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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빛 Mar 13. 2019

주전자 떠꿍으로 껍질 벗겨서 끓여 먹던 수구레국밥

경상남도 창녕 우포 수구레국밥 

    창녕으로 가는 길목은 가을로 풍성하다. 이곳은 서부 경남지역의 우시장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만 해도 우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새벽부터 소를 싣고 온 트럭들로 붐볐다. 그리고 어김없이 소를 좋은 가격에 판 사람도, 산 사람도 점심때가 되면 소주에 수구레국밥을 먹었다. 자식처럼 거둔 소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함을 뜨거운 국밥 한 술로 달랬다.

  창녕장이 열리는 날에도 장을 찾은 사람들은 수구레국밥을 먹었다. 수구레는 소의 두꺼운 겉가죽과 고기 사이의 피부 근육이다. 소의 특수 부위로 많은 양이 허락되지 않고(약 2kg) 손질도 어려운 부위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장날이 아니어도 인근 시장이나 수구레 골목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현풍 백 년 도깨비시장’에는 수구레국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십여 집 남아 있다. 골목에 들어서면 구수하고 매콤한 수구레국밥 냄새가 군침을 돋운다. 국밥집마다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한 솥 가득 수구레를 끓인다. 콩나물과 우거지, 파를 넣은 벌건 국물은 언뜻 보기에도 얼큰해 보인다.

  


  

  필자는 건축현장에 다닌다는 동네 주민의 추천으로 30년 가까이 수구레국밥을 끓이고 있는 서외숙(여, 63세)씨를 만났다.      

수구레국밥

  “옛날에는 몬사는 사람들이 수구레를 먹었어요. 소고기는 비싸서 못 먹고. 어릴 때부터 우리는 먹었죠. 지금은 소 껍질 뼈껴논 거 가오지만, 그때는 숙모님 할 때는 소 털 삐끼는 걸 그 와갖고 큰 주전자에 물 끓여가지고 수돗가에 펼쳐놓고 주전자 떠꿍 있잖아. 떠꿍. 그거 갖고 다 삐꼈어. 소 껍질까지 다 먹은 기지. 그때는. 그런데 지금은 소 껍질은 없잖아. 늙은 소는 털도 안 벗겨져. 그래 요만큼 요만큼 잘라서 털 떼고, 그래 힘들었어요. 수구레는 여 아저씨들은 환장을 한다. 옛날 기억이 있어 가지고. 지금이야 세월이 좋아져 그런 기 안 먹고 고기만 먹지만. 시집가기 전만 해도 내는 그리 먹었다.”     

  그랬다. 수구레 부위만 먹은 것이 아니라 털을 제거한 소가죽까지 먹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먹던 시절이었다. 장날에는 수구레를 센 불에 오래도록 삶으면서 기름기를 제거하고 양념을 강하게 하여 전골로 끓였다. 장작불에 넓은 냄비를 올리고 자박하게 끓여 선지와 수구레를 넣었다. 건더기를 돌리면서 익히다가 손님이 오면 먼저 익은 것을 건져주고 고기를 좋아하는 단골이 오면 더 주기도 했다.      

  수구레국밥은 치아가 좋은 젊은 사람들은 졸깃한 맛에 먹는다지만 옛 추억 때문에 수구레국밥을 찾는 노인들도 많다. 그래서 노인들이 들어오면 호른 호른 하게 푹 삶은 것을 따로 준비한다. 무와 마늘을 넣고 오래 끓인 육수에는 누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식당 내에도 수구레국밥집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깔끔 떠는 딸과 함께 일하면서 위생과 냄새에 더욱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소선지와 수구레를 보관한 냉장고로 안내하면서 보관하는 방법과 수구레국밥을 끓이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수구레는 빛깔이나 모양이 좋은 것을 사용하고 냉동보관을 우선으로 한다. 도축장에서 들여오자마자 고기 손질을 빠르게 하여 삶는 것이 중요하다. 고기를 한꺼번에 오래 끓이면 흐물흐물해져 부드러울 수 있지만 졸깃한 식감이 사라진다. 그래서 먹기 전에 양념해 두고 고기의 식감을 살리면서 기름기 없이 잘 끓여야 하는 것이 노하우란다. 아주머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입맛에 맞게 작은 냄비에 수구레를 끓인다. 소선지는 붉은빛이 비실 비치는 신선한 것을 사용해야 맛이 좋다.     

  부추를 넣어 수구레 국밥 한 술을 떠 본다. 맵지 않고 기름기도 하나 없어 시원하기까지 하다. 수구레 부분은 부드럽고 쫀득쫀득하며 느끼하지 않다. 천천히 곱씹을수록 구수한 맛이다. 혹시 칼칼한 국물 맛을 원한다면 청양고추를 넣어도 좋고 무김치 국물을 한 술 넣어도 속이 풀릴 것 같다. 이것이 땀 흘려 일하는 분들이 찾는 이유겠지. 

  수구레는 지방이 적고 콜라겐 성분이 많아 관절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달콤한 젤리나 케이크, 마시멜로 등을 만들 때 수구레나 돼지껍질 등이 필수 재료라는 사실. 그래서인지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 꽤 동안이었던 것 같다. 



 위 글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 N 문화' : 우리 집의 맛과 향토 음식에 게재된 글입니다.


우포 수구레국밥 전문점은 어머니 서외숙(여, 63세)씨가 35세에 시작하였고 지금은 딸 김연정(여 딸, 43세)씨와 함께 하고 있다. 선지를 보기도 싫어하던 딸은 선지 손질과 국밥 토렴(밥이나 국수 등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일을 )의 달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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