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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Sep 30. 2024

위화 2: 독서와 글쓰기




책과 외국어, 외국어와 책.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 둘은 어쩌면 '낯섦과 사람'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독서를 위한 독서, N개 국어를 위한 외국어 공부보다는 종이와 낯선 글에 가려진 쓰는 사람의 세계관을 탐구하고 싶어졌다. 세상엔 좋은 이야기, 들리고 쓰여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각자 자기 삶에서 메인이 되는 테마가 있는 법이고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 각자의 생을 통과한 쓰는 사람의 몸이 궁금해졌다.



작가는 아침저녁으로 대하는 현실을 표현해내야 한다. 그는 종종 그 일이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무섭게 달려드는 진실들은 대개 추악하고 음험한 것을 하소연해 오기 때문이다. 왜 이상한 것은 죄다 여기에 있는지. 왜 추악한 사물이란 사물은 다 내 옆에 있고, 아름다운 것은 머나먼 바다 끝에서 가물거리는지. 다시 말해서 인간의 우애와 동정심은 늘 정서의 형태로 다가오지만. 그와 상반되는 사실들은 오히려 손만 뻗으면 바로 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인류는 지나치게 많은 진실은 감당해 낼 수 없다." 12, 《인생》서문



무언가를 쓴다는 건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는 일이다. 그 예민함이 추악한 사물을 모두 감지하고도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많은 진실로 돌진하지 않고 추악함과 아름다움을 적절히 배합하는 센스와 끈기도 필요하다. 현실과의 긴장을 이완하고 화해의 글을 쓰는 일은 쓰는 사람의 매일의 과제이다.



결말이 없는 이야기들은 나를 훈련시켰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인터내셔널가>에는 "애당초 구세주는 없고 신선이나 황제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인류의 행복을 창조하는 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노랫말처럼 매일 밤 전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나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부지런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내고 이렇게 내가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81-82



소설가결핍과 거짓말로 성장하는 듯하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바쳐 주어지지 않은 페이지를 채운다. 위화의 어린 시절은 읽을 책이 없거나, 읽을 책의 일부 페이지가 없는 일로 가득하다. 성인이 되어서는 국가가 분배해 준 대로 치과의사로 일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소득 인기직종이 아니라 작가만큼이나 배고픈 직업이었고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병원 창가 너머로 문화관 사람들이 여유롭게 지나다니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한다. 문화관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작곡, 회화, 그리고 글쓰기. 그는 생계를 위해서 이를 뽑고,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37



그냥 써보는 일 외에 글이 느는 방법은 없다. 삶을 겪어봐야 알듯이 글도 써봐야 내가 뭘 쓰고 싶었는지 알 수 있다.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순간까지도 계속 써야 한다. 어떻게 써야 계속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방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도 그냥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날에만 쓰기보단, 매일 쓰는 것이 좋다. 아니, 매일 쓰기 위한 준비 자세로 사는 것에 가깝다.  



지금의 나는 이미 27년이라는 글쓰기 경력을 갖고 있고 이제는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일생을 통틀어 표현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실제 현실과 개인의 이성과 지혜가 이를 억누르고 만다. 하지만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 준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서 하나가 강대해지면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진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의 길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147



글쓰기를 사랑한다위화의 말이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다.' 읽히는 건 왜일까. 투 트랙.. 우리에겐 두 개의 갈림길에서 가지 않은 길을 노래하기보다, 두 가지 길을 유연하게 모두 가는 방법이 있다. 글쓰기는 가지 않은 길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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