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야, 우리 얘기 좀 할까?" "좋아요!"
나: 너 근데 얼굴이 왜 그렇게 부었어? 잠을 못 잤어?
재희: 저...사실은 요즘 시험 기간에는 학원이 11시 반에 끝나서 집에 오면 보상 심리로 자꾸 야식을 먹게 돼요. 근데 혼자 먹으려고 하면 뭔가 심심해서 친구한테 전화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새벽 2~3시에 자게 되는 거 같아요.
나: 야식에 새벽 3시 취침이라니, 엄청난 조합이군. (최악이란 표현을 쓰려다 말았다.)
재희는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나: 연초보다 진로는 좀 잡혔어? 환경이랑 생명과학 쪽에 관심 있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진 못했던 거 같은데.
재희: 아, 저번에 선물해 주신 책 읽어봤는데요. '과학자가 되는 법'이요.
'진짜' 과학자가 되는 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 외에 추천해 준 책들.
나: 오! 그래도 좀 읽어봤나 보네?
재희: 다 읽었어요!
나: (감동)
재희: 저는 환경에 관심이 많은데 말만 '환경을 보호합시다' 이런 거 말고 실제로 환경법이나 환경정책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교수나 연구원이 되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 학생 시의회 활동도 하고 있고 대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싶어요.
나: 음...들으면 들을수록 과학자나 교수, 연구원이 아니라 정치 외교에 더 어울려 보이는데?
재희: 네, 그래서 그쪽도 생각해 보긴 했어요. 근데 공부를 오래 해야 하는 건 알았는데 막상 이 책을 읽고 보니 너무 지난한 과정이라서 부모님과도 상의를 해보니까 너무 어려운 길을 가려는 건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나: 너무 멀리 간 거 아니야? 아직은 흥미를 갖고 이것저것 해볼 때인데. 부모님은 항상 자식이 뭘 먹고 사나 그런 고민뿐이지. 부모님 핑계를 대는 순간 내 한계가 거기까지일 뿐인 거야. 결국엔 자기 확신 아닐까? 네가 환경법이나 환경정책에 관심이 있는 정치인이 된다면, 공부하는 정치인 어때? 입으로만 떠드는 정치인 말고, 연구력과 탐구력이 실행력과 합쳐지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뢰감이 실릴 테고.
재희: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정치를 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의견을 잘 수용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할 텐데 제가 1년 동안 임원을 해오면서 느낀 건 제 귀가 얇다는 거예요. 이렇게 휘둘려도 되는 건지. 제가 사람들을 되게 좋아하는데 사람들한테 상처도 많이 받더라고요. 이 일이 과연 맞는 걸까요?
나: 정치인이 의견을 잘 수용해서 전달하는 사람이야?
재희: 아닐까요?
나: 정치를 하게 되면 네 주장이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열 올리는 사람들을 잔뜩 만나게 될지도 몰라.
(너무 극단적으로 말한 걸까.)
재희: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 네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재희: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요. 어떤 맥락이냐면, 저랑 마음이 맞지 않을 순 있는데 그걸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의뭉스럽게 자기 마음속에만 담고 있는 사람이요.
나: 이거 가치 질문이었거든? 너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소통인 사람 같아. 그래서 이번 1년이 더 힘들었을 것 같고. 소통이 행복이면서 불통이 불행인.
재희: 맞아요. 근데 무시할 수 없었던 게,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나: 지금은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만 그런 갈등을 겪지만, 바깥세상에 나가면 일하는 곳에서는 나랑 안 맞는 사람투성이야. 부모랑 남매도 지금은 잘 맞을지 몰라도 언제든 어떤 일로든 맞지 않을 수 있고. 그때마다 갈등의 원인을 나 자신과 연결하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재희: 그런데요, 쌤.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돼요?
나: 아무 갈등이 없거나 문제를 못 느낄 땐, 성서도 그냥 옳은 말에 불과하지. 아주 고통스러운 순간에 집어 든 책은 몸 깊숙이 스며들어. 네가 책으로 눈 앞을 가리지 않고, 옆구리에 한 권 끼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길 바래. 책은 거기까지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지.
재희: 제가 너무 무른 걸까요?
나: 글쎄,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말도 있잖아. 뛰어난 리더 중엔 고집쟁이도 많지만 우린 그걸 추진력이라도 부르지. 한 끗 차이야. 환경에 관심 있다고 해서 <랩 걸>이랑 <침묵의 봄>를 권해줬었는데, 이젠 리더십에 관한 책까지 추천하게 되다니. 근데 너를 더 제대로 알게 된 기분이야.
왠만한 인간관계론보다는 더 와닿을 질문을 선물했다. (출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꺠워라>)
재희: 리더십은 뭘까요? 설득력을 갖고 싶은데. 저에겐 리더의 자질이 있는 걸까요?
나: 넌 좋은 사람이야.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그것만큼은 잊지 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
미국의 정치제도는 만인이, 최악의 적까지도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기본으로 한다. 우리는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지도자는 외면하고 타인에게도 인간애를 실천할 것을 주장하는 지도자에게 정당과 소속을 떠나서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279
오레오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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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니콜로 마키아 벨리
군주는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필요할 경우 과감히 악행을 감수해야 하고,
악한이라고 평가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250
군주는 여우와 사자의 본성을 알고 활용해야 한다.
덫을 알기 위해서는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겁먹게 하려면 사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