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에 대한 감각

by 뭉클


가진 것을 다 보여주지 말고,
마음속 생각을 다 말하지 말고,
가진 것을 다 빌려주지 마라.
말을 탈 수 있을 때 걷지 말고,
듣는 것을 다 믿지 마라.
Have more than thou showest,
Speak less than thou knowest,
Lend less than thou owest,
Ride more than thou goest,
Learn more than thou trowest.



이 대사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그저 멋진 대사'이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당신은 이미 생의 굴곡을 하나쯤 넘은 후일 것이다. 다 보여주고 전부 다 말하고 구태여 말에서 내려와 폭풍우 속을 걷고 나면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헛된 것에 쉽게 매혹되는지 깨닫게 된다. 그땐 이미 늦었고.


리어왕은 세 딸에게 효심 고백 대결을 시켜 왕국을 나눠주고 여생을 대접받으며 살고자 한다. 가장 멋진 고백을 기대했던 막내딸 코델리아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다른 사랑이며 부모를 향한 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진짜는 언제나 투박하고 멋이 없다. 고백 대결에서 온갖 아첨을 다 떨고 아버지에게 재산을 상속받은 두 딸은 머지않아 아버지를 함부로 대한다. 기사의 수를 100명에서 50명, 25명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다가 마침내 한 명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리어왕은 권위도 권력도 없는 그림자 신세가 되어 실성한 채 광야를 헤맨다.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 에드먼드는 적자인 형 에드거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에드거가 아버지 글로스터를 죽이고 재산을 상속받으려 한다고 가짜 편지를 날조한다. 에드먼드의 계략에 빠져 도망자가 된 에드거는 미친 거지 행세를 하기로 한다. 글로스터 백작은 리어왕을 몰래 보살피다가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리어왕의 둘째 딸인 리건과 콘월에게 두 눈을 뽑힌다. 눈이 먼 채로 도버로 향하는 글로스터. 에드거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그를 인도한다.


켄트 백작에게서 리어왕의 소식을 들은 코델리아. (코델리아는 고백 대결 이후 프랑스 왕과 결혼한다) 프랑스 왕은 브리튼으로 군대를 파견한다. 코델리아와 리어는 도버에서 만나고, 리어는 막내딸에게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프랑스 군이 브리튼 군에 패배하면서, 리어왕과 코델리아가 포로로 잡혀온다. 두 사람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인간이 누리는 모든 것이

자연에게서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진실 앞에서

미친(척하는) 자가 눈먼 자를 안내하는 기이한 광경 앞에서 묻게 된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은 진짜인가?


우리는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을 구별할 수 있는가?
권력은 효보다 소중한 가치인가?
신뢰와 의심 그 사이의 믿음은 가능한가?


우리는 가짜 사랑에 매혹되는 리어왕을, 권력에 눈이 멀어 아버지와 형을 이간질하는 에드먼드를 어리석다고 치부하고 조롱할 수만은 없다는 걸 안다. 적절히 보여주고 적당히 믿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삶에서 우리의 인식을 메타아이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리어왕과 광대



*큐레이터 노트: 무지에 대한 앎은 낮은 자의 행복.

*오늘의 책: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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