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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Feb 27. 2019

맑은 날에 그리운 우도 해초비빔밥

경상남도 우도 송도호민박 

  동백꽃으로 붉던 우도가 그립다. 가슴 휑하게 맑은 날이면 우도의 진정한 해초비빔밥과 보랏빛 군소가 생각난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1시간 남짓한 우도로 곧장 가는 배는 하루 세 번 있다. 그러나 우도를 제대로 즐기려면 연하도에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연하도에서 반하도, 우도를 연결한 다리를 건너기 위함이다.

  2018년 6월 준공한 이 다리(309m)는 차가 다닐 수 없는 보도교이다. 배가 운항하는 날은 주로 맑은 날이기 때문에 우도로 향하는 길은 늘 푸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반하도를 반 바퀴 돌면 신비한 동백나무 숲과 만날 수 있다. 촘촘히 선 나무들이 하늘과 바다를 가리고 있어 몹시 어둡다. 우도에는 동백나무가 가장 많은데, 섬 동쪽의 용강정 주변에는 200년 넘은 동백나무들도 있다. 붉은 동백을 머리에 이고 간지러운 동백 향에 취해 걷다 보면 아랫마을에 도달한다. 

  우도에 단 하나뿐인 송동호 민박. 마당에서 청각을 북북 빨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침에 청각을 바다에서 가져왔는데 이렇게 빨아서 무쳐먹어도 좋고 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다고 한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강남연 여, 54세)는 벌써 상을 차려놓았다. 해초비빔밥은 그날그날 바다에서 채취해 오는 것을 사용하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오늘은 모자반, 까시리, 서실, 미역, 톳 5가지를 준비했고 여기 멍게 하고 미역을 섞어 비빔밥으로 드시면 돼. 여 전갱이는 쫄깃하고 다른 데하고 달라. 더 맛있어."

  아주머니는 손님이 오는 이른 아침이면 바다에 나가 해초와 거북손, 따개비, 홍합 등을 채취한다. 해초는 형형색색으로 푸짐하고 전갱이는 노릇하게 구워졌다. 옆에는 거북손과 알 굵은 따개비, 못난이 홍합, 고둥이 한 바구니 있다. 해초 부침개와 청각 나물, 삭은 고추절임, 파래 김국, 몇 가지의 산나물 등 정성이 가득하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시아버지의 병환으로 남편을 따라 섬으로 들어왔다. 마음 착한 며느리는 물때가 언제인지, 굴을 따러 바다에 나가서는 어느 것이 바위인지 굴 인지도 몰랐다.  

  "법꿀(석화)은 사철 나는데 시집와서 맨 처음에는 바위인지 굴인지 몰르고 그랬다. 나중에는 호미 가지고 요래 때려보며는 소리가 난다. 통통통 소리가 나면 얘는 굴이구나, 탕탕 튀고 하며는 얘는 돌이구나 하고 알지. 그 굴 하나 따려며는 엄청 힘이 든다. 그게 5년 걸렸다."


  그녀는 어딘가로 들어가더니 군소가 든 작은 냄비를 가져온다. 봄에 채취했던 통통한 군소를 삶아 얼려놓았다가 좋은 손님에게 조금씩 대접한다. 검은 가죽에 금빛 가루를 점점이 뿌린 군소의 등은 생각보다 부드럽다.   

  “이게 귀한 손님 올 때만 내준다. 몬 생겼어도 향이 좋다. 이게 해녀들한테는 마리당에 얼마씩 판다. 엄청 비싸. 이게 약이니까 좋다. 여 먹으봐라. 여 알이 기어 다니며 알을 쏴. 국수 말아 논 거처럼 해초에 쏴 놓는 거야. 그 알을 몸에 머물고 있을 때 삶으며는 계란 노른자같이 나와. 봄 되면 있더라고. 항상 내장을 빼 삶는다. 군소가 귀가 있제? 그게 잡을라 치면 보라색 물을 쏘면서 도망을 간다. 꼭꼭 씹어서 우물우물 꼴딱해. 하나 다 먹어. 이거는 야채 놓고 막 무쳐먹으면 또 맛있다.”

  필자는 바다 토끼라는 귀한 군소를 떠끔떠끔 받아먹었다. 씹을수록 쫀득하고 낮은 솔향이 난다. 다음은 다섯 가지 해초에 멍게를 한 숟가락 올려 고추장에 비벼 본다. 해초가 입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놀고 멍게의 향은 숨을 쉴 때마다 코에서 역류한다. 역시 맛의 해답은 청정한 자연인가. 아주머니는 날이 좋으니 바다로 나가자 한다. 뜻하지 않은 호강에 신이 나 그 뒤를 따라나섰다.  

군소가 품고 있는 알


  주인아저씨(김강춘 남, 58세)의 배는 멀둥나래(작은 방파제)에 정박해 있다. 부부는 우도에서 가장 젊다. 현재 인구가 25명인데, 70대 이상의 노인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부의 일과 중 하나가 마을 노인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때 농사를 짓지 않아도 돈벌이가 좋아 돈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그때에는 아저씨의 동급생이 28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바다에서 나는 것은 다 있다는 너른 바위에는 거북손과 따개비, 고둥이 바위틈 사이에 겹겹이 붙었다. 거북손을 캐고 해초류를 따는 아주머니는 마치 산에서 나물을 뜯듯 똑똑 따낸다. 비탈진 바위에서 발을 내딛지 못하고 벌벌 떠는 필자와 달리 경사진 바위를 성큼성큼 다닌다. 이미 삶이 되어버렸다는 뜻이겠지. 잡은 따개비를 칼로 긁어 입에 넣어준다. 너무 짜다. 이맛살을 찌푸리자 달처럼 웃는다.

  “이게 지금은 짭조름하지. 씹을수록 더 짜다. 그지? 이게 전복하고 똑같다. 알도 이리 크다. 따개비가 꼬들꼬들해. 들척지근한 게. 지금 프라이팬만 있으면 살짝살짝 볶아서 보글보글 끓이고 술만 가져오면 자연히 안주다. 거북손도 냄비 앉혀 놓고 먹는 기다.”

연하도와 반하도, 우도를 연결하는 보도교

  정말 어떤 날 이곳에 와서 그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십 넘은 노모는 이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며느리의 음식이 세상 최고라고 자랑한다. 다음에는 오돌도돌 따개비밥을 해 준다며 다시 오라고 손을 흔드는 부부의 마음에 필자도 손을 크게 흔들어 답했다. 또 오겠노라고.      



 위 글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 N 문화' : 우리 집의 맛과 향토 음식에 게재된 글입니다.


송도호민박은 우도에 하나 있는 민박집이자 식당이다. 마음씨 좋은 김강철(남, 58세), 강남연(여, 53세) 부부가 운영한다.  그들의 따듯한 정에 감사하며 새로운 인연을 마음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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