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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Sep 19. 2024

뭉클_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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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수술 그리고 길고 긴 무더위, 그동안 러닝은 금지어였다. 이렇게 더운데 괜히 뛰다가 더위 먹을지도 몰라. 이참에 좀 쉬고 나으면 천천히 다시 뛰면 되지 뭐. 여름을 어르고 달랬다.


달리지 못하는 여름 내내, 비비언 고닉과 올가 토카르추크,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에밀리 디킨슨, 다와다 요코를 읽었고 큐레이터로 북토크에 참여하거나 도슨트의 토크 콘서트에 가기도 했다. 세계사 이야기에 빠져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트레몰로에서 그친 후 제대로 시작도 못한 크로매틱 하모니카 레슨도 신청했다. 상반기에 시작한 타로 상담 공부에 불이 붙었고 책을 고르고 소개하는 일이 본업 이상으로 나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지난해 겨울부터 봄, 초여름까지 뿌린 씨앗이 긴 여름동안 풋내를 벗고 무르익어 열매를 맺어가는 중이었다. 현타와 권태를 세계어(라고 해봤자, 프랑스어와 독일어이지만) 배우기로 극복하고 있었고 글쓰기에 이 모든 일들이 담기기 시작했다. 일전에 짝꿍과 함께 달렸던 에피소드가 연재의 일부였던 것처럼.


내겐 달리기가 힙한 트렌드나 연재 소재이기 이전에, 정화고 친절이었다. 외적 정화이기도 했지만 내적 청결이기도 했다. 속되는 세계는 고통이었다. 그게 기쁨이든 슬픔이든. 글쓰기는 엔트로피를 낮추는 일이었다. 물건을 정리하듯이 낱말을 정리하고 흩어지는 꽃잎을 물색없이 주워 담았다. 다시 흩어질 줄 알면서도 언제나 그 사실을 잊은 사람처럼.


C'est quoi qui détruit une relation?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관계를 깨뜨리는 건 서운이다. 질투도 시기도 아닌, 서운. 어쩌자고 기대를 부풀려 뻥하고 터져버리는 마음. 우리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는 사랑의 열기가 나은 부작용이다. 잘 지내고 싶은 만큼 거리를 유지하려는 이 모든 노력이 모두 사랑임을 알까. 흩어지는 건 조절하기 위함이다. 마음 안에 열기를 빼고 체온을 조절하는 노력. 관계가 깨지는 건 '관계'라고 부르는 순간 생기는 느슨하고 흐릿한 끈을 견디지 못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On nous demande pourquoi on travaille aujourd’hui. 사람들은 왜 오늘 우리가 일하는지 물어본다.
Il me demande pourquoi je suis fatigué. 그가 나에게 왜 피곤한지 물어본다.


오늘의 일, 오늘의 피곤함. 한가위만 같았으면 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올 기미 없는 가을을 펴 놓는다. 다시 달리고 Run Again, 계속 변하고, 다시 배우고 Learn Again, 계속 정화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가을은 언제나 여름에 묻어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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