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겪는 인간관계는 예상보다 훨씬 더 깊게 이후의 삶에 관여한다. 충분히 이해하고 정리하지 못한 관계는 자기 이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 사회생활은 물론 생애주기별 중요한 결정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10대 후반의 청소년을 출판계에서는 Young Adult로 분류한다. 교과서에선 '주변인'이라고도 부르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존재.
문득, Young Adult라는 용어에서 Young 'Adult'에 초점을 두고 다시 사춘기 아이들을 본다.어른이 되기 위한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처럼 어디서 어디까지가 어른인지, 우리는 언제 괜찮은 소위 성숙한 어른이 되는지 그게 가능은 한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우린 이런저런 상황에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만의 가설을 세우고 이론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그 이론은 다시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인간 유형을 만나는 순간 일정 부분 오류를 포함하고 있었음이 밝혀져 혼란을 준다. 우리는 모두 그 혼란의 스펙트럼 어디쯤 있다. 10대 후반의 아이들은 조금 더 가설과 이론이 자주 많이 필요할 뿐.
어느 날, 사춘기 소녀들의 불안 중심에 학업과 인간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깊이 연구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내 학창 시절에 겪은 문제들이 여전히 일부 해소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아주 중요한 인생의 과제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하브루타 질문 수업에 관심을 두게 되었을 무렵, 입시 공부 일색인 한국 교육 문화와의 충돌을 우려하며 아주 기본적인 정의부터 짚어보았었다.
우리 현실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요구를 함께 반영하는 공부는 '정보 입력 - 단기 기억 - 장기 기억 - 창의•비판적 사고'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정보 입력은 공부의 시작이며 기억을 위한 첫 단계이다. 이때 낭독을 통한 공부가 뇌를 깨우고, 효과적인 기억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단기 기억으로 입력된 정보는 설명하기와 기억해서 쓰기를 통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양적으로 축적된 기억은 질문을 통해 지식의 질적 융합을 가져와 창의•비판적 사고를 창출한다.
<하브루타 4단계 공부법>
우리는 주로 하브루타 질문 수업이라고 하면, 질문하는 수업이나 제대로 떠드는(?) 수업이라는 점에 주목하지만, 나는 두 명이 '짝을 지어' 서로 '논쟁'을 하면서 진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하브루타의 핵심을 보았다. 사춘기 소녀들에게 짝을 지어 논쟁한다는 컨셉은 '인지' 능력을 넘어 '심리'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감정적 필터가 학습 효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교육학적으로 이미 자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감정적 필터를 낮추고,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바운더리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일은 하브루타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데 아주 핵심적인 면일 것이다. 특히 소녀들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남녀의 차이를 이분법적으로 가르거나 소녀들의 예민함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소녀들이 자기 자신을 미처 알기도 전에 낯선 세상과 만나는 아주 난감하고 어리둥절한 경험을 할 때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안내할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촉수와 섬세한 언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무엇이 아이들을 그토록 불안에 떨게 하는 걸까?
우리는 왜 불안할까? - 학업 편
사례 1. S는 초점 없이 허우적대는 듯한 눈빛으로 긴 속눈썹을 껌뻑껌뻑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부모와 자신 모두 대학 입시의 끝에 의대뿐이다. 그 외의 선택지는 고려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전 시험을 망쳤다. 중학교 때 공부하던 대로 하면 될 줄 알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사례 2. H는 자기 주도적이다. 시험이 끝났다고 공부를 끝내는 법이 없고, 자율학습 시간은 진실로 '자율'에 의한 학습이다. 자신이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다른 아이들보다'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쓴다. 완벽주의에서 발현된 자기 검열은 불안을 키운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 가지 않는 지문은 지옥이다.
사례 3. H는 학기 초 전 과목 1등급으로 시작했지만, 그다음 시험을 망치고 풀이 죽어있다. '망했다'라고 연거푸 말하는 표정에서 좌절감이 가득하다. 웃고 있지만 언제든 눈물을 뚝뚝 흘릴 기세다. 좌절과 덤덤함 그 어디쯤. 어린 마음에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찬 막막함이다.
사례 4. K는 시험 불안으로 학원을 다섯 군데나 다닌다. 집에 돌아오면 11시 반. 녹초가 된다. 본인이 시험을 잘 못 보더라도 반 1등인 친구가 죽을 쑤면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든다. 내가 성적을 잘 받는 게 기쁨인지, 그 친구가 시험을 죽 쑤는 게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시험을 못 본다면 시험 불안을 의심해 볼 수 있어요. 준비 부족이 아니라 심리적인 불안이라면 불안의 유형을 알아야 합니다. 학생 본인의 기대와 엄마의 욕심이 클 때,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강할 때, 경쟁심에 마음이 흔들리고 실패를 회복하는 힘이 약할 때, '나는 해도 안 된다' 혹은 '시험 운이 없다'처럼 비합리적인 생각에 빠질 때입니다.
<사춘기 멘탈 수업>
이 불안을 부모도 오롯이 느낀다.
여러 학부모들과 전화 통화나 상담을 통해 마주하면서 이러한 불안에 대처하는 유형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1. 회피형('공부는 못해도 돼요' 형) 혹은 자유 방치형
아이가 정말로 공부를 못해도 되는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그로 인해 자신이 받는 고통이 더 커져 버린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아이에겐 어느 정도의 잔소리와 관여가 필요하다.
2. 자책 형(우리 아이는 문제아, 그건 내 책임)
'우리 애가 집중도 잘 못하고, 담임이 세게 나가서 잡아주지 않으면 남아서 공부하지도 않는다. 내가 일을 하느라 아이한테 신경을 못 써서 그래요. 일을 그만두려고요.' 사춘기 아이는 좀 독특한 구석이 있을 수 있다. 이해 가지 않는 모습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3. 서포터즈형
우리 아이가 충분히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다는 아주 당연한 바람에 불안이 스며든다.
4. 그 외에 일단 소리 지르며 비난하기/그런 애라는 소리는 처음 들어요/선생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해주시겠죠 등 학생만큼 다양한 학부모 유형이 있다.
각자는 불안하고 서로를 이해하기엔 다른 세상에서 다르게 느낀다. 다만, 주의해야할 점은 아이가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거나 '게으르다'는 식의 성향을 공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는 것이다. 의지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행동을 지적하고 어떻게 노력할지 함께 고민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17살, 18살쯤 되면 아이들을 그저 사랑으로 감싸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이해 대신, 치열하게 대화하고 뜨겁게 서로를 알아가려는 마음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