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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원(圓), 오늘의 원(願)

by 뭉클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더 나은 과거, 더 나은 미래를.


마치 무언가를 두고 온 사람처럼,

끝없이 갈망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사람처럼

우리는 잊지 못한다.

어쩌면 망각은

신이 내려준 몇 안 되는 선물일지도 모르는데.


니체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깨부순 희대의 철학자들을 떠올린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

어떤 날의 무기력과 의미 없음은 철학 말고는

해결할 도리가 없어서

종국에는 쇼펜하우어로 귀결되곤 했는데

니체는 더 멀리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에 따르면 삶을 대하는 정신은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모한다. 내세를 긍정하고 현세를 부정하는 수동적인 허무주의에 반해, 내세 따윈 없으니 현생이 최고라는 능동적 허무주의는 다수의 원들이 중심도 없이 휘이휘이 돌아가는 규칙적인 혼란의 세계로 그려진다.


낙타란 무거운 것을 견디는 중력의 정신.

사자는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사자의 포효 같은 자유의지의 정신. 스스로를 정의하고 가치를 정립해 나가려는 힘과 의지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 눈앞의 생을 순수하게 긍정하고 언제나 처음 만나는 하루인 것처럼, 처음 가본 곳처럼 순진무구한 태도를 보인다. 아이는 내일을 생각할 줄 모르며 오늘 하루를 놀이처럼 제멋대로 살아간다. 순수하고 거룩한 긍정은 오늘이 삶의 전부인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짐을 짊어지는 것을 멋지게 혹은 신성하게 여겨 좀 더 많은 짐을 지겠다고 다짐하던 '낙타'는 머지않아 환멸을 느낀다. 이 가치들은 무슨 근거로 만들어진 것인가? 순전히 제멋대로 임의로 만들어놓고 나에게 짐을 지우는가? 으르렁대는 순간 '사자'로 변모한다. 모든 것을 초월한 '어린아이'는 심드렁하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오늘의 원은 중심이나 참조점 없이도 잘 돌아간다.


일주일이 기다란 막대처럼 느껴지는 선형의 시간 그 굴레에서 순환적 시간을 살아본다. 동그란 원으로 원 없이. 그 시간 속에선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난다. 내 웃음은 어린아이와 닮았을까?



출처: Unsplash (by Biancablah)



큐레이터 노트: 무기력한 너에게 동그란 시간을 선물할게.

오늘의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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