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2025. 10. 3)
여행을 떠난다는 건 기꺼이 기다리기로 결심하는 일이다. 어디로 가는지 안다고 생각하고, 계획대로 된다고 느끼지만 사실 대부분의 여정은 그저 우연의 조합일 뿐.
(라운지 앞에 늘어선 숨 막히는 줄을 보고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KFC에서 맥주 한 잔 마시는데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역시 사람들이 저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결론을 내림)
고등학교 때 이후로 끊었던 일본어. 가타카나, 히라가나를 열심히 외워갔지만 정작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시로 가는 하루카 열차를 타기 위해 필요한 건 거의 놓칠 뻔한 캐리어를 낚아채는 짝꿍의 순발력과 키티 로고를 알아보는 우리의 시력. 열차 칸 사이에 캐리어를 싣고 자리에 앉아서야 눈에 들어오는 다국어의 향연. 아~ 의미 없다.
첫날은 교토에게 환영받는 게 전부였다. 우리는 이 가깝고도 먼 나라가 사실은 아주 많이 멀기만 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출발했지만 항공편 지연 이슈로 조금 더 늦어졌고. 입국하기 전에 미리 비짓재팬 웹사이트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해 두면 QR코드로 간편하게 입국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별 준비 없이 도착한 일본은 시작부터 좀 난해했다. 그래도 가방에 펜 하나쯤 가지고 다니면 쓸모가 있다는 작고 소중한 교훈.
배가 고파서 숙소 근처 야키토리 식당에 가서 30분쯤 기다렸다가 저녁을 먹었다. 일본어 메뉴는 번역기가 있으면 되었고, 점원과 대화할 때는 초보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초보 영어를 쓴다.
(유창한 영어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 상대가 알아들어야 회화가 아니던가!!!)
여행이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2가지. 편의점 오니기리와 디저트(빵과 아이스크림), 숙소 TUNE STAY의 온천을 방불케 하는 샤워 수압! 그런데 사실 두 가지라고 꼽으면서도 맛있는 맥주,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던 거리, 고즈넉한 교토의 풍경, 선하고 다정했던 사람들의 얼굴 등등이 떠오른다.
DAY 2 (2025. 10. 4)
우리가 일본에 오다니. 잠이 덜 깬 상태로 걸으면서도 내내 일본임을 실감했던 건 마트와 편의점에서 펼쳐지는 먹거리 퍼레이드. 재주를 부리는 수준이었다.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결국에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
길고 뾰족한 덩어리로 존재했던 일본에서 나는 어디쯤일까, 지도 속에서 가늠했다. 교토는 어디고,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일본식이 아니라 진짜(?) 일본 사람들만 먹을 것 같은 음식들 위주로 탐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남들 다 하는 교토 유명관광지 버스 투어를 포기하고 버스 원데이 패스를 끊어서 타고 돌아다녔다. 관찰력 좋은 짝꿍에 따르면 버스는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문을 닫고 떠나면서 쓱 다시 올라온다고 했다. 승객들이 내릴 때마다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 다정한 버스기사 아저씨 인상적이었고 이곳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선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지하철을 얼른 타보고도 싶었지만 제대로 된 첫 여행날이니 사람구경, 건물구경, 낯선 모든 것들을 눈에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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