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생업으로 교육을 선택하면서 나는 울퉁불퉁한 바위가 세파에 깎여 동글동글해지듯 참 많이도 변했다.
애초에 영어라는 언어를 다룬다는 것 빼곤 영문학과 영어교육은 엄연히 다른 분야였다. 누군가에겐 입학 성적으로 나뉠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문학은 예술가가 되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교육은 누군가를 예술가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좀 거칠게 말하면 나는 예술가가 될지 후원자*가 될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었다. 문학이란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었고, 교육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둘의 차이는 그랬다.
*조력자나 멘토, 코치 등등이 더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감은 뒤에서 돕는다는 의미에서 후원자에 가깝다.
물론 지극히 단순한 생각이다. 어쩌면 '문학=소설가, 교육=교사'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있었기에 가능한 분류였다. 세상엔 문학 편집자도, 사서도, 동네 책방 주인도, 리뷰어도, 평론가도, 교사 에세이스트도 있었다. 그 밖에도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그리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직업도 있다.
어찌 되었든 생업에 종사하면서 전자책이지만 역서를 2권 냈다. 그 후에도 꽤 오랫동안 번역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잊을만하면 들어오는 쥐꼬리만 한 인세가 과거의 몸부림을 기억나게 할 뿐이었다. 나는 십 대에 품었던 '무엇이 되고 싶은지, 꼭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데미안적 고민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은 힘이 세다.
여전히 그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지만 희소식이 있다면 내가 생업에서 잔뼈가 굵어져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전혀 맞지 않는다고 여겼던 일들도 그럭저럭 할만해졌다는 뜻이다. 동료도 아이들도 웬만하면 친구 같은 사이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학은 결국 사람에게 애정을 갖는 과정이므로, 생활에 바람이 한 줄기 불자 문학 교육에 대한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더불어 나는 후원자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어릴 적 레이스가 달린 옷들을 좋아했지만 결국 무채색의 기본템이 제일 잘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글도 어떤 재질이나 자질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글 앞에서는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하니까.
자타공인 분석과 동기부여의 귀재이니 예술가보다는 후원가의 글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반 아이들과 같이 읽으려고 질문이 있는 소설 수업을 만들었고 주로 소설을 읽고 고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문학 이론, 평론, 리뷰에 더 감흥을 느끼니 어느 쪽에 집중해야할지 혼란스러운 시간도 있었다.
공과 사를 분리하고 둘 다 해도 되지만 시간을 아무리 불려 써도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되어 있고 어떤 글을 탐독하고 어떤 글에 좀 더 시간을 쓸지에 골몰한다. 사실 여태껏 써온 글들은 일종의 실험이며 그런 질문에 대한 임시적 답변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톤과 디자인을 고르듯이, 크로와상도 만들어보고 쿠키도 구워보듯이 이 실험은 계속될 것 같다. 내 피부처럼 편한 글을 찾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