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어의 말

by 뭉클


깊은 생각에 빠진 햄릿과 우연히 마주친다. 사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연출이다. 나의 아버지 폴로니우스는 햄릿의 광기(혹은 광기인 척하는 행동)의 원인을 알고 싶어 그와 우연히 마주쳐 대화하게 연출하고, 클로디어스와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숨어서 모두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딸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고도 남는 사람이고 나는 그들의 계획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그동안 받았던 선물을 되돌려주려고 하자 햄릿은 그동안 참았던 화를 쏟아냈다. 울고 싶은 건 난데 도리어 내게 짜증을 내는 것이다. 어쩌면 본인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솔직한 말과 격분을 만만한 나에게 다 쏟아내는 것이겠지.



"수녀원으로 가시오. 왜 결혼하여 죄 많은 인간을 낳으려 하는가? Get thee to a nunnery; why wouldst thou be a breeder of sinners?"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어 즉, 초기 현대영어에서 thou는 주격 you, thee는 목적격 you를 의미한다.



나를 그렇게 배신하려거든 차라리 창녀촌에나 가라니. 요즘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언어폭력이고 여성혐오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나에게도 전염된 것인가? 어째서 내게 화풀이를 하는가. 그는 내게 다섯 번이나 수녀원에 가라고 말하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나를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머니에게 상처받고 배신감에 몸서리치고 있다는 건 알지만 내게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은 좀 너무 하지 않은가? 나 또한 아버지와 클로디어스에게 이용당하는 몸이거늘.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지 어느 한 곳을 멍하니 응시하거나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두 손으로 머릴 감싸며 괴로워하거나 괜한 사람한테 화풀이를 하고 있지 않나. 나는 햄릿과 클로디어스의 정치놀음에 놀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내게 '죽느냐 사느냐'보다 중요한 건 '미친 듯한 권력자냐 권력에 미친 자냐'인 것 아닐까?


그는 적어도 자신의 그런 나약하고 미성숙한 면모를 클로디어스에게 들켜서는 안 되었다. 우리의 만남을 몰래 엿보던 클로디어스는 눈치를 챈 듯했다. 우리의 관계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광기가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것을.



사랑? 그의 마음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그가 말하는 것은 약간 두서없긴 하나 미친 것 같지는 않아. 그의 영혼 속에는 우울증이 뭔가를 품고 앉아 있고, 그것이 알을 깨고 드러나면 상당히 위험할 것 같다.



아버지의 명령이 있으니 나는 어쩔 도리 없이 그에게 냉정하게 굴지만 그가 나를 다독이며 한발 더 다가와주길 기대했다. 도리어 그는 점점 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 같다. 모두 야속하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광기는 나의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나? 나는 중간에서 그들을 부추긴 꼴이 되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빠 레어티즈가 돌아왔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왕과 왕비에게 따져 묻는다. 햄릿에게선 볼 수 없던 늠름한 모습.


나는 오빠에게 만수향 rosemary('저를 기억해 주세요.')을, 거투르드 왕비에게는 매발톱꽃 columbines('배우자에 대한 배신')을, 클로디어스에게는 운향꽃 rue('후회')을 나눠 주었다.


나에겐 실국화 daisy('불행한 사랑')가 적합하겠군.


레어티즈마저 클로디어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클로디어스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 상황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아주 여우 같은 정치가니까. 혹시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자극해서 햄릿을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지만 그는 영국으로 가버렸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큐레이터 노트: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서 변해가는데 손 쓸 수 없는 마음. 오필리어는 광기의 희생자일까?

*오늘의 책: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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