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클 Mar 08. 2024

우당탕탕 초보교사의 질문수업 매뉴얼(2)

'길 잃기 안내서'라고도 부른다


길을 잃는 일에 두려움은 없다. 길을 찾았다는 느낌은 '점'이고 삶은 그 점을 잇는 여정이니까.


다만 자꾸 잊는다. 세상 만물은 사라지기 마련이고 살아남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아주 많은 꿈, 아주 많은 목소리와 언어들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 것을 목격해 왔으니까.


무언가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마음은 더 큰 상실감을 가져온다는 것도 알면서 자꾸 잊는 사실이다. 애써 과거를 잊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그냥 놓아버리는 것이다.


성인기는 신중한 예상과 철학적 기억으로 이루어지고, 그 덕분에 우리는 좀 더 느리고 착실하게 길을 찾는다. 하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 자체 크나큰 실수일 수 있다.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실수일 수 있다. 삶은 늘 위험한 법이니,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삶은 이미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 수업을 구상하는 순간부터 내 질문은 답으로 끝난 적이 없었다. 언제나 또 다른 질문으로 끝났다.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하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쯤 더 나은 질문으로 방향을 트는 식이었는데 당연히 실수도 잦았다. 우리는 깔끔한 구멍보다 지저분한 시나리오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아니, 어른이 되어서 더더욱 실수는 낯 뜨겁고 권위가 서지 않는 일이다.  


당신은 아무리 넓은 영역을 보게 되더라도 늘 당신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늘 등정을 정복으로 묘사하지만, 실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세상이 점점 더 커져서 우리는 그에 비례하여 자신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를 둘러싼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우리가 헤맬 공간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압도되지만 해방감도 든다.


하지만 리베카 솔닛의 글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잊었던 길 잃기의 기쁨, 길을 잃어야만 마주하는 기쁨,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세계에 대해 다시 상기했고 위로를 받았다. 나는 원래 길 잃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지.


이 '잡히지 않음'의 기쁨을, 끊임없는 모색의 즐거움을 잊는다면 의미 없는 물음표 한 다발로 눈앞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꼴 밖에 안 될 것이다. 나는 툭하면 끝에 '것'이라는 말을 쓰는 편인데 자유만큼이나 무언가를 통제하고 싶은 본능을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통제하면서 벗어나고 싶은 이 모순된 마음은 뭘까. 나는 불안하고 불편한 채 괜찮은 삶을 가르쳐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가르치는 사람이 제일 잘 배우기 마련이다.





*오늘의 책: <길 잃기 안내서>, 리베카 솔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