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나는 악기를 하나쯤은 해보고 싶은 마음에 하모니카를 시작했다.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처럼 흔히 하고 싶어 하는 악기도 아니고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악기는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렇게 나는 몇 년째 이 악기와 함께 하고 있다. 기타와 하모니카를 독학해서 연주하시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고 하모니카 소리가 좋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게 악기를 다룰 특출 난 재능이 없다는 걸 어느 정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를 전공했지만 중국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외국어나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운동이나 악기에는 재능도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면서 내 마음속에 이전보다 더 강하게 울리는 메시지가 있었다. '배움이란 때가 있는 법이고, 나를 도울 스승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기회라고.' 살면서 내게 남들보다 나은 능력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분야가 있다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전자가 언어 습득 능력이라면 후자는 운동 신경과 음악적 감각. 이를 테면, 영어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중국어, 불어, 독일어는 약간의 도움만으로도 독학으로 많은 부분을 커버할 수 있게 되었지만 탁구는 6개월을 쳐도 공을 볼 줄 모르고 피아노는 체르니 40번까지 쳤음에도 악보를 보면 머리가 하얘진다는 것이다.
근처 도시로 배우러 다니다가 결혼 후 알고 보니 학원이 집 근처에 있는 것 아닌가. '나는 하모니카를 계속하게 될 운명일지도 몰라.' 배움을 결심하고 스승을 찾았을 때 그 일이 큰 노력 없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이 사실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소중한 기회이고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니까. 내가 하모니카를 시작하게 된 건 크로매틱 하모니카로 연주된 엘라 피츠제럴드 Ella Fitzgerald의 Misty라는 곡 때문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 지나치게 높은 목표였다. 게다가 선생님은 내게 트레몰로 하모니카를 권하셨다. 붓글씨로 흘림체를 배우고 싶었지만 1년 가까이 정자체부터 배웠던 지난 시절이 스쳐갔다. 아, 배움의 길이여.
트레몰로는 가볍지만 가슴 한 켠을 울리는 소리를 냈다. 들숨에 한 칸, 날숨에 한 칸. 옮겨가며 불 때마다 소리가 났다. 구멍 위치를 정확하게 잡는 것이 하모니카의 소리를 내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두 구멍의 중간쯤에 걸친 소리를 어설프게 내어가며 꽤 오랜 시간 낯익은 가요와 팝송의 낯선 소리를 연습했다. 서툴지만 첫 열정은 언제나 뜨겁고 순수했다. 점점 연주하고 싶은 곡이 늘어갔지만 <Misty>는 곡목의 이름처럼 아득했다.
크로매틱은 언제쯤 불 수 있을까? 선생님과의 레슨이 끝나고 혼자만의 연습시간이 되면 시키지도 않은 곡을 골라 연주해 보고 알 수 없는 조표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어떤 취미는 좌절을 품고 시작하기도 한다. 극복하려는 시도 자체에도 즐거움이 있으니까. 선생님을 따라 지역대학의 평생교육원 강의를 들었다가 방학 중 연수를 듣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열심이었고 그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열심이어서 이내 하모니카 소리만큼 쓸쓸해지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대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연령대가 그리 어리지 않았고 누군가와 하모니카 연주의 재미에 대해 나눌 분위기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업무가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결국 하모니카 레슨을 놓아버렸었다.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사두고 시작도 못 한채. 그렇게 우리 집 서재에서 나의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빛도 못 보고 새초롬하게 놓여있었다. 잠시 쉬어가는 거야. 언젠가 다시 배워야지.극복하려다 극복하지 못한 선율들.
올해 초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달리기 그러니까, 또 다른 난제인 운동을 해내면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올해 배우지 못하면 나는 내년을 기약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고 나니 나는 일 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엇보다 많은 시도와 배움. 결국 다시 만나게 되다니.
선생님은 내 연주를 듣더니 예전보다 차분해진 것 같다고 하셨다.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트레몰로 하모니카보다 훨씬 무겁고 깊은 소리를 냈다. 트레몰로와 달리, 한 구멍에서 들숨 날숨으로 두 가지 소리가 났다. 호흡도 더 많이 필요해서 숨이 찰 정도였다. 곡목의 난이도를 낮췄다. 일단 Misty에서 Moon River로.
'올 겨울 가족 음악회에서 Moon River 한 곡은 악보 없이 연주하기'를 목표로 매주 금요일 선생님과 만나기로 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연습뿐. 이전보다 연습량이 늘었다. 이전의 알 수 없는 쓸쓸함은 없다. 다시 찾은 시간에 대한 소중함과 설렘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