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일은 아니야

by 소리빛

내가 지인에게 최근 엄마의 변화를 이야기하자, 그는 마치 자기 일처럼 놀라며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그거 뇌경색일 수도 있어. 그냥 지나가면 안 돼. 당장 병원부터 가봐.”


단순히 노환이라 믿고 싶었던 내게 ‘뇌경색’이라는 단어는 날카로운 바늘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즐겨보시던 TV 채널이 변해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밝았던 엄마가 시끄러운 뉴스 대신 레슬링이나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단순한 프로그램만 틀어두셨다.


“뉴스를 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험한 말만 해서 무섭기만 해.”


말이 빠른 뉴스 앵커의 말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엄마. 피곤하다는 핑계로 엄마를 방치해 두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나는 두 달 뒤에나 잡혀 있던 신경내과 예약을 가장 빠른 날짜로 당겼다. 병원 상담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간곡히 사정을 하자, 이틀 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치매를 검사하는 설문검사는 환자 당사자와 보호자에게 각각 주어진다. 질문 문항도 꽤 많아서 고민하다 보면 20분은 걸린다. 검사실 밖에서 설문지를 채우는 동안, 검사 선생님이 나를 급히 불렀다.


“어머니 치매가 갑자기 진행되었어요. 서둘러 공단에 등급 신청을 하셔야겠어요. 보호자님 직장 다니시는데, 엄마를 집에 혼자 두시면 더 심해집니다. 치매케어센터를 알아보세요.”

“선생님, 최근 고모가 돌아가시고 집에 큰일이 있었어요. 엄마가 워낙 자존심 강하셔서 안 가시려고 할 텐데...”

“그래도 설득하셔야 해요. 지금 이대로는 안 됩니다.”


무거운 납덩이가 가슴속으로 툭 떨어졌다. 미닫이문 너머. '치매 판정을 받은 오늘의 엄마‘를 만나야 한다. 그 문 하나를 여는 것이 왜 그리도 힘겨운지, 손잡이에 실린 미닫이문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얼굴이 이렇게 빨게? 열나니? 갱년기라서 그런가 보다.”


내 속을 모르는 엄마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얼굴에 입을 맞췄다. 진료실 2번 방 앞에 걸린 명단에 엄마 이름 세 글자가 떴다. 왜 내 가슴이 이렇게 뛰는지. ‘똑똑’ 진료실로 들어섰다. 검사지를 인계받은 의사 선생님 역시, 내게 서둘러 어머니의 등급신청을 받으라고 재촉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엄마에게 아이를 달래듯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우리 치매등급 받는 거, 신청 하자. 그러면 치매가 더 진행되지 않게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어르신 학교 다니면 재미있는 것도 많대. 그런 곳은 몸이 아파서 가는 곳이 아니야. 집에 있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런데 가기 싫은데, 노인네들만 가는 데잖아.”

“엄마, 집에 계속 있으면 심심하고 운동도 못하잖아. 그러면 무기력해져. 건강에도 안 좋고.”

“남이 알면 창피하잖아.”


엄마의 그 한마디에 나의 눈에 비가 내렸다.



“엄마, 창피한 일이 아니야. 나는 엄마가 더 아파서 심해질까 봐 그게 더 무서워. 절대 창피한 거 아니니까. 일단 다녀보자. 엄마가 다니다가 정말 싫으면 그때 가지 않아도 돼.”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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