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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되는 꿈

by 뭉클


궁금한 뇌 연구소 대표인 장동선 교수는 도구의 발달이 사람의 능력을 사용하는 도구만큼 확장시킨다고 말했다. 현미경을 사용하면서 생물학과 미생물학이 발전했고, 망원경을 통해 육안의 한계를 넘어 능력치가 천문학의 세계로 확장되었다는 이다.


우리는 챗GPT가 기계 특유의 어색함과 감정적 무지마저 기술력으로 극복하며 반려 로봇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챗GPT에 대한 깊은 생각보다는 일자리를 뺏기고 대체되는 존재가 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만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올해부터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수업 전에 아이들에게 발표 날짜와 분량을 자원하도록 독려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원하는 날짜와 분량을 정하고 발표를 준비한다. 이 발표의 부제목은 '질문 공유 및 친구 가르치기 활동'인데, 아이들이 수업 중에 배운 사실 질문과 추론 질문을 직접 문제 풀이에 적용하고 발표 중에 공유하는 활동이다.

수업 전에 나는 분명히 해둔다. 친구가 틀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발표 후에 중복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귀 기울여 들어달라고. 나 또한 발표 내용을 꼼꼼히 들어야 오류를 정정해 줄 수 있으므로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 그리고 발표가 끝나면 부연 설명 정도로 마친다. 중간에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의 내적 갈등을 겪는다. 강의식 수업에 익숙해져 있고 어쩌면 아이들에게 100% 믿고 맡기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씩 조금씩 주도권을 넘겨왔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표를 잘 해냈고 나는 잘한 점을 찾아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혼자 공부할 땐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문제도 앞에서 설명하려면 용기도 시행착오도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의 목표는 질문은 '만들어도 되는 것'으로, 발표는 '할수록 느는 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번역기와 챗GPT가 사람을 대체할 정도로 똑똑해져도 영어는 여전히 배워야 한다. 오히려 더 제대로 배워야 한다. 그 방식이 단지 시험 불안에 휩싸여 답지를 달달 외우는 한국어 공부 같은 외국어 학습법이면 곤란하다.


뇌과학자들은 지금 우리의 뇌가 2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인간의 뇌와 하드웨어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특정 영역이나 뉴런들이 특정 능력을 위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자신의 필요, 욕구, 취향, 목적을 알면 뇌는 그 일에 리소스를 재할당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능력은 우리 자신의 필요와 욕구, 취향과 목적이 도구 사용 능력과 합쳐졌을 때 빛을 발한다.


최근에 챗GPT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다가 챗GPT 영어 질문들의 사례가 적힌 책을 봤다. 시기적절하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획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는 질문에 정말 익숙하지 않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그간 해온, 취지는 좋았던 화려한 평가들이 고속열차처럼 스쳐갔다. 아주 날 것부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AI가 만든 가짜 뉴스도 간파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어쩌면 AI가 없어도 머릿속의 지식만으로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 계속 공부하면서 자기 이해를 높여가는 사람이 '진짜'로 남지 않을까.


얼마 전 Open AI로 세계 문학과 질문 수업에 대해 입력하고 그가 낸 답을 보면서 더욱 느꼈다. 질문을 더 세세하게 할수록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잘 아는 사람이 질문도 더 잘하는 법이지만 그러려면 일단 질문해도 되는 환경, 질문하는 사람이 많은 환경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점.


이번 학기에는 질문의 질보다는 횟수를 보기로 했다. 물론 질적 평가는 따로 기록해 주지만 말이다. 학교가 꼭 필요한 공간인지 의심이 들 때가 있지만 적어도 이 시기에 꼭 필요한 배움은 있기를. 내가 뭘 원하고 잘하는지 알려면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길이 챗GPT류의 기계들과 공존하는 법일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더 나은 큰 질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은 질문들이 필요한지 배운다. 나는 질문을 위한 질문이 되지 않도록 살피지만 되도록 말을 아낀다. 내 말이 답으로 들릴까 봐 조심한다. 어떤 질문은 답보다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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