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재잘 재잘 떠드는 교실에서 "시끄러워. 조용히 해." 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고, 나도 종종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멈칫한다. 나는 이제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절간이나 수도원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라면, '제대로' 떠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유태인은 탈무드 한 구절을 가지고 몇 시간을 토론하기도 한다. 토론과 논쟁하는 동안 뇌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자기 입장을 상대에게 설득하기 위해 고도의 두뇌 활동이 필요하다. 여러 생각 중에 최선의 생각을 선택하고, 그것을 다시 정리하여 말해야 한다. 또한 상대 주장을 경청하고 이를 분석하여 허점을 찾아내고, 다시 반박해야 한다. 이러한 토론과 논쟁은 뇌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특히 하브루타는 1:1 토론이다. 들었으면 말해야 하고, 말한 후 다시 경청해야 한다. 이러한 1:1 상호 작용에 의한 질문과 논쟁은 뇌의 시냅스 연결을 활성화하고 미엘린*을 두껍게 하는 최고의 환경이다.
*미엘린: 뉴런(뇌세포)에서 신호를 보내는 축삭돌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이며, 전선의 플라스틱 피복처럼 전달 신호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정보를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처리하도록 돕는다. 최근 뇌과학 연구는 집중적으로 사고할 때 미엘린 두께가 두꺼워진다고 밝혔다.
<하브루타 4단계 공부법>
한때 꽤 친했던 한 미국인 친구는 툭하면 대화 말미에 '네 생각은 어때?'라고 덧붙이며 서양인인 본인과 다를 '동양인'의 시선과 의견을 궁금해했다. 거참 피곤하게 하네. 그냥 그런 거지. 참 궁금한 것도 많네.
어린 날의 나는 투입에만 몰입한 학습자였다. 과도한 투입은 결핍을 부르고, 실력과 자신감의 상승보다는 '더 익혀야할 것만 남은'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호기심은 더 많은 지식에 대한 '열망'과 미처 익히지 못한 지식으로 인한 '불안감'과 자주 혼동되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일단 인정하고 나면 쉽다. 물어보면 되니까. 하지만 지식을 묻는 질문은 모르는 걸 물어보고 답을 찾으면 끝난다. 하브루타는 끝날 줄 모르는 대화이다. 결핍이나 불안이 아니라,존중하는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묻고 자신이 알고 믿는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정신이다.
"근데, 크리스마스 선물은 왜 산타클로스가 주는 걸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너무 당연해서(?) '왜' 그런지 묻지 않았던 질문들. 그걸 안에서 꺼내놓는 게 질문의 시작. 그 후에 탐구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르는 건 신나는 일이다.
"음...산타클로스가 무슨 뜻이야?"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대리인으로 역사상 처음 등장한 존재는 성 니콜라우스다. 그는 4세기경 소아시아 남서부 뮈라의 주교였다.'라는데...? 엥? 소아시아? (소아시아 검색 중) 오..아시아 대륙 서쪽 끝, 흑해, 마르마라 해, 에게 해, 지중해 등에 둘러싸인 반도. 튀르키예 영토의 97%를 차지한다."
"산타 할아버지 국적이 북유럽 어느 나라였는데...?"
"핀란드 아니야?"
"맞아, 맞아, 맞아.."
"시작은 소아시아의 주교였다니. 생각 못한 전개군."
"산타클로스 원래 키 크고 말랐대. 코카콜라가 콜라 팔려고 광고에 푸근한 할아버지 이미지로 만든 거래."
그나저나 호기심 폭발까지는 좋은데, 산으로 간다. "원래 질문이 뭐였지?" 한 아이가 야무지게 짚는다.
"아, 맞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왜 산타클로스가 주냐고?"
"동심을 지켜주려고 그런 거 아니었어? 엄마, 아빠가 주는 거 다 알고 있었잖아?"
"아까 선생님이 '도우트 데스do ut des'라는 표현 알려줘서 찾아봤는데, '받기 위해서 준다', '네가 주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준다', '네가 나에게 줄 것을 예상하기에 준다'는 뜻이래."
"선물이 무슨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런가봐. 예전에는 장자상속제여서 맏아들이 아니면 부모에게서 땅이나 집 못 받아서 각자 살길 찾아야 하는데, 집 떠나기 전에 유산 미리 받는 의미로 약간 보상을 받긴 했나봐. 선물 받으면.."
"떠나야 하는 거야?"
"응. '사랑하는 아이가 크리스마스 선물 받고 오해해서 가출하면 어쩌지?'' 고민하다가 선물 주는 대리인을 만들어 낸 거라는데. 와 닿아?"
"글쎄.."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는 핀란드 사람이 아니라, '미쿡' 산타클로스 아닐까? 빼빼로 데이같은 상술?"
이 정도까지 떠들다보면 1시간으론 부족하다. 우린 더 떠들고 싶다. 이런 대화는 사실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라는 책을 읽고 재구성해본 대화이고, 우리 아이들의 머릿속엔 진로와 입시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차 있다.
혼자 하는 공부에서 깊은 탐구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지만, 어떤 대화는 반드시 나 이외의 사람과 교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책 중의 책은 사람책이다. 때론 고통스러운 독서법이지만 안으로 집어넣기만 했던, 꾸역꾸역 먹었던 지식들을 끄집어 내줄 수 있는 사람은 내 곁의 친구다.
혼자 하는 공부는 지루하고 자기 절제가 어렵다. 하지만 공부 짝을 만들어 서로 규칙을 정하고, 질문하고 설명하는 하브루타로 공부한다면 자기 조절력도 향상되고, 집중력도 올라갈 것이다. [...] 공부 친구는 시간과 계획을 함께 관리하면서 공부라는 레이스에서 자신의 페이스 유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달리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도움을 준다. 힘들 때 함께 공부한 친구는 가장 잘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며 긍정적인 시너지가 될 수 있다.
<하브루타 4단계 공부법>
공부 친구가 주는 인지적, 심리적 효과는 상당하다. 우리는 자신을 사회적 존재로 인식할 때 더 나은 생각과 행동으로 나아간다. 수 많은 실험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왔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던' 생각에서 빠져나오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나누면서 우리는 자란다.
하브루타 모형과 활동은 정말 다양하지만 그 중 공부친구와 관련된 활동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친구 가르치기 활동
이 활동을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5~10분 정도 정리할 시간을 준다. 더 잘 설명하려는 욕심으로 시간을 더 달라는 아이도 있지만, 대체로 10분을 넘기지는 않는다. 이전에 백지에 배운 내용을 옮기는 활동을 하였는데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났다. '아, 뭐였지? 뭐였지?' 인출의 고통.
이번엔 끝까지 설명하기. 앞에 나와서 말하는 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해서 일단 지원자만 받고, 나머지는 옆 짝꿍과 진행했다. 아무리 생각이 안나도 절대 보지 않기. 키워드 정도는 힐끔 볼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본인이 이해한 걸 끌어내 설명하도록. 서로 모를 땐, 빈칸으로 두고 일단 아는 것만 최대한 설명한다.
본인 차례가 끝나면 옆 짝꿍의 설명을 들으며 질문을 한다. 질문 없으면 '네 생각은 어때?'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이전 글에서 나눈 인터뷰 속 질문이 떠오른다.
"선생님, 인간 관계 문제가 책으로 해결이 돼요?"
사람이 책이라면, 옆구리에 책을 끼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독자는 책을 집어 드는 순간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말이 있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이다.
맞지 않는 책과 사람 앞에서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막막함을 대하는 태도와 대처법. 먼저 떠들어봐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또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