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상담 일기(8): 자기 계발서형 Vs 소설형

자기 처벌에서 자기 돌봄으로

by 뭉클


상담을 시작할 땐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기분이 된다. 이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담자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고, 상대도 희망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니까.


타로 상담 선생님은 평소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를 자주 읽어두라고 했다. 따뜻한 쿠션어를 연습하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세상의 이치를 풀어가는 '당연하지만 종종 잊는' 그런 글귀를 익혀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으면서 자기 계발서형 상담가와 소설가형 상담가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런 구분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소설가는 관념에서 세부로 깊이 침투하는 사람이다. 좋았다, 슬펐다에서 어떤 연유로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지 생생하게 상상하는 사람.


내담자 W의 일기장에는 주로 자기 처벌, 두려움, 자기 수용, 자기 자비, 자기 존중, 자기 긍정과 같은 관념어가 가득했고, 망했다든지 상처받았다든지 하는 극단적이고, 희망과 불안을 롤러코스터처럼 오가는 어휘가 많았다.


자기 계발서에도 예시와 근거자료는 등장하지만 위와 같은 개념어가 자주 등장한다. 질문을 던지면서 세세하게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가에 비해 자기 계발서에는 이미 모두 이룬 자기 자신이 등장한다. (뭐가 더 좋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글의 종류와 글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소설이라면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은 억지스럽거나 뻔하지 않다. 감각하는 일은 디테일의 질을 높여준다. 내담자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수록 그 세부 정보는 점점 더 촘촘해진다. 소설 속 캐릭터에겐 늘 욕망이 있다. 그리고 꼭 그걸 막는 방해물이 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더욱 간절해진다. 긴장이 고조되다 못해 끓어버린 상황에서 우리는 만난다.


캐릭터의 욕망을 읽어주고 진짜(?) 방해물을 찾아 줄여주면서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상담의 목적일 것이다. 다만, 그 진짜(?)를 말하는 과정에서 자기 계발서적인 말을 할 것인지,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된 이야기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정해진 것은 없다. 대신 상대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다.)


명상과 드라마 사이에서 우리는 번뇌 0~100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본값인 불안과 무기력을 무시할 수 없다. 상담에도 예외 없이 힘 빼기가 필요하다. 소설엔 핍진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러니까 개연성은 있지만 실제로 그게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캐릭터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지. 옳은 소리, 멋진 진실보다 그만의 사연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더 나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왜 나를 찾아왔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나에게서 찾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라는 질문의 답은 너에게서 찾는다.


상담가는 창의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뻔한 답변을 내는 사람도 아니다.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디테일이 모여 의미 있는 이야기는 하나의 플롯이 된다. 화자와 주인공이 같은 필요는 없다.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이야기가 재밌다. 상담에도 매력적인 주인공이 이끌어 가는 재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상담도 재밌어야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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