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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Oct 04. 2024

크로매틱 하모니카 일기(1)



"선생님, 진짜 오랜만이죠?"

"그러네요, 마지막으로 본 게 일 년 전인가요?"

"일 년 하고 좀 더 지난 거 같아요. 더 늦기 전에 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린 결국... 평생 보겠지."



몇 해전 나는 악기를 하나쯤은 해보고 싶은 마음에 하모니카를 시작했다.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처럼 흔히 하고 싶어 하는 악기도 아니고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악기는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는 몇 년째 이 악기와 함께 하고 있다. 기타와 하모니카를 독학해서 연주하시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고 하모니카 소리가 좋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게 악기를 다룰 특출 난 재능이 없다는 걸 어느 정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를 전공했지만 중국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나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운동이나 악기에는 재능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면서 내 마음속에 이전보다 더 강하게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다. '배움이란 때가 있는 법이고, 나를 도울 스승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기회라고.' 살면서 내게 남들보다 나은 능력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분야가 있다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전자가 언어 습득 능력이라면 후자는 운동 신경과 음악적 감각. 이를 테면, 영어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중국어, 불어, 독일어는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독학으로 많은 부분을 커버할 수 있게 되었지만 탁구는 6개월을 쳐도 공을 볼 줄 모르고 피아노는 체르니 40번까지 쳤음에도 악보를 보면 머리가 하얘진다는 것이다.


근처 도시로 배우러 다니다가 결혼 후 알고 보니 학원이 집 근처에 있는 것 아닌가. '나는 하모니카를 계속하게 될 운명일지도 몰라.' 배움을 결심하고 스승을 찾았을 때 그 일이 큰 노력 없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이 사실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소중한 기회이고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내가 하모니카를 시작하게 된 건 크로매틱 하모니카로 연주된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의 Misty라는 곡 때문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지나치게 높은 목표였다. 게다가 선생님은 내게 트레몰로 하모니카를 권하셨다. 붓글씨로 흘림체를 배우고 싶었지만 1년 가까이 정자체부터 배웠던 지난 시절이 스쳐갔다. 아, 배움의 길이여.


트레몰로는 가볍지만 가슴 한 켠을 울리는 소리를 냈다. 들숨에 한 칸, 날숨에 한 칸. 옮겨가며 불 때마다 소리가 났다. 구멍 위치를 정확하게 잡는 것이 하모니카의 소리를 내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두 구멍의 중간쯤에 걸친 소리를 어설프게 내어가며 꽤 오랜 시간 낯익은 가요와 팝송의 낯선 소리를 연습했다. 서툴지만 첫 열정은 언제나 뜨겁고 순수했다. 점점 연주하고 싶은 곡이 늘어갔지만 <Misty>는 곡목의 이름처럼 아득했다.


크로매틱은 언제쯤 불 수 있을까? 선생님과의 레슨이 끝나고 혼자만의 연습시간이 되면 시키지도 않은 곡을 골라 연주해 보고 알 수 없는 조표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어떤 취미는 좌절을 품고 시작하기도 한다. 극복하려는 시도 자체에도 즐거움이 있으니까. 선생님을 따라 지역대학의 평생교육원 강의를 들었다가 방학 중 연수를 듣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심이었고 그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열심이어서 이내 하모니카 소리만큼 쓸쓸해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대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연령대가 그리 어리지 않았고 누군가와 하모니카 연주의 재미에 대해 눌 분위기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업무가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결국 하모니카 레슨을 놓아버렸었다.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사두고 시작도 못 한채. 그렇게 우리 집 서재에서 나의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빛도 못 보고 새초롬하게 놓여있었다. 잠시 쉬어가는 거야. 언젠가 다시 배워야지. 극복하려다 극복하지 못한 선율들.


올해 초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달리기 그러니까, 또 다른 난제인 운동을 해내면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올해 배우지 못하면 나는 내년을 기약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고 나니 나는 일 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보다 많은 시도와 배움. 결국 다시 만나게 되다니.


선생님은 내 연주를 듣더니 예전보다 차분해진 것 같다고 하셨다.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트레몰로 하모니카보다 훨씬 무겁고 깊은 소리를 냈다. 트레몰로와 달리, 한 구멍에서 들숨 날숨으로 두 가지 소리가 났다. 호흡도 더 많이 필요해서 숨이 찰 정도였다. 곡목의 난이도낮췄다. 일단 Misty에서 Moon River로.


'올 겨울 가족 음악회에서 Moon River 한 곡은 악보 없이 연주하기'를 목표로 매주 금요일 선생님과 만나기로 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연습뿐. 이전보다 연습량이 늘었다. 이전의 알 수 없는 쓸쓸함은 없다. 다시 찾은 시간에 대한 소중함과 설렘만 남았다.


올 겨울 극복하는 선율을 기대해 본다.




이젠 어느 때보다 연습량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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