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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Aug 01. 2024

시 워크숍 노트 #5

우리에게 시란?


시를 쓰려고 모인 건 아니지만 감각적인 이미지를 쓰고 싶어 모인 사람들. 아니, 그것도 아니면 시가 뭔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걸 써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축제. 시 워크숍을 마치고도 누구 하나 나가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누구 한 명이라도 먼저 나가면 그다음에 따라 나가겠다는 듯이.


우리에게 시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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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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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그걸 꺼내놓는 방식에 대해선 아직 뿌연 안갯속을 걷는 듯했다. B는 시를 쓰기엔 너무 제정신이라고 했고, K는 마음속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만들기엔 서사가 길고 묘사가 촘촘했다. 시를 쓰겠다고 다짐해 놓고 어느새 길고 긴 진술에 푹 빠진 우리에게 시인은 연출자와 배우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시나리오에 담긴 대화와 액션. 그림처럼 그려지는 서사들. 텔링 Telling 아닌 쇼잉 Showing. 행복도 불행도 상상력 싸움이다. 누군가는 5년이고 10년이고 지어 올린 이야기들.


워크숍의 마지막 시간인 만큼 그동안 다뤘던 시인들의 세계 그리고 시인이 내준 과제 중에서 다시 다뤄보거나 써보고 싶은 것들을 쓰기로 했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진실 두 가지와 거짓 한 가지를 쓰는 작업을 다시 시도했다. 처음엔 한 줄도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빈 종이를 채워 넣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시인이 댓글에 달아준 조언들을 참고해서였나? 문보영의 유머 혹은 이소호의 거침없는 가족 이야기를 기억할 것. 그리고 좀 더 길게 써.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마치 문학 상담소에 들어선 것처럼 그간의 고민을 털어놨다.


거짓말은 정말 어렵더라.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단 한 줄도 못 쓰겠더라고. 다들 거짓말을 세세하게 척척 써내는데 나는 정말로 한 줄도 못 쓰겠더라. 워크숍 시작하고 그렇게 한 줄도 못 썼던 순간은 처음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당황스러워. 나름 충격이었어.


시인과 시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줬고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시인은 수시로 내 고민에 대해 언급했다. 마치 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모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 알 거 같아. 왜 그렇게 거짓말이 어려웠는지.

그냥 거짓인 말을 쓰는 쓸데없는 짓이잖아.

'의미 있는' 그러니까, '메시지가 있는' 거짓말이어야 하잖아.

그게 어려웠던 같네.


나는 남에 대해 처음 알게 것처럼 나에 대해 말했다.


내게 그런 강박이  않을까.

직업상 헛소리를 하면 되니까.

반절의 자유로운 영혼마저도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서 제정신을 되찾는데 힘을 하고 있는 아닐까.


J는 내게 하나마나한 거짓말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시인3인칭을 주어로 쓰기, 나 없는 일기 쓰기에 대해 얘기했다. 타인이나 사물에 대해 쓰는 건 내가 잘 모른다는 전제하에 쓰는 거라 상상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소설 같은 시, 일기 같은 소설, 에세이 같은 소설... 어쩌면 쓰는 사람도 글의 미래를 모르는 거 같다. 온전히 진실인 이야기도 없고, 온전히 거짓인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내 기억은 끊임없이 왜곡되고 있고, 남의 이야기를 쓰는데 왜 내 얘기 같은지에 대해서도 우린 말없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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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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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중요한 문장을 모으는 작업을 시작했었다. 초반엔 꽤 잘 되다가 다시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이 작업의 의미도 흐릿해졌지만 '내게 의미 있는' 문장의 기준이 뭘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시 워크숍을 듣게 되었다. 워크숍이 끝나가는 지금, 내겐 몇 가지 기준이 생겼다. (그건 다음번에 좀 더 촘촘하게 기록해 보려고 한다.)


페르소나, 공간, 사물에 감정이 담길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면

(이를테면, 아버지의 숨겨진 공간이 훗날 아들의 은밀한 수련 장소로 쓰인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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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발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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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무라카미 하루의 뱀장어, 나는 문보영의 돼지인형 '말씹러'를 소환했다. 우리에겐 상상의 친구가 필요하며 그건 내가 없는 일기를 쓰는데 몹시 유용할 거라고 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내가 아닐 때 나오는 유머. 그 가벼움을 찬미하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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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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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내게 거짓말을 쓰려면 시치미를 떼는 정도의 거짓말이어야 한다고 했다. 거짓임을 들키지 않으려는 거짓말 말고. 자꾸 감정이 올라오게 하는 글은 타인은 물론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지. '내가 내 얘기만 쓰는 이유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일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진실 100%(그런 게 있긴 하다면)인 글을 쓰는 건 과연 쉽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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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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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다시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지점이었다. 앤 카슨,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배수아, 리디아 데이비스... 더 많은 '작가 엄마'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게 만들어줄 모태. 다 부수고 새로 지을 나의 세계.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깊고 어두운 숲일지라도, 해가 드는 밝은 창가로 가서 서야 한다. 적어도 시작은 거기서 해야 한다.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그 밖으로 먼저 나가야 한다. 프랑스어나 스와힐리어를 배울 게 아니라 낯선 언어로서 프랑스어나 스와힐리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써야 한다.


가벼움을 기억하기

흘려보내기


 여전히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시 친구들과 만든 우정의 밤은 정말 뭉클하고 소중했다. 이제 더 많은 시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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