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노 사치코는 생각한다. 어째서 삶은 도통 알 수 없는 것 투성인가. 우울과 권태는 닮았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만 던진다는 점에서. 대체 언제쯤 커다란 내가 사라지는 걸까? 나른한 여름, 앉으면 눕게 되고 누우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정처 없는 여름에 대해서 하루노 사치코처럼 생각한다.
조용한 가족. 평화롭지만 각자의 삶에서 나름의 시끄러움이 있다. 텁텁한 녹차의 맛을 음미하고 있자면 카페인 탓인지 정신이 바짝 든다. 단조로운 일상을 대하는 태도는 녹차의 텁텁한 맛과 닮았다. 왜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물어서도 안 되고 아무도 안 알려줄 것 같다. 아니, 못 알려줄 것 같다. 가족 중에 답을 아는데 의뭉스럽게 비밀로 하고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각자의 비대하고 건조한 삶을 묵묵히 살아낸다.
누군가 내 하루를 지켜본다면 하품이 나오고 기지개를 켜다 이내 일어나 자리를 뜰 것이다. 하지만 티켓 값이 아까워서 엉덩이가 아파도 끝까지 버티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후자에겐 선물이 주어진다. 녹차의 맛을 끝까지 음미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선. '정답을 맞히신 분께는... 감사를 드립니다.'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출처: 다음 맥스무비
옆집 정신과 의사 아저씨는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스트레스는 원래 안 풀리는 거야. 통제수단이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통제 소재가 나에게 없어서 생기는 게 스트레스거든. 애초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생긴 게 스트레스인데 그걸 푼다는 게 말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