 때부터 계속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중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니 중국어를 공부하면 영어와 차이를 발견해 가면서 습득하는 게 재미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한문을 좋아했지만 일본어는 문법 마스터에서 그친 반면 중국어는 자기주도적 학습에 불이 붙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근 3년간 중국어를 놓아버렸는데 작년 12월에 중국어 번역반에 들어가게 됐다. 뭐에 홀린 것처럼. 사실 입문반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미 차버렸고 실전반만 남은 것이다. 나는 고작해야 문법책을 한 권 뗐고 어휘는 중급에 겨우 미치는 정도였으며 번역은 독해와는 다른 것이므로 감히 실전반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실전반에 들어가게 됐다.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중국어 에세이와 소설을 번역하면서 우리말 표현을 모으고 1:1 피드백을 받으면서 번역을 해나갔다. 번역 선생님이 내게 피드백 메모를 보내주면 그걸 참고해서 다시 번역을 고치는 식이었는데 매번 그 메모에 또 메모를 달아서 보냈다.


중국어 번역을 하면서 계속 영어 번역 방식을 대입했기 때문에 궁금증이 폭발했다. 둘은 엄연히 다른 언어였으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이렇게 번역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모국어들에 대해 메모로 답하는 순간은 얼마나 황홀한지. 0개 국어를 하다가 3개의 언어가 각기 팽창하기도 하는 이상한 세계였다. 


번역 실전반에서 얻은 뜻밖의 소득은 내가 우리말을 어떤 외국어보다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는 이다. 영어의 명확함과 중국어의 압축미도 좋지만 한국어의 철학적 아름다움은 정말이지 압권.


영어 교사로 10년쯤 살고 나니 사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왜 문헌정보학과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나와 책 Vs. 나와 외국어. '뭐가 더 먼저고 나를 살린 건 어느 쪽일까?' 생각하면 답을 영영 내지 못할 것 같다. 읽는 걸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외국어를 잘하게 되고 외국어가 늘면서 내가 더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런 기분은 곧 또 다른 읽기로 이어진다.


외국어 습득에 중요한 개념으로 '모호함에 대한 관용(ambiguity tolerance)'이라는 것이 있다. 모호함에 대한 관용도가 높은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대해 좌절 없이 그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사춘기와 외국어는 그런 점이 많이 닮아서 나는 외국어를 더 사랑해버렸는지도 모른다.


10대 시절의 잡히지 않는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데 외국어 공부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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