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분투, 고쳐 쓰는 이야기

by 뭉클


마침내 화자는 '나'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누구고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알 수 없음'의 감각. 정체성을 상실했다가 되찾았다는 느낌. 차가운 이성보다는 차가운 가슴으로 찬찬히 들어야 할 이야기.


하지만 '나'는 여권 기한 만료 탓에 경찰서 청사의 보호실에 갇혀 있다. 서점 여주인은 채소 수프도 끓여다 주고, 밀린 집세도 괜찮다고 한다. 다만 그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 궁금해한다.



"제가 관심 있는 것은요, 당신이 쓰시는 글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니면 꾸며낸 이야기인지 하는 점이에요."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가장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이야기는 하나의 거짓말이다. '우리'와 '루카스'의 거짓말에 이은 세 번째 거짓말은 어쩌면 삶 전체가 결국엔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필연적임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용기가 없어서 괴로운 거짓말도 있지만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짓말도 있을 것이다. 백지와 연필을 엄청나게 사들이는 이유도 거짓말이라 믿고 싶은 삶 속에서 더 괜찮은 거짓말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 아닐까?



나는 새 지팡이를 하나 받았고, 어느 날 아침, 한 수녀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에 도착했다. 우리는 걸어서 그 소도시를 가로질러, 숲 바로 근처 마지막 집까지 갔다. 그 수녀는 나를 그곳에 맡겼다. 나중에 내가 '할머니'라고 부르게 되는 그 노파의 집에.
그녀는 나를 '개자식'이라고 불렀다.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외할머니 집에 왔던 것일까. 수녀에 의해 노파의 집에 맡겨졌던 것일까. 무엇이 진실인가? 내가 사실 혹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은 다시 의혹의 대상이 된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생각에 깊이 빠지면 인생을 사랑할 수 없다는 '나'의 말을 가슴에 품고 읽어나간다.



내가 말했다.
"나도 저 바깥세상으로 건너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
내 형제가 말했다.
"발견할 건 아무것도 없어. 너는 뭘 찾고 있는데?"
"너. 내가 다시 돌아온 것도 너 때문이야."
내 형제가 웃었다.
"나 때문이라고? 너도 잘 알잖아, 나는 단지 꿈일 뿐이라는 걸. 그걸 받아들여야 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어디에도."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계속 기다리는 마음. 그러나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는 마음. 미래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과 미래를 아예 다시 써야 하는 사람은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꿈꾸는 허구는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은 거짓말에 불과했다. 내가 이 도시에서 할머니 집에 살 때, 분명히 나 혼자였고, 참을 수 없는 외로움 때문에 둘, 즉 내 형제와 나라는 우리를 상상해 왔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거짓말이라고 실토해도, 언젠가는 뒤집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독자는 이야기를 다 읽을 때까지 등장하는 인물 그 누구의 이야기도 믿지 못한 채 읽어나가야 한다. 고독한 읽기이다.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지만, 이해해서도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도 안 된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상태를 지향는 것처럼 보인다.


클라우스는 자기가 착각했다며(!) 사실은 자신이 루카스라고 털어놓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도 믿지 않는다. 둘은 결국 만나기로 하지만, 다시 루카스를 기다린다(!).



나는 그를 알아보는 데 아무런 증거도 필요 없다. 나는 그를 안다. 나는 그를 알았고, 그가 죽지 않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왜 이제야? 왜 이렇게 늦게? 왜 오십 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나는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 나는 루카스가 우리의 평화, 우리의 일상, 우리의 행복을 깨뜨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삶이 뒤집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루카스가 다시 과거를 들춰내고, 추억을 되살려내고, 어머니에게 질문을 해대면, 나도 어머니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카스를 멀리하고, 그 끔찍한 상처를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평생을 다해도 알아내지 못할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 분열된 자아들은 회복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토록 만남을 기다려왔지만 죽은 줄 알았던 또 다른 형제와의 만남은 삶을 뒤집고 상처를 낼지도 모른다. 인간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전쟁과 이념의 폭력이 휩쓸고 간 곳에서 인간은 취급 주의 물품 같다.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아빠는 정말 종군기자였을까? 국경을 넘으려다 지뢰를 밟고 죽었다는 기억은 사실일까?
루카스와 클라우스 외에 다른 형제나 남매는 없었을까?


이미 이 질문들은 답을 요구하지 않는 질문이다. 문득, 절대적인 참조점이 사라진 세계의 끔찍함을 실감한다. 21세기에도 우리에게 신이 필요한 이유일까.



루카스가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떠났다. 나는 그를 돌려보냈다. 그는 내게 자신의 미완성 원고를 남겨두고 갔다. 나는 그것을 완성시키는 중이다.



*큐레이터 노트: 미완성 원고, 그것을 쓰면서 완성되는 삶. 쓰자, 무엇이든. 되도록이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이야기를.

*오늘의 책: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제3부 50년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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