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워크숍 노트 #1

by 뭉클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게으르고 부유한 작가'가 되었다.


현대시를 읽는 동안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수시로 언급되었다. 개념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응용하기 위해 익혀야 할 기본 개념 같은 것.


소설:

독자여, 내 말이 잘 이해되었어요?

공감이 되어서 웃었거나 눈물 콧물을 짰나요?


현대시:

이해하든가 말든가.

기존의 형식을 비틀고 깨뜨리기.

기존에 없던 방식. 실험적.

이게 시냐? 근데, 시가 뭔데?


_


희망이란 말을 쓰지 않고 희망을 설명하기

빨강이란 말을 쓰지 않고 빨강을 설명하기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라고 말하지 않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설명하기


시는 분명 의도적으로 힘 있게 저항하고 도발한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말장난이 아니다. 길고 세세하게 감각적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소명이 시인에게 있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말의 맛이라든가 승화된 슬픔 같은 것.


세세한 묘사가 지루함이 아니라 생생함이 되려면 쓰는 사람이 그 객체에게 동해야 한다. 마음이 동해서 스스로 몰입해야 한다. 우리에게 경험이란 무엇일까. 온, 오프의 경험이든 직, 간접 경험이든 모두 같은 값의 경험이다. 이제 우리는 이 둘을 가르는 일 자체를 고리타분한 일로 여긴다.


김선오의 시를 읽었다. 시집 『세트장』에는 카메라가 가득한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관점들이 등장했다. 같은 이야기도 누가 묘사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사람, 동물, 카메라, 심지어 자연에게까지. 이번 수업에 관점을 도입해 보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아는 본디 여러 개다. 진짜 나와 보이는 나. 거울 없이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 우리는 애초에 진짜 나를 알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서 진짜로 여러 개다. 셀카 속의 나, 누군가의 카메라에 찍힌 나, CCTV에 찍힌 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의 나 등등 여러 개의 자아를 연출하느라 분주하다.


_


소설과 시의 경계는 있을까?

이야기 없는 이야기는 가능할까?

자전적 소설은 그냥 일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최근에 머릿속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들이다.


기억나는 대로 쓴다고 해도 이건 100% 사실은 아닐 것이다. 일정 부분 허구이니 에세이도 100% 작가의 이야기는 아니다. 기억, 파편, 이미지를 따라 쓰인 글들. 누가 찍었는지는 몰라도 찍히고 있다는 기분으로 살아가면서 쓴 글들. 고전적 서술방식으로 쓰인 글과 달리 화자와 작가는 100% 동일하지 않다. 작가는 화자가 되려고 애쓸 필요도, 화자는 작가일 거라고 추측할 것도 없다. 애초에 사실도, 사실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_


요즘 쓰고 싶은 글쓰기 방식이다.


1. 사진 - 픽션

2. 실험적인 여성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

3. 전시 연계 쓰기

4. non-binary, 객체 중심의 글쓰기


무엇보다 시인 김유림, 김선오, 문보영에 나를 섞어 새로운 물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 이번 워크숍 이후 새로운 과제:


1. 뻔한 걸 낯설게 쓰기

2. 생각을 하지 말고 보라, 감각하라!

3. 서로 거리가 있는 것들을 비유의 대상으로 삼자!





https://bidpiece.com/MAGAZINE/?bmode=view&idx=13618628&back_url=&t=board&page=




















매거진의 이전글내겐 너무 특별한 빨강 날개, 앤 카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