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곤혼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침마다 내 몸과 찰나의 전쟁을 치른 뒤에야 침대에서 나올 수 있다. 나의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배신감을 매일 아침 느끼기 때문이다. 6시 20분. 시계 알람이 요란을 떨자 무거운 발바닥으로 방바닥을 딛고 뒤뚱거리며 일어섰다.
“좀 더 버티세요. 호흡을 길게 하고!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깡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진 단발머리 강사의 구호에 맞춰 자세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땀이 바닥에 뚝뚝 점을 새겼다. 힘을 풀자마자 내동댕이 치듯 바닥에 누워버렸다. 팔과 다리가 덜덜 떨린다. 높이 걸린 시계를 보니 기다란 바늘이 오전 7시 50분을 향하고 있다. 10분 남았다. 안 되겠다. 나는 보라색 얇은 매트를 돌돌 말아 정리하고 요가링도 제자리에 두었다.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뒤쪽의 거울을 지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다.
“아, 힘들어.”
저절로 탄식처럼 말이 튀어나온다. 떨리는 다리를 끌고 벤치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시계를 봤다. 서둘러야 한다. 샤워해야지. 땀으로 젖은 옷을 벗는다. 팔에 기운이 없어서인지 옷을 벗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아무도 없는 샤워실의 구석 자리로 가서 샤워용품이 있는 가방을 던지듯 벽에 걸었다. 샤워기의 버튼을 손바닥으로 힘껏 눌러 물을 틀었다. 머리에 떨어지는 물줄기가 이렇게 감사하다니, 그런데 도저히 못 버티겠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는데 물줄기를 타고 물보다 뜨거운 무언가가 흐른다. 코끝이 저려온다. 왜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를 타고 내려온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샤워장 바닥에 앉아 종아리와 발바닥을 엄지와 검지로 힘주어 꾹꾹 눌렀다.
“너무 아프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샤워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떨리는 손바닥 위에 샴푸를 덜어 머리를 감았다. 샤워 중에도 몸에서 뱉어내는 식은땀이 등줄기에서, 가슴에서 솟아 흘렀다.
지난 6월부터 이른 아침에 필라테스를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무렵, 갑자기 체중이 늘어났다. 지병이 있는 탓에 약의 부작용에 따른 필연적인 변화라고 생각하며 위로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불어난 살들이 몹시 불편했고 그동안 입던 옷들이 맞지 않을 정도까지 되었다. 남들은 갱년기라서 그런 것이라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그동안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소홀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 더 부지런하고 건강해지자는 의미에서 이른 아침부터 필라테스를 하러 다니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은 준비물이 필요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집 근처의 문화센터에서 다니는 것이라 오가기도 편리하고 출근하기 전에 운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더욱 좋은 점은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씩 하는 운동이어서 나의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몸무게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허벅지의 근육이 단단해졌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예전부터 날 알던 사람들은 건강해져 보기 좋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아예 몰라보는 사람도 있다. 반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엄살 심한 뚱보라고 탓한다. 그도 그러려니 한다. 약장을 가득 채운 통증 조절제와 잠자는 약 등이 내 몸의 신진대사를 멈춰 세우고 몸을 부풀리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엔, 내 하루의 에너지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내 몸은 1년 전과 다르다. 하지만 그것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 통증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쓴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나, 왜 이렇게 됐어? 제발 밤에 잠 좀 자.”
남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부푼 나를 보며, 그 원인을 밤늦은 시간 동안 잠을 안 자고 일을 하며 야식을 먹기 때문이라고 아는 척을 한다. 나는 그 대답에도 반박하지 않는다. 약이 들어 있는 서랍장을 수없이 보았으니, 나를 걱정하는 마음 반, 놀리는 마음 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랫동안 ‘섬유근육통(Fibromyalgia)이라는 증상을 앓고 있다. 이 질환은 외관상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꾀병'이라고 오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신경계가 통증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태라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염증이나 통증을 줄이는 약을 먹지 않으면 살과 뼈가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원인은 알 수 없다. 통증도 한 곳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약물만으로 부족할 때는 파스를 붙이기도 한다. 큰 것은 작게 자르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플 때는 작은 모양으로 잘라 붙이기도 한다(요즘에는 손가락에 붙이는 손가락용 파스가 나왔는데 이 아이디어는 내가 먼저 했다고 주장하고 싶다). 파스를 붙이면 그나마 통증이 나을 때도 있지만 파스 성분으로 잠을 쉽게 이룰 수 없거나 접착성분이 피부를 자극하여 며칠을 지속하여 사용할 수도 없다. 정말 많은 파스를 오랫동안, 다양하게 사용한 끝에 결국은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효과 있는 붙이는 파스와 액상형 통증완화제를 찾았고 나만의 사용법도 만들었다.
즉 파스를 사용하려면 가능하면 냉온감이 동시에 있는 파스를 사용해야 하고 오랫동안 붙이지 않고 같은 부위에 같은 크기의 파스를 연속으로 붙이면 안 된다. 파스에는 약성분이 피부에 잘 흡수되도록 돕는 '흡수촉진제'가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이 접착제와 만나 피부염을 일으킨다. 또한 파스를 제거하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물기나 오일을 파스를 붙인 피부 주변에 바른 뒤 살살 떼어내면 그나마 피부장벽의 손상을 덜 수 있다. 그리고 한방 통증 완화젤을 사용한 뒤로 피부에 포진이 생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최근 엄마가 인지장애 판단을 받은 이후 아침에 운동하는 나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엄마를 데이케어센터에 모셔드리고 출근해야 하므로 요 며칠은 도저히 힘에 부쳐서 운동보다 잠을 더 자는 것에 나 스스로 합의를 했다. 이제 나도 엄마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간밤에는 내가 운동을 다녀오면 엄마가 일어나서 스스로 씻을 것을 서로 약속했다.
운동하러 나가기 전, 나는 엄마에게 이제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문을 나서기 전에는 분명히, 엄마는 ‘알았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나 내가 나가자마자 엄마는 다시 침대 속으로, 꿈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부랴부랴 샤워를 끝내고 문화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씻고 있나?’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맙소사, 엄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8시 20분.
“엄마, 엄마. 아직도 자고 있으면 어떡해?”
놀란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왜? 자면 안 돼?”
“학교에 가기로 했잖아. 내가 운동 다녀오는 동안 씻는다고 해놓고···.”
“씻으려다가 네 방에 너 없으니까, 안 가는 날인가 보다 했지.”
다시 식은땀이 훅 치달아 오른다. 큰 컵을 들고 정수기로 가서 찬물을 마셨다. ‘하아-’ 덜 마른 머리에서 물방울이 거실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나는 엄마를 욕실에 데려다주고 아빠의 아침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점심에 드실 간식과 두유, 과일도 챙겨서 아빠의 침대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아빠가 깨지 않도록. 이러한 조심스러움은 아빠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내가 지체할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다. 아빠가 깨면 이유가 생기고 말이 길어지기에. 엄마의 외출 준비를 마무리했다.
8시 50분. 오늘도 나의 치열한 하루는 이렇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