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베스의 피곤한 삶

by 뭉클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 천둥 칠 때, 번개 칠 때, 혹은 비 올 때?"
"한바탕 난리가 끝나고, 싸움에 지고 이겼을 때."


맥베스 부인은 욕망의 화신이다. 모두가 그녀를 파렴치한 여자, 금기와 욕망으로 타락한 여자라며 몸서리를 친다. 그녀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몸을 코르셋에 구겨 넣고 성경을 읽으면서 가구처럼 집안에만 처박혀 있으라 한다.


아름다운 것은 추하고, 추한 것은 아름답다.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으로 날아가자.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뭔가를 찾는 듯 강렬하게 빛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다. 시아버지는 아이를 낳는 게 가문을 위한 그녀의 의무라며 훈계하지만 '당신 아들 때문이야'라고 한 마디 날린다. 그 후 그녀는 시아버지를, 남편을, 남편의 혼외자식을 살해한다. 그녀의 잘못은 무엇인가? 불륜인가, 살인인가. 그녀가 전통과 관습을 깨면서 가지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용감한 멕베스 장군은 그 명성에 손색이 없게 운명을 무시하고 피 묻은 검을 휘두르며, 용맹의 총아답게 적진으로 달려가 마침내 반역의 괴수를 만났습니다. 그러고는 서로 인사도 없이 적을 배꼽에서 턱까지 한 칼로 갈라 그의 목을 성벽에 걸어놓았습니다.


결혼 초 그녀는 몇 가지 요구를 했었다. 외출을 해서 바깥공기를 쐬고 사람들도 조금 만나고 싶었고 남편에게 신뢰와 호감도 얻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든 의견은 묵살된다.


맥베스 부인은 영리하고 당당하며 임기응변이 뛰어나다. 사람을 쉽게 파악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 시아버지가 말이 안 통하는 답답한 늙은이라는 걸 깨닫고 차분하게 독버섯을 준비한다.


마녀 1 글래미스 영주 맥베스 만세!
마녀 2 코더 영주 맥베스 만세!
마녀 3 장차 왕이 되실 분 맥베스 만세!


그가 화가 나 방에 가서 식사를 할 때 의자를 사뿐히 문고리에 걸어놓고 하녀에게 태연하게 질문을 하며 차를 탄다. 시아버지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차를 타고서 숟가락을 경쾌하게 세 번 두드린다. 진지한 얼굴로 시아버지의 관옆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안나가 음식에 독을 탈까봐 사람을 바꿀 만큼 치밀하다. (햄릿의 애인 오필리아나 오셀로의 연인 데스데모나에게 이런 치밀함이 있었다면 뒷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인 세바스찬과 그녀의 관계를 비난하는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든 말든 그녀의 불륜으로 자신의 평판이 깎이는 것만 신경을 쓴다. 남편을 처리하는 건 세바스찬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다. 남편을 사정없이 내리친 후 실종으로 위장하기 위해 그의 말까지 손수 처리한다. 억압과 무시를 당하지 않고 사랑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그녀는 죄책감 없는 살인자가 된다. 그녀를 잘 따르던 남편의 혼외자식도 베개로 숨을 끊어버린다.


살인이라는 나의 생각은 아직 상상에 불과하건만, 나의 안정된 마음의 왕국을 뒤흔들고, 분별심은 억측에 질식되어 환상만이 눈에 보이는구나.


세바스찬은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안나와 세바스찬이 한 짓이라고 떠넘긴다. 둘을 공범으로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자기 손으로 질식사하게 만든 테디를 자식처럼 아꼈다고 말하는 그녀의 슬픈 눈을 보며 속아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당신이 가졌던 그 희망은 술에 취해서 가진 꿈이었나요? 아니면 잠에 취해 가진 것이었나요? 잠에 취했을 땐 자연스럽게 보던 것을 이제 잠이 깨니까 파랗게 질린 눈으로 보고 있는 건가요? 이제부턴 당신의 사랑도 그런 걸로 알겠어요.


세바스찬은 그녀를 영원히 소유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닫는다. 맥베스 부인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사랑의 도피나 권력 따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힘을 갖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지고 자유롭게 휘두르는 삶. 누군가의 그림자나 전유물이 아니라 남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삶.


누군가 온 집 안에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소. '이제부터는 잠을 이룰 수 없다.' '글래미스 영주는 잠을 죽였다. 그러니까 코더 영주는 영영 잠을 잘 수 없다. 멕베스는 이제 영영 잠을 이룰 수 없다.'


모든 게 끝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만족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이제 그만두고 싶지만 어쩐지 이제 시작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모든 걸 다 쓰고도 얻은 게 없고,
원하는 걸 얻었지만 만족이 없다.


거짓말을 하고 남을 조종하며 필요하면 죽이면서 겪게 되는 외로움과 피로함 속에서 그녀를 조이고 갉아먹는 건 세상일까, 그녀 자신일까?


내 손에서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구나.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를 부어도 이 작은 손 하나를 향기롭게 하지는 못할 거야. 오, 오, 오.


레이디 맥베스의 욕망은 맥베스의 그것과 동일하게 바보 같고 헛된 것일까?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은
이렇게 작은 걸음으로 하루, 하루,
마지막 시간까지 기어가고,
우리의 모든 지난날은 바보 같은 인간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밝혀준다.


이 연극무대에서 그녀는 네 번째 마녀일까? 이 소음과 광기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늘의 캐스트 '레이디 맥베스'의 선택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꺼져라, 꺼져, 짧은 촛불 같은 인생이여,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떠들지만
곧 사라지는 배우와 같다.
인생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
소음과 광기가 가득 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


영원할 것 같던 4시간의 연극도 결국엔 끝난다. 커튼콜이 끝나고도 떠나지 않는 잔상. 레이디 맥베스의 피로한 안색과 맥베스의 처절한 절규.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도착하는 곳은 삶의 끝인지 죽음의 변주인지.





*큐레이터 노트: <햄릿>과 <오셀로>에 나오는 여성상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면, 레이디 맥베스의 세계로 풍덩. 맥베스, 레이디 맥베스 각자의 선택에 질문을 던지며 읽는 재미.

*오늘의 책: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맥베스>

*오늘의 영화: 레이디 맥베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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