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모래는 잠시의 기억도 허용하지 않는다. 모래 위에 새긴 발자국은 이내 파도에 휩쓸려 가기 때문이다. 반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와 지독한 추위의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는 제가 가진 가장 무거운 잎사귀부터 하나둘 떨어뜨린다. 그렇게 툭, 하고 기억의 잎사귀가 떨어진 나뭇가지 끝에는 '엽흔(葉痕)'이라 불리는 작은 자국을 남긴다. 잎이 달려 있던 자리, 그 줄기와 연결되어 수분과 영양을 나누던 그 은밀한 통로의 흔적. 잎은 사라졌어도 그 자리가 한때 뜨거운 생명을 나누던 흔적이었음을 평생 흉터처럼 새기고 산다.
엄마의 기억도 거대한 시간의 파도에 듬성듬성 지워지고 있다. 그리고 엽흔과 같은 기억의 파편을 지니고 있다. 조금 전에 맛있게 먹었던 나물 반찬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조금 전에 한 이야기를 잊어버렸어도 거대한 시간의 파도는 반짝이는 기억의 조각들은 다행히 지우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 보석 같은 기억들도 모조리 가져가 버릴 수 있겠지만. 엄마의 기억 속 저편에 있는 추억의 한 단면들은 아직 남아있다.
엄마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나에게 동요나 가곡을 가르쳐 주며 노래 연습을 시켰다. 가끔 우리 삼 남매는 아빠가 일찍 들어오신 날이면 저녁상을 치우고 아빠와 엄마 앞에서 노래자랑을 하듯이 돌아가며 각자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기분 좋아진 아빠는 바지 주머니를 뒤져 천 원씩 용돈을 나누어 주셨다. 언니는 나와는 달리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학교에서 합창대회가 있을 때면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를 도맡아 했다. 덩치가 큰 동생은 기타를 쳤다. 아빠가 가르쳐 주기도 하고 잠시 학원에 다녔던 것 같다.
기억이라는 그물은 신기하게도 그물의 끝에 걸려 지워지지 않는 반짝이는 조각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은 집요한 집착으로, 어떤 것은 오래된 노래의 선율로 남는다. 언제나 학교(데이케어 센터)의 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퇴근하기 전에 엄마를 데리러 가야 한다.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목시계의 알람을 오후 4시 반에 맞추어 놓는다. 그래야만 퇴근 시간의 복잡한 도로를 피할 수 있다.
“여보세요. 데이케어 센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도 고생 많으셨죠? OO님 보호자입니다.”
“아. 1층에 오셨어요? 곧 모시고 내려가겠습니다.”
이곳 데이케어 센터는 어르신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센터에 다니는 어른의 보호자임을 반드시 확인하고 요양보호사나 자원봉사자가 1:1로 함께 움직이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밝은 얼굴을 가진 요양보호사가 엄마의 손을 잡고 서 있다. 요양보호사는 엄마의 손을 내게 건네며 조심히 가시라는 인사를 공손히 한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차의 뒤 좌석에 편히 앉혀 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붉은색으로 칠한 듯 도로가 차들로 가득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살피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엄마, 오늘은 밥 많이 먹었어?”
“그럼, 맛있는 반찬이 나와서 다 먹었지.”
“잘했네. 무슨 반찬이었는데 그렇게 맛있었어?”
“뭐··· 이것저것, 시금치 하고 ···.”
엄마는 기억을 더듬느라 한참을 생각한다. 나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엄마, 오늘은 뭐 했어? 그림 그렸어?”
“그림은 아니고 색칠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랬지.”
“노래? 무슨 노래 불렀어? 엄마는 노래 잘하잖아.”
“음····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 잘 기억이 안 나. 아까는 잘했는데.”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
내가 핸들을 잡고 박자를 쳐가며 먼저 노래를 부르자 엄마도 따라 부르며 머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어 박자를 맞춘다. 비록 엄마의 노래가 가사의 마디마디는 끊어지고, 음정은 가끔 길을 잃고 헤매지만, 엄마의 입술 끝에 맺힌 단어들은 분명 나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던 그 시절의 향기를 담고 있다. 하얀 꽃 이파리가 눈송이처럼 날리던 그 길, 엄마가 가장 젊고 눈부셨던 그 계절의 길이다.
“둘이서 말이 없네····”
라는 대목에 이르자, 엄마는 정말 가사처럼 말을 멈추고 차창 너머 먼 허공을 바라본다. 그 미소의 의미를 나는 안다. 잊어버린 단어들 사이를 채우는 5월의 따스한 바람과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라는 것을. 매년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나는 엄마와 함께 가장 많은 아카시아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봄 소풍을 나갔다. 아카시아꽃이 온 산을 덮고 그 향기에 취했던 그 많았던 봄날의 추억이 사라졌어도 엄마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 기억이 머물다 간 선명한 '자국'이 있겠지. 노랫말은 사라져도 그 선율은 남아있고, 노래는 끊겼으나 그 시절의 향기는 엄마의 눈빛에 선명한 잎자국처럼 박혀있다. 나는 비바람에 잎을 보낸 빈 가지가 허공을 휘젓는 날이 오더라도 다음 봄을 준비하는 나무의 단단한 약속을 믿는다. 그리고 엄마의 무릎 위에 내린 ‘과수원길’이 새순처럼 돋아나길 바라며 매일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잎은 져도 그 자리는 남는다. 기억의 겨울을 맞이한 엄마의 영혼에 새겨진 선명한 '엽흔'을 따라가는, 어느 날의 저릿한 기록을 한 장씩 넘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