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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 달리기를 주제로 연재를 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함께 달리기. 4월 마라톤을 준비하는 3월부터 여름 초입의 6월까지 달리는 동안 우리 부부의 머릿속에는 지난여름 달리기에 대한 뿌듯한 기억들이 가득했다. 10km 마라톤은 완주가 목표였지만 기록달성만큼이나 뿌듯했고 지난 상반기에 참 열심히도 달렸다.
여름은 길고 지난했다. 수술을 한 탓도 있지만 이번 여름 더위의 잔인함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야말로 소진되는 여름, 옴짝 달짝할 수 없는 여름.
함께 달리기의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했는지 나의 휴식기가 짝꿍의 달리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달리기의 기쁨보다 다이어트의 압박이 더 커지던 시점에서 나는 또 하나의 문제점에 봉착했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는 점. 잠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잠이 들어도 꿈(혹은 악몽)을 꿔서 늘 피로감에 시달렸다.
"잠을 제대로 푹 자보고 싶어. 옆에서 쿨쿨 잘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날이 늘어갔다. 입으로만 생각으로만 달리고 있던 날들을 숱하게 보내고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9월, 그러니까 체감적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답답해 타로점을 뽑아보니 소드 2, 완드 킹, 펜타클 킹이 나왔다.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고 눈을 가리고 회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도권도 내게 있고 행동하면 얻는 것이 많은 카드였다. 오래간만에 해빗 트래커도 만들어서 달리는 날의 날짜를 적었다. 짝꿍 것도 만들어서 각자의 날짜를 기록하도록 해뒀다. 성취감을 높여서 서로를 격려하는 방식이면 좋을 듯했다.
"이상한 일이지. 딱 한 번만 힘들면 문제 여러 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데. 그런데 더 이상하지. 힘들어야 해결된다니."
지쳤다고 느끼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일 것이다. 달리다 보면 내가 생각보다 피곤하지 않았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도저히 달릴 수 없는 몸일 때도 있지만 흔치 않다. 지친 몸은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긴장되어 있어서 그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서 얼마나 이완되어야 하는지도 모를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들어앉은 마음들과 앙 다문 입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달리기는 그 마음들을 일깨우고 잔뜩 힘 준 마음에서 나쁜 힘을 빼준다. 마음엔 힘이 필요하지만, 긴장 그러니까 나쁜 힘은 빼줘야 한다. 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예전에 내가 달리기 기록을 올린 피드에 누군가 악플을 달았다. 그 해프닝 이후로 난 내가 악플보다 달리기 기록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더 중요한 건 지속적인 달리기인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었지만 더 미룰 수 없어서 퇴근 후 짝꿍과 함께 달렸다. 다음 날 비가 오고 추위가 한 발짝 다가온 느낌을 받았다. '이제 진짜 가을이 오는 걸까? 어제 시작하길 잘했다.' 2-3개월쯤 쉰 몸인데도 6-7km는 달릴 수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내 많은 취미들의 뿌리에 글쓰기와 달리기가 있다. 달리기에 대해 자꾸 쓰게 되는 것 같다. 달린 후에는 자꾸 뭔가 쓰고 싶어 진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체력부터 키우라고 했지. 추운 겨울이 몰려오기 전 소중한 가을, 밖에 나가 열심히 뛰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